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국기문란 사건을 정쟁으로 대응하는 경박한 정치인들
당나라 송청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는 약장수다. 약방에는 항상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인심이 후했다.
불쌍한 사람들에게는 공짜로 약을 지어주었다. 돈이 모자라면 받지 않았다. 나중에 준다하면 두말 않고 승낙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손님이어도 상관없었다. 이러한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연말이면 외상을 해간 사람들의 차용증이 방안 가득히 쌓였다. 송청은 어김없이 차용증을 불태웠다. 그리고는 잊어버렸다. 거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했다. 성인이라고도 했다.
사람들은 걱정했다. 저러다 망하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망하지 않았다.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리석지 않다. 대단한 사람도 아니다, 다만 약을 팔아 처자를 먹여 살리는 사람이다”
“내가 다른 것은 조금 긴 눈으로 앞을 보는 장사치라는 것이다. 내가 태운 차용증이 수천에 이르지만 내게서 약을 얻어간 사람들 중에는 훌륭하게 출세한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은 때때로 과분한 보답을 해준다. 내가 가족을 먹여 살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사소한 약값 때문에 욕을 먹고 인심을 잃느니 약값 떼이고 인심얻고, 출세한 사람들에게 후한 대접을 받는 것이 더 낫지 않는가”
그는 단순한 약장수가 아니다. 긴 눈으로 세월을 보는 현안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눈앞의 이해와 이익에 급급한 세상이다.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사람간의 관계도 그렇다.
당장 급하다고 해서 거짓말을 한다. 불리하면 그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는 식으로 발뺌을 한다. 모두가 순간만 바라보는 ‘근시안’인 것이다.
남북정상회담록이 사라졌다. 야당은 이명박 정부의 책임을 운운했었다. 절대로 없어질리가 없다고 했다. 어느 거물 정치인은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한 사안이다.
일년도 안됐다. 대화록은 삭제되었고 대통령기록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실을 그들이 몰랐는지 아니면 알고도 거짓말로 순간을 모면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은 사태를 보는 태도가 경박하다는 것이다. 단순한 여야의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국민적 문제임에도 말이다. 너무나 근시안적으로 상황을 대한 것이다.
정상회담 기록물의 향방에 대해 몰랐다고 치자, 그러면 애당초 말을 아껴야 했다. 갖은 핑계와 이유를 댔다. 중요한 사초분실의 진위를 저급한 정치공방전으로 변모시켰다.
회담록이 대통령 기록관에 없고 삭제된 것을 알고 있었다면 더 큰 문제다. 고의로 거짓말을 한 셈이다. 여론을 호도하고 역사왜곡을 시도한 꼴이 되는 것이다. 말을 뱉으면 주워 담지 못한다.
이제 와서 별 이상한 이유들을 갖다댄다. “대화록은 없다. 그러나 NLL포기는 아니다”라고 한다. 아직도 뭘 모르는 모양이다. 국민들이 왜 화가 나는지, 이 문제가 왜 이토록 중요하게 다뤄지는지를 말이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문제는 여야의 정쟁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여야가 추태를 부리는 정치공방이 아니다. 그것이 어느 대통령이건 중요한 역사의 사초가 사라진 일이다. 진솔하고 또 진솔하게 문제를 대해야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마찬가지다. 정국의 주도권 문제로 이 문제를 바라봐서는 절대 안된다는 말이다. 정치나 경제나 모든 것이 세상속에 있다. 상식을 벗어난 일은 지탄을 받는다. 순간 곤혹스럽고 불리하다해서 피해서는 안된다.
새삼 송청의 ‘세상살기’가 떠오르는 이유다. 한낱 약장수마저 긴 안목으로 세상을 보는데, 하물며 일국의 정치인들이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혹시 아는가. 잘못을 인정하는 진솔한 모습에 국민들이 열광적 지지를 보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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