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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피해자 가족들과의 '의리' 지킨 부부 이야기


입력 2014.08.10 10:16 수정 2014.08.10 18:37        김수정 기자

<인터뷰>조성래 한국재난구호 이사장과 부인 김진실 씨

세월호 참사 99일째인 23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재난구호 조성래 이사장과 부인 김진실 씨.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평생 먹을 약을 다 먹은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지도 100일이 훌쩍 지나갔다. 그 사이 실종자 구조작업이 이어진 진도 팽목항에는 분노와 슬픔, 절규로 신음했던 수백명의 피해자 가족들이 다녀갔다. 이제 팽목항에 남은 피해자 가족들은 불과 십여명. 그 많던 민간잠수부도 언론도, 그리고 자원봉사자의 모습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이곳에서 세월호 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피해자 가족들의 손을 놓지 않는 두 사람이 있다. 바로, 조성래 한국재난구호 이사장과 부인 김진실 씨다. ‘데일리안’과 두달 만에 다시 만난 이들은 100일간의 살인적인 자원봉사 활동에도 불구, “끝까지 남은 가족들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심신을 달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지난 4월 16일 세월호 발생 직후부터 팽목항에서 상주하며, 매일 약 500명 이상의 실종자 가족과 민관군 봉사자들에게 순두부와 두유를 직접 만들어 제공해 왔다. 물론, 사건 직후 한달 간은 전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의 각종 봉사단체들이 팽목항을 가득 채웠지만 이제는 한국재난구호를 포함해 두곳만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오매불망 실종자들의 귀환을 염원하고 있다.

조성래 이사장은 “두달 전만해도 우리를 포함해 자원봉사자들이 가족들이 숙식하는 곳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있었는데 5월 28일부로 우리와 CJ만 가족들 숙소 바로 옆에 남게 됐다”며 “이제는 정말 실종자 가족들의 곁에서 매일같이 식사를 함께하고 대화를 나누니 더욱 그들과 끈끈한 관계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가족들이 묶는 곳에는 한국재난구호와 CJ를 제외하고는 민간자원봉사 단체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더욱이 시간이 지날수록 극도로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는 가족들의 입장을 고려, 경찰들이 주변경계를 더욱 강화시킨 만큼 민간인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희생자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실정이다.

조 이사장은 “솔직히 가끔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에 부친 경우도 있다”면서 “아내의 경우 평생 먹을 약을 다 먹을 정도로 체력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가족들과 함께 하겠다’는 약속 하나만은 지키고자 정신력으로 버티겠다”고 전했다.

부인 김 씨도 “링거와 약을 거의 매일같이 투약하고 있다”며 “아무래도 날이 더워지니 탈진과 빈혈 증세가 올 때가 많다. 이제는 약사 분들도 다 내 얼굴을 안다”며 짐짓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는 그러면서 “물론, 내 몸은 힘들지만 여기 계신 가족들 보면 내가 겪는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다”며 “우리마저 훌쩍 떠나버리면 이분들 식사는 누가 책임질 수 있겠냐. 힘들더라도 끝까지 남겠다”고 말했다.

가족과의 의리를 지키겠다는 이들의 신념은 태풍 ‘너구리’도 꺾지 못한 듯 보였다. 앞서 지난 8일 제8호 태풍 너구리 북상으로 피해가 우려되면서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설치된 시설물이 임시 철거된 바 있다.

당시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에 설치된 천막과 몽골텐트 100여개가 모두 철거해 인근 전남대학교 자연학습장으로 옮길 계획이었지만 팽목항에 있던 가족들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조 이사장은 “당시 이곳에 계신 실종자 가족분들 상당수가 ‘나 살자고 바다에 가족을 남기고 떠날 수 없다’며 끝까지 팽목항을 지키셨다”면서 “우리 역시 그런 그분들을 두고 안락한 곳으로 옮길 수 없었기에 철수하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또 “다행히, 우려했던 것처럼 태풍 너구리의 영향이 팽목항에 미치지 않아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면서 “다만, 이를 계기로 가족들과의 신뢰감 형성이 더 깊어졌고 이제는 정말 가족 이상의 관계가 됐다”고 뿌듯해 했다.

지난 7월 23일 전라남도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아직 돌아오지 못한 10명의 실종자들의 귀환과 희생자들을 기리는 글이 씌여진 노란 별모형이 매달려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부도 이제는 결단을 보여야”

하지만 100일간 자원봉사를 하면서 두 사람을 힘들 게 한 것은 살인적인 더위도, 육체노동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이번 사고를 통해 여전히 우리사회 내 체계화되지 못한 재난구조 현상 내 자원봉사시스템과 의식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했다.

조 이사장은 “물론, 우리나라처럼 정 많고 남을 생각하는 민족은 흔치 않다”면서도 “그러나 자원봉사에 대한 의식은 여전히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것 같다”고 헛헛해 했다.

그는 “자원봉사라는 것은 정말 어떠한 보상을 바라지 않고 내가 가진 시간과 노력을 오롯이 상대를 위해 활용하는 숭고한 일”이라며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자기들이 좋아서 하는 거지 뭐’ ‘하다가 말겠지’ 식의 시선으로만 우리를 바라보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더 큰 문제는 공무원들의 안일함”이라며 “그동안 이곳에서 벌어지는 애로사안에 대해 우리가 끊임없이 진도군청 등에 문의했지만 제대로 관철된 적이 없다.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조 이사장은 “여기 있는 경찰들도 문제”라며 “가령, 여기 오는 경찰들 대부분이 순번대로 파견을 나오기 때문에 전날 현장을 지켰던 사람에게 상황보고를 받지 못하면 진행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그는 “따라서 간혹 전날 우리가 문의했던 내용을 모르는 경찰들이 허다했다”면서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금전적 보상을 바란 것도 아니고 실종자 가족들의 편의와 현장 문제 개선을 요구한 것인데 그것조차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힘이 빠진다”고 토로했다.

부인 김 씨도 “정부도 이제는 제발 어떤 결단을 내렸으면 한다”면서 “흡사 지금은 방관만 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에게 어떤 보상이나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가령, 실종자 수습 후 인양이라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수적인 문제들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냥 ‘당신들 알아서 하세요’라는 식의 태도는 옳지 않다”고 힘줘 말했다.

“전문적인 인재 재난인재양성 필요”

아울러 이들은 재난구조 현장마다 주먹구구식의 민간자원 봉사자 지원시스템도 고쳐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이사장은 “세월호 사고로 이곳에 온 대다수의 자원봉사자들은 정말 좋은 뜻을 갖고 참석한 분들이었다”면서도 “하지만 일부 ‘스펙쌓기용’으로 오신 몇몇 불성실한 지원자들의 태도로 가족들이 상처를 받는 경우도 상당수 발생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따라서 재난 현장에는 무엇보다 전문적인 자원봉사자는 물론 사회적으로 봉사에 대한 교육과 인식 자체가 개선돼야 한다”면서 “어떤 혜택이나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남을 위해 내 모든 것을 준다는 마음을 가진 분들만이 진정 봉사할 수 있다. 이런 분들이 우리사회에 많이 양성될 수 있도록 우리도 노력할 것이고, 국가적 차원에서도 의식개혁이나 교육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김수정 기자 (hoho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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