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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분 슈팅0’ 박주영 카드 결과도 실패


입력 2014.06.23 20:38 수정 2014.06.23 21:28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의리사커-엔트으리 비아냥거림 속 발탁

자격 갖추지 못한 무리수, 참담한 결과만

박주영의 부진은 단지 골을 못 넣었거나 한두 경기 조금 못했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 연합뉴스

112분 골-슈팅-공격 포인트 0.

홍명보호 최전방 공격수 박주영(29)의 '2014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현재까지의 성적표다. 주전 공격수가 경기에서 슈팅 한 번도 날리지 못하고 2경기 모두 60분 넘기기 전에 조기 교체됐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3일(한국시각) 열린 알제리와의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2-4로 참패했다. 러시아전(1-1)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1무1패에 그친 한국은 조별리그 최하위로 추락, 16강 자력 진출이 불가능해졌다. 공수 양면에서 조직력이 총체적인 난국을 보인 데다 선발 공격수로 낙점된 박주영의 연이은 난조는 대표팀 패배의 큰 원흉으로 지적되고 있다.

박주영은 지난 몇 년간 뜨거운 감자였다. 병역논란에 경기력 논란, 여론에 대한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태도까지 겹쳐 국가대표 자격을 놓고 끊임없는 구설에 오르던 박주영을 구원한 것이 바로 홍명보 감독이었다.

2012년 홍명보 감독은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병역논란으로 사면초가에 몰려있던 박주영을 과감하게 올림픽대표팀에 발탁했고 함께 동메달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2014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최종 엔트리에 박주영을 불러들이며 두터운 신뢰를 보여줬다. 국내에서 박주영보다 더 뛰어난 공격수는 없다는 홍명보 감독의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홍명보 감독은 원칙을 깼다는 역풍에 휘말려야 했다. "소속팀에서 꾸준히 활약하는 선수를 선발하겠다"던 홍명보 감독의 원칙이 박주영으로 인해 깨지는 첫 빌미가 됐기 때문이다. 소속팀에서 유난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박주영이 최종 엔트리를 앞두고 소속팀을 떠나서 대표팀에서 전담 관리를 받는 상황까지 벌어지면서 박주영의 '프로의식 부재'과 황제훈련이 도마에 올랐다.

박주영의 일련의 행보는 홍명보호에 '엔트으리' '의리사커'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는 계기가 되었다. 한 번도 아니고 런던올림픽에 이어 또다시 정당한 자격 없이 대표팀에 무임승차한 데다, 유독 박주영에게만 쏟아지는 축구계의 미화 및 특혜는 도를 지나쳤다. 이는 곧 인맥과 학연, 제 식구 감싸기 같은 한국 스포츠계의 구조적인 병폐에 대한 국내 대중들의 금기를 건드린 면이 있었다.

만일 박주영이 모든 논란을 불식시킬 정도로 월드컵에서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줬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홍명보 감독이 숱한 논란을 감수하며 박주영을 감싸 안은 것도 오직 결과로서 입증하겠다는 승부수였다. 하지만 박주영은 적어도 지금까지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박주영은 1년간 소속팀 경기에서 단 한 번도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했다. 아스날 이적 이후인 2011년부터 계산하면 무려 3시즌 동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경우가 드물다. 그럼에도 월드컵에 출전했다는 것은 외신에서도 지적했듯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러나 실전 감각과 체력 저하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월드컵에서 숨길 수 없었다. 조별리그 1·2차전 내내 몸싸움과 공중볼 경합에서 번번이 밀려났고, 전반이 끝나자 이미 체력이 방전됐다. 박주영의 장점이라던 공간 활용능력과 수비를 끌어당기는 플레이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박주영의 부진은 단지 골을 못 넣었거나 한두 경기 못했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홍명보 감독은 최종 엔트리 기자회견 당시 박주영의 발탁 명분을 설명하면서 "박주영을 대체할 만한 공격수를 찾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 박주영의 백업 멤버로 발탁된 김신욱, 이근호 등 K리거들은 오히려 박주영보다 더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이근호는 2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1골 1도움을 올리고 있고, 김신욱은 알제리전에서 후반 제공권 장악으로 한국의 추격전을 이끌었다. 헌신적인 몸싸움과 투쟁심, 활동량은 김신욱과 이근호가 오히려 앞섰다.

월드컵이 첫 출전인 손흥민은 세 번째 출전인 박주영보다 더 과감하고 자신감 있는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알제리전에서는 손흥민이 오히려 박주영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에서 최전방 공격수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지난 두 경기 모두 대표팀의 공격은 오히려 박주영이 후반 교체되고 난 이후에야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박주영 아니면 안 된다'는 홍명보 감독과 일부 축구인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선입견인지 이번 월드컵의 결과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황선홍, 최용수, 이동국, 안정환 등 역대 월드컵에서 활약한 대한민국 대표 공격수들은 언제나 찬사와 비난의 경계선에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은 자격 시비에 휘말린 적은 없었다. 황선홍은 1994년 볼리비아전에서 비난을 한 몸에 받았으나 시간이 흘러 팬들은 최전방에 고군분투하며 수많은 찬스를 만들어냈던 그의 투지를 더 기억한다.

안정환은 이탈리아전에서 페널티킥를 실축하며 역적이 될 위기에 몰렸으나 연장전 끝에 극적인 골든골을 안기며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끌어냈다. 그들은 적어도 실력과 투지로 자신들의 자격을 스스로 인정받았다. 박주영과는 달랐다.

홍명보 감독은 이제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정도를 걸었다면 결과가 좋지 않아도 부끄러움이 없다. 그러나 잘못된 과정으로 결과까지 나쁘다면 그때는 변명의 여지도 없다.

대표팀을 박주영을 위한 원팀이 아니고, 팬들은 박주영이 살아나는 모습을 기다리려고 월드컵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다. 박주영과 홍명보 사제의 아름다운 의리보다 끝까지 팬들이 기대하는 것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대표선수다운 투지와 열정이다.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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