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매출담보대출' 사기극 '불똥'…중기 돈줄 위축되나
외담대, 중소기업 금융부담 줄이기 위해 2001년 도입…서류상 문제없으면 바로 대출가능
KT ENS 부장급 직원과 부품 납품업체 N사가 공모, 사기대출을 통해 2800억 원을 빼돌리자 외상매출담보채권대출(외담대) 심사과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KT ENS의 책임자와 부품 납품업체가 공모해 '완벽한 서류'를 구비했기 때문에 대출을 실행한 은행으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한 금융감독당국이 전 은행권의 외담대 실재조사에 나설 예정이어서 중소기업의 신속한 자금 공급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외담대는 일종의 결제제도로 2001년 2월부터 시작됐다. 납품과정에서 결제자금을 받지 못한 하청업체들의 금융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된 제도다.
납품업체로부터 물품을 구매한 대기업이 결제대금 대신 어음을 지급하고, 납품업체는 그 어음을 담보로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은 어음을 발행한 대기업의 신용등급으로 운용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어음을 발행한 대기업이 부도를 일으킬 경우 하청업체까지 연쇄부도가 일어날 수 있지만 외담대를 이용한 중소기업은 은행권으로부터 대출자금을 끌어온 것이기 때문에 부도가 아닌 대출금 연체처리가 된다.
은행권에서도 신용평가가 좋은 대기업의 어음을 보고 대출을 해주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낮은 금리로 자금을 대출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권은 이번 사건과 같이 대기업의 관계자와 하청업체가 공모해 '완벽한 서류'를 구비할 경우, 이같은 사기행각을 걸러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기대출에 제출된 서류에는 세금신고서, KT ENS 법인 인감, 물품 발주서, 물품 수령증 등 대출 승인에 필요한 모든 요소가 구비돼 있었다.
더욱 외담대 심사과정 때 전자서류로 확인하는 만큼 전산시스템에 원청업체의 채권 발행번호가 찍혀있기 때문에 여신공여 한도에 맞춰 대출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대출을 시행하는 은행관계자가 하청업체가 원청업체에 들이는 품목을 일일이 체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원청업체와 납품업체가 공모할 경우 제도적으로 은행 측에서 이런 사기대출을 가려내기란 불가능하다"면서 "일반적으로 원청업체와 납품업체 양측이 손을 잡고 이런 사기행각을 벌일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양측에서 구비한 '완벽한 서류'가 은행에 도착하면 이를 근거로 대출을 실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몇몇 사기꾼 때문에 상거래 관련 기업 대출을 줄이면 대부분 선량한 기업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면서 "제도상 문제, 여신심사 상 문제라기보다는 계획적인 범죄에 당한 케이스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현재 사기대출 사건에 대해 정밀 조사를 벌이고 있는 금융당국에서도 은행에서 이같은 사기 행각을 사전에 가려내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금융당국도 대출 심사에 제출된 서류상에서는 아무런 문제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대출에 필요한 공인된 서류들이 모두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은행으로선 이 같은 사기행각을 알아차리기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금융당국에는 자금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에 사기행각을 감지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은행에선 하청업체와 공모한 KT ENS 책임자까지 직접 찾아가 서류를 확인하는 등의 절차를 거쳤고, 더욱이 대기업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방심을 한 요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KT ENS는 문제를 일으킨 해당 업체로부터 2013년부터 휴대폰 구매를 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당국은 대출의 담보였던 매출채권 대부분이 허위 채권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번 사기대출의 피해 은행 중 한곳인 농협은행의 관계자는 "여신 심사 과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서 "관련 여신 심사에 대한 보완·개선 여부는 당국의 수사가 종료된 이후에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전 은행권으로 외담대 실태 조사를 확대할 예정이어서 중소기업의 신속한 자금공급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의 외담대 실태 조사를 통해 은행들의 대출 심사가 더욱 까다로워 질 것"이라며 "그러다 보면 중소기업으로서는 채권을 현금화 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자금 흐름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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