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처형, 김정은 옹위보다 새 권력 등장 암시
현성일 "장성택, 김정은 후견자 자임하다 조직지도부에 제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성택 실각 이후 북한 정세 평가와 전망'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고모부 장성택의 처형은 2인자를 제거하고 김정은 유일지도체계를 옹위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장성택을 제거하고 싶어하는 또 다른 세력간 권력투쟁이 불러온 결과라는 주장이 나왔다.
20일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개최한 '장성택 실각 이후 북한 정세 평가와 전망'이라는 주제의 통일정책포럼에서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북한 외교관 출신)은 "오랜 기간 장성택을 견제, 감시했던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주도한 것으로 앞으로 제2, 제3의 장성택 처형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현 수석연구위원은 “2011년 12월 김정일의 급작스런 사망 이후 장성택은 김정은의 실질적인 후견인 역할을 자임했다”며 “이 과정에서 오랜 기간 장성택이 장악해온 중앙당 행정부에 대한 조직지도부의 감시와 견제가 강화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일의 지시로 당 안에 사법검찰 업무만 따로 담당하는 부서인 행정부가 만들어졌고, 장성택이 행정부장을 맡으면서 경제 군사 등 각 분야에까지 영향력 뻗친 것은 사실로 이런 과정에서 장성택은 권력구조 개편, 주요 정책 방향, 각종 경제이권 등을 놓고 당 조직지도부는 물론 군부와도 끊임없이 대립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통상 조직지도부의 핵심 역할은 행정부에 대한 감시, 관리인 만큼 이 과정에서 조직지도부와 행정부장인 장성택 사이에 개인적인 갈등은 물론, 부서 간 갈등도 심화됐다”며 “특히 김정은 체제 이후 장성택이 실질적 후견인으로 부각되면서 조직지도부와 군의 강경세력은 그의 분파행위와 월권, 각종 부정부패 행위에 대한 조사와 보고 등 숙청작업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여기에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올해 초 3차 핵실험을 반대한 장성택과 반대편에 있던 군 세력의 갈등도 본격적으로 드러났다”면서 “이후 조직지도부와 군은 그동안 쌓아둔 자료들을 토대로 김경희와 김정은을 흔들기 시작, 장성택 제거의 결정적인 계기로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현 연구위원은 이번 장성택의 처형이 김정은 보다는 장성택을 견제했던 특정세력의 소행으로 보는 것과 관련, ‘이중적인 판결문’ 내용을 짚어 눈길을 끌었다.
즉 "북한이 장성택 처형 당시 공개한 판결문 내용을 들여다보면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으로 장성택의 대표 혐의인 ‘반당반혁명’은 김정은의 유일지도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강경한 메시지가 담겨있지만, 일부 혐의들은 자칫 김정은의 권위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내용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앞서 13일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판결문에 “장성택놈은 심리 과정에 ‘나는 군대와 인민이 현재 나라의 경제실태와 인민생활이 파국적으로 번져지는데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는 불만을 품게 하려고 시도하였다’면서 정변의 대상이 바로 ‘최고 령도자 동지이다’고 만고역적의 추악한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놓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판결문에선 “장성택은 ‘국가가 붕괴 직전에 이르면 내가 있던 부서와 모든 경제기관들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가 총리를 하려고 하였다. 내가 총리가 된 다음에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명목으로 확보한 막대한 자금으로 일정하게 생활문제를 풀어주면 인민들과 군대는 나의 만세를 부를것이며 정변은 순조롭게 성사될것으로 타산하였다’고 토설하였다”고 되어 있다.
현 연구위원은 이 두 대목을 지목하면서 “통상적으로 북한에서는 이런 판결문 내용이 공식 언론에 결코 나올 수 없다”며 “자칫 주민들 사이에서 ‘우리 체제가 확고한 체제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썩어있었나’ 혹은 ‘장군님 권위가 이리도 한심했나’와 같은 인식이 퍼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번 장성택 처형은 김정은이 아닌 그 주변에서 장성택을 오래 전부터 제거하고자 했던 권력층들의 작품이라는 것이 현 연구위원의 주장이다.
이와 함께 그는 최근 일부 언론에서 제기되고 있는 북한 고위 간부들의 망명설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현 연구위원은 “물론 원론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간부들의 망명 사태는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현실적으로 로두철 부총리 등 북한 고위간부들이 망명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이미 이들이 중국에 나올 정도면 북한 내에서도 보도가 됐을 것이다. 더욱이 북한은 오래 전부터 장성택 숙청을 준비하며 측근들을 다 감시 했을 텐데 이들을 가만히 뒀을리 만무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김천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특임연구원(전 통일부차관)은 ‘장성택 처형 이후 대남정책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그동안 장성택은 남북관계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던 만큼 당분간 북한의 대남정책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김 연구원은 “특히 현재 남북관계 자체가 침체돼 있기 때문에 특별히 불안한 요소가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개성공단 사업은 계속해서 추진되겠지만 기타 사업은 북한 내부의 혼란과 인사 문제 등으로 인해 당분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기기 힘들 것이다. 여기에 내부 통제가 강화되면서 남북관계는 다소 경직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앞으로 북한 내부의 혼란이 우리 안보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북한 내부에서 경제를 중시하는 세력이 약화되고 김정은을 자제시킬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불안정성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또 이권배분 과정에서 군부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국지도발을 일으킬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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