정치권 ‘일본 때리기’ 애국보단 인기가 목적?
국회의원들의 산발적인 일본 비난 국익에 도움 안돼
여야 머리 맞대고 국회 차원의 규탄 결의문이라도 채택해야
“일본 야만의 시대에 맞서 상식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강력히 규탄한다.”
정치권의 ‘일본 때리기’가 한창이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일본 고위 관료들과 정치인들의 ‘우경화’ 비판 행보를 자신의 인기상승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일본이 독도, 위안부 등 수없이 많은 역사왜곡 발언과 망언을 쏟아내고 최근에는 평화헌법을 개정해 집단적 자위권까지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우리 국민들의 공분을 사자 국회의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산발적인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렇지만 정치권은 여야가 합심해 국회차원에서 일본의 역사왜곡·망언 등에 대한 공동 규탄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실질적인 액션은 취하고 있지 않다. 일본의 역사왜곡·망언에 대해 말뿐인 비난만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의원들이 일본 우경화에 대한 국내 비판 여론에 편승해 정치권에 대한 신뢰를 잃은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최진 경기대 교수는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 일본 우경화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는 여야가 일본 우경화에 대한 실질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면서 “국회의원들이 산발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국익차원에서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교수는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국회차원에서 일본을 규탄하는 공동 결의문이라도 채택하고 일본 정부에 항의를 해야 한다”면서 “국회의원 각개의 비판 발언 보다는 공식적으로 여야가 합의를 통해 일본에 대한 공식 항의단을 구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치가 신뢰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다른 사안에 대해선 지지부진해도 일본의 역사왜곡·망언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어필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야권의 한 관계자도 “일본의 우경화 행보에 실질적인 대응방안을 모색하기보다 일본 우경화 비판 여론에 편승해서 인기영합적인 발언을 하는 국회의원도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일본에 대한 여야의 비판도 미묘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야만의 시대’ ‘군국주의 망령’이라는 강렬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자신들을 부각시키고 있는 반면 새누리당 의원들은 민주당 의원들에 비해 비난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신학용 민주당 의원은 지난 5일 발간한 ‘상식의 회복’이라는 저서를 통해 아베 내각이 집권한 일본에 대해 “야만의 시대”라고 규정하면서 비난했고,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도 광복 68주년을 앞둔 지난달 13일 독도와 강릉 공군기지를 찾아간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일본 군국주의 도발과 망령이 되살아나는 데 대해 경계심을 갖고 일본에 대해 경고한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일본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한국과 일본의 관계 개선을 위한 발언을 끼워넣고 있다.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은 광복절을 맞이해 출연한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에서 “패전일을 패전일답게 보내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는 일본 정치가들이 안타깝다”면서도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새로운 공동의 미래 기준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비난 수위를 조절했다.
황진하 새누리당 의원도 지난달 23일 새누리당 주요 당직자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아베 총리가 집권한 이후부터 (한일 간) 평화가 아닌 대립·갈등의 길로 가고 있다”면서 “평화 지향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길로 나올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일본에 대한 비난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역사왜곡·망언으로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지만 일본과의 외교관계는 ‘단절’이 아닌 개선으로 나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당내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 여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일본과 문화·경제·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적절한 수위를 유지하면서 일본 비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여당의 경우 정부의 입장과 맥을 같이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일본과의 외교·경제적인 관계를 고려해서 비난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반면 민주당은 과거 정부와 일본과의 협력문제를 비판해왔기 때문에 좀더 강력하게 일본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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