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지난해 이어 올해도 예결위서 삭감
국회가 줄여놓고 영유권 주장 대응 못했다고 정부만 뭇매
여야가 올해 예산안을 최종 처리하는 과정에서 독도 관련 예산의 증액분을 대폭 삭감했다.
앞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외교부가 제출한 42억3500만원에서 26억원을 늘려 영유권 공고화 사업비를 편성했으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20억원을 다시 삭감, 48억3500만원을 최종 예산안에 반영했다.
지난해에도 외통위는 외교부의 독도 관련 예산을 20억원 증액했으나 예결위는 이를 전액 삭감했다. 일본 정부가 독도 문제를 비롯한 영토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관련 예산을 1억9000만엔(약 19억3000만원) 증액한 것과 대비되는 행보다.
문제는 예산 부족으로 정부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모든 비판의 화살이 정부에 쏠린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18일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일본 아베 정부의 영토 분쟁화에 대한 우리 정부의 미온적 대응을 비판하면서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과 군사재무장 전략에 중장기적인 대응을 마련하고, 군사외교안보문제에 대해 확고한 대비책을 우리 정부가 가져달라”고 촉구했다.
김을동 새누리당 의원은 11월 19일 국회 정기회 대정부질문에서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우리 정부의 독도 홍보 지원은 대단히 미약하다”고 지적하며 “일본이 과거 침략의 연장선에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아직도 부당하게 우기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예산 삭감으로 정부의 손발을 묶어버린 정치권이 예산 부족으로 할 일을 못하는 정부를 질책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밖에 국회는 무기 구입비 등을 비롯한 국방예산을 정부안에서 1000억원 가까이 깎고, 나랏빚 이자를 갚기 위한 예산을 1조원 감액했다.
국회가 삭감한 국방예산에는 제주해군기지의 병사용 관사, 진입로 건설비도 포함됐다. 이어도 상공을 방공식별구역(ADIZ)에 포함하는 문제로 한중일 3국간 외교갈등이 극에 달했던 상황에도 말이다. 또 대잠어뢰 사업비는 100억원 줄고, 한국형 차기 구축함 예산 30억원은 전액 삭감됐다.
나랏빚 이자를 갚기 위한 비용도 금리 변동에 따라 실제 이자율이 국회가 예측한 이자율을 넘어설 경우, 예비비가 소진돼 정작 돈이 필요한 곳에 예산이 배정되지 않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에 대한 비판도 고스란히 정부가 떠안게 될 것이 자명하다.
국회가 정부의 발목을 잡아놓고 정부를 탓하는 경우는 이뿐 아니다.
야당은 불법자금 추적을 위한 ‘FIU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여당안을 난도질해 지하경제 양성화 기대효과를 반감시켜놓고 세수가 부족하다며 부자증세를 촉구하고 있다. 또 철도개혁을 반대하면서 공공기관 개혁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부족하다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여당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을 놓고 당내 의견을 조율하지 못해 공약 이행을 가로막고 있다.
한편, 안보·국방 분야 필수 예산이 삭감되는 상황에서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정부안보다 4000억원 늘었다.
도로·하천정비 등 인프라 사업에 할당되는 SOC 예산은 주로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쪽지예산’에 따라 증액된다. 당내 실세 의원들이 자신들의 공약사업을 이행하기 위해 필수 예산을 떼어내 지역구에 쏟아붓는 것이다. 지난 1일 본회의 막바지에도 일부 의원들의 쪽지예산을 놓고 여야간 논쟁이 빚어졌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내 밥그릇은 챙긴다’, ‘내 밥그릇 챙기느라 못한 건 정부 탓’. 지금 국회가 보여주는 모습이 딱 이렇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