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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박정희 시' '김대중 공항' 왜 못 만드나


입력 2014.03.15 09:55 수정 2014.03.15 13:29        이충재 기자

정치 갈등에 전직 대통령 기리는 사업 '옴짝달싹'

대통령 기념사업 추진 때마다 '헐뜯기' 정치공방

2012년 2월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 대통령 기념 도서관´ 개관식이 끝난 뒤 시민들이 입장하고 있다. ⓒ데일리안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 미국순방에 동행한 청와대 한 참모는 워싱턴DC 한복판에 우뚝 솟은 워싱턴 기념탑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제 우리도 저런거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그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 것은 전직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관과 조형물이 아니라 그것이 가능하게 만든 ‘정치문화’였다. “이런 말하면 야당에서 반대하겠지. 그런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도 만들면 되잖아.”

대통령 기념사업 추진 때마다 '헐뜯기'…퇴임 후에도 정치공방에 갇혀

최근 ‘구미시를 박정희시로 바꾸자’는 한 지방선거 출마자의 공약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당장 민주당 등 야당은 눈에 쌍심지를 켰다. “독재를 미화하겠다는 것이냐”, “박 전 대통령이 돌아가실 때는 여대생을 불러 술자리를 하지 않았나”라며 ‘박정희 헐뜯기’에 열을 올렸다.

그동안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이 추진될 때마다 반대쪽 정파에서 결사반대를 외치는 등 정치공방에 갇혀 옴짝달싹 못해왔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10명의 전직 대통령이 있지만, 묘지와 생가, 사가 등을 제외하면 대통령의 발자취를 찾기가 어렵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은 별장이던 제주도 화락관과 강원도 화진포 기념관, 사저로 사용한 이화장 등의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고향인 경남 거제시에 김영삼기록전시관이 세워졌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물 역시 서울의 김대중도서관과 광주의 김대중컨벤션센터가 고작이다.

이런 기념물을 세우는 것조차도 찬반논란 등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이는 전직 대통령의 치적 관리에 소홀한 우리 정치 풍토와 함께 좌우를 관통하는 ‘존경받는 대통령’이 없다는 정치적 이유가 작동했다.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라면 전직 대통령 ‘부관참시’도 서슴치 않는 정치권의 문화가 바뀌지 않은 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기념사업은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김일주 이승만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대한민국 건국대통령의 역사가 검증도 안 된 소문과 객관성이 결여된 특정집단의 주장에 제대로 된 평가도 없이 아직도 지하에 갇혀 있다”고 꼬집었고, 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대통령을 모욕주고, 부관참시 한다는 그런 극단적 언어까지 나오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앞서 이명박 정부는 지난 2010년에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기념사업에 대한 지원을 재개하기로 의결했다. 보수와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기념사업을 ‘좌우균형’을 맞춰 추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여야의 반발은 없었지만, “전직 대통령을 기리는 사업을 하는데 좌우가 어디있느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2005년 9월 6일 광주시 서구 상무누리로에 개관한 김대중컨벤션센터 '김대중홀' 전경 ⓒ김대중컨벤션센터

미국은 공항, 도시, 항공모함 '대통령의 이름으로'…"우리도 기록남기는 관행 만들어야"

미국의 전직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사업은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

전직 대통령의 이름과 얼굴이 들어간 기념물이 도처에 있다. 워싱턴DC에만 미국 조지 워싱턴 기념탑, 제퍼슨 기념관, 링컨 기념관, 케네디 센터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매년 2월 셋째 주 월요일을 국정 공휴일인 ‘대통령의 날’로 지정해 역대 대통령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기념관이나 기록관 등을 통해 그의 경험과 철학을 국민들이 공유하는 문화가 안착한 것.

미국이 항공모함이나 연방정부 건물, 주요 도로 등에 자랑스럽게 대통령 이름을 붙이는 데에는 전직 대통령의 공과를 떠나 대통령을 영웅시하는 정서가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의 공과를 평가하고 후세에 남기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며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사업이 미국처럼 자리 잡지 못하고 번번이 막히는 이유는 굴곡진 역사에서 대통령을 바라보는 정치적 세력이 첨예하게 갈려 있는 상황과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기념사업을 추진 중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정치적 공과 평가문제가 남아 있지만,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라며 “이제는 민주화도 됐으니 정치적 갈등과 과거를 뛰어넘어 전직 대통령의 기록을 남기고 기념관을 만드는 일을 관행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 대통령의 공과를 평가하고 후세에 남기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며 “대통령 기념사업은 특정 대통령을 미화하는 작업이 아니라 기록을 보존하는 형식으로 이뤄져야 하고, 전직 대통령 지지자들이 아니라 (정부에서)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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