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울한 여자컬링 '이미 자랑이다'
척박한 한국 컬링 여건에서 올림픽 진출권 획득
첫 경기 일본도 꺾고 정상급 팀과 대등한 경기
태릉선수촌 밥은 국가대표 선수들 사이에서 ‘어머니 손맛’보다 좋다고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그림의 떡이다. 그들은 태릉 만찬 대신 분식집을 기웃거려야 했다. 불과 2년 전, 신미성(36), 김지선(28) 이슬비(26) 김은지(25) 엄민지(23·이상 경기도청)로 구성된 여자 컬링대표팀 얘기다.
태릉선수촌 수용인원(20종목·450명) 포화로 여자 컬링대표팀은 여관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지원금도 빠듯해 국제대회서 외국선수가 사용하다 버린 브룸(컬링 전용 빗자루)을 주어 썼다. 컬링에 사용되는 무게 19kg의 화강암 스톤(개당 180만 원)은 당연히 애지중지 다뤘다.
이러한 악전고투 속에도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던 여자 컬링대표팀에 ‘봄’이 찾아온 시기는 2012년 2월. 컬링대표팀의 사정을 파악한 대한체육회가 태릉선수촌으로 그들을 불렀다. 그리고 그해 3월, 2012 캐나다 세계선수권 4강 신화로 이어졌다.
한국은 2012 세계선수권 예선에서 컬링 종주국이자 홈팀 캐나다(세계랭킹 2위)를 꺾는 등 파란을 일으키며 4강에 올랐다. 태릉 밥을 얻어먹고 기운을 낸 계란이 바위를 깬 셈이다.
캐나다 컬링 등록 선수는 200만 명에 달한다. 반면, 한국은 남녀 통틀어 600명에 불과하다. 국내 컬링 전용 경기장도 태릉과 경북 단 두 곳뿐이다. 또 컬링의 역사는 200년이 넘지만, 한국에 도입된 시기는 고작 20년 전(1994)이다.
그럼에도 여자 컬링대표팀은 세계 4강에 이어 파죽지세로 ‘2014 러시아 소치 올림픽’ 출전권까지 따냈다. 잘 먹이지 못했던 거위가 거푸 황금알을 낳은 셈이다.
한국 여자 컬링대표팀은 소치올림픽 참가국 랭킹에서 최하위다. 외신은 한 목소리로 “1승도 어렵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올림픽이 개막되자 꼴찌의 반란이 시작됐다. 한국은 지난 10일 예선 1차전에서 세계랭킹 9위 일본을 12-7로 꺾었다.
일본은 컬링 등록 선수가 50만 명에 달하는 아시아 강호다. 한일전 상대전적도 30승48패로 열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세가 역전되는 분위기다. 특히, 대표팀 주장 김지선이 나선 지난 6년간 12전 11승1패 우위를 점했다.
소치올림픽 한일전 쾌승 이후 세계랭킹 4위 스위스와의 2차전(6-8패), 세계랭킹 1위 스웨덴전(4-7패)에서 석패했다. 투구자로 나섰을 때 스톤을 의도했던 곳에 안착시키지 못했다. 침울해진 김지선과 신미성 등 대표팀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경기에 져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고개 숙일 필요 없다. 소치올림픽에 출전한 것만으로도 자랑스럽다.
'난공불락' 강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패전을 쌓아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세계랭킹 1위’ 스웨덴은 분명 한국 대표팀에 버거운 난공불락이었다. 스웨덴은 한국이 실수를 범할 때마다 놓치지 않고 득점으로 연결했다.
마지막 9,10엔드서 3점차로 뒤졌을 때 한국이 가드를 세우고 가드 뒤로 스톤을 숨기는 전법으로 나왔지만, 스웨덴은 정교한 투구로 한국 스톤을 모두 쳐냈다. 그리고 최종 투구에서 자신들의 스톤을 하우스에 가장 가깝게 놓아 추가 득점으로 연결했다.
결국, 주장 김지선이 실수를 안했더라도 상대전적 4전4패 스위스와 세계랭킹 1위 스웨덴을 넘기엔 벅찼다. 대표팀을 향한 비판은 결과론적인 분노일 뿐이다. 한국 여자 컬링대표팀은 미래를 얘기하기 전 이미 현재도 우리의 자랑이다.
한편, 10개팀이 참가하는 이번 올림픽은 리그전을 치른 후 1~4위가 토너먼트를 통해 메달을 가린다. 1승2패로 8위에 랭크된 여자 컬링대표팀은 경기일정에 따라 13일 자정 개최국 러시아(세계랭킹 8위)와 4차전을 치른 뒤 중국(5위), 영국(3위), 덴마크(6위), 미국(7위), 캐나다(2위)와 대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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