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례 열린북한방송 국장-박주희 바른사회 실장-신보라 미청포 대표
30, 40대 '젊은 나이'로 보수시민사회 목소리 나오게하는 '원동기'
한국 사회 곳곳에 여풍(女風)이 거세게 불고 있다. 과거 주로 남성들이 활동해왔던 영역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이제는 가정을 넘어 사회 다방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30~40대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현상은 보수 시민사회 영역에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흔히 한국 사회에서 ‘보수 단체’가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노인’, ‘강성’, ‘불통’, ‘아스팔트’ 등이 지배적이다. 100%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보수 시민사회 영역 면면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속에서는 젊은 ‘우먼파워’가 거세게 일고 있다.
30, 40대의 젊은 나이, 그것도 여성들이 나서 사회의 갖가지 이슈들을 짚어보는 토론의 장을 만들어내고 보수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끄집어내는 일종의 원동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을 뒤로하고 이들이 어떻게 이슈를 발굴해내고 착안하며 시민 사회의 의견을 이끌어내는지, 현 시점에서 보수 시민 단체의 여성 이슈 리더들을 조명해볼 필요성이 있다.
보수 NGO를 이끌고 있는 여성 리더 중에서도 박선례 열린북한방송 영상국장,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 신보라 미래를여는청년포럼 대표는 특히 각자의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보수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여성 3인방. 이들은 각자가 소속된 단체에서 정치, 경제, 통일, 사회, 청년 문제 등 명확히 구분된 여러 분야의 이슈들을 다루고 있지만 모두 여성 활동가로서 기획력과 지도력, 추진력을 인정받으며 보수 시민사회의 여풍을 주도하고 있다.
박선례 “북한 주민들 상황 너무나 가슴 아팠다”
박선례 열린북한방송 영상국장은 대학시절 전북지역에서 학생운동에 참여하며 친북 운동을 이끈 골수 좌파였다. 소위 학생운동권이었던 그는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의 전향을 계기로 북한 주민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박 국장은 “당시 저도 중국에 잠깐 다녀왔다.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비밀리에 만났고 조심스럽게 접근해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난 후 진실이 무엇인가 파헤치는 과정을 겪었고 그것이 지금 이 일을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약 10년 전 자유조선방송에서부터 대북라디오 사업을 시작해 북한 주민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그들의 의식을 개선하는 데 힘써온 박 국장은 수년간 자신과의 싸움을 지나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가장 힘든 점은 반응이 없는 라디오를 계속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국내 국민들이 아닌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피드백’이 없어 “과연 내가 제대로 만들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거듭해왔다는 것이다.
원동력이 무엇일까.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박 국장은 “5년 전 쯤 국경지역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저희 방송을 들어봤다고 했다. 이름을 정확하게 말하면서. 5년 만에 피드백을 받은 거다. 그 때 그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고 미소 지었다.
그는 “그 이후에도 사무실에 방송을 들어봤다는 탈북자가 찾아왔다”며 “피드백이 없어 힘들지만 또 이렇게 조금씩 피드백을 받게 되면 감동은 두 배로 전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북라디오 사업에 이어 박 국장은 최근 ‘생각의 즐거움 OTV’라는 인터넷 영상 사업 브랜드를 내걸고 사람과 세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
그는 “통일 이후 한반도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의 역할이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아직은 욕심만큼 길이 열리지 않았지만 앞으로 OTV가 사람들에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는 공간’으로 알려졌으면 좋겠다”며 바람을 드러냈다.
박주희 “시민단체 바라보는 시선 달라진 것 느껴”
박주희 실장은 보수 시민사회 단체의 1부터 10까지 차례대로 계단을 밟아온 그야말로 ‘잔뼈가 굵은’ 활동가로 일컬어진다. 최근에는 전교조, 자사고 등 굵직한 사회 현안을 짚어보는 논평을 내고 관련된 문제점을 제기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2년 바른사회시민회의(이하 바른사회)가 처음 창립될 때부터 12년간 줄곧 몸 담아 오면서 그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변화된 시선을 현장에서 직접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박 실장은 “처음에는 시민단체에 대한 선입견이 굉장히 강했다”면서 “근데 점차 바른사회의 외연이 넓혀지다 보니까 시민들에게 다가갈 때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대한문 쌍용자동차 농성장 철거, 코레일 파업 중단과 관련한 방송 인터뷰 뒤 격려 전화가 쏟아졌던 경험을 털어 놓았다.
박 실장은 “젊은 여자가 TV에 나와 발언하는 것을 보고는 보수에 이런 여성이 있는 줄 몰랐다면서 전화가 왔었다”며 “이러한 일련의 활동들로 바른사회를 합리적이고 건전한 목소리를 내는 단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바른사회의 입지가 달라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그 기저에는 박 실장의 열정과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 그는 “365일 쉬는 날 없이 일하다보니 한편으론 힘들기도 했지만, 사회의 여러 이슈를 배우고 알아가는 데 재미를 느끼며 현재를 즐기고 있다”고 웃어 보였다.
스스로 “일 욕심이 있다”는 박 실장은 “모르는 분야에 대해 호기심이 있다. 모르기 때문에 더 분석하고 이해하고 배운다.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문제에도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깨달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일을 하고 나면 희열감을 느낀다”고 했다.
박 실장은 “우리 단체 이름이 ‘better society’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시민들이 모인 단체라는 뜻”이라며 “항상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발전된 사람이 돼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발전해가는 개인이 모여야 사회가, 국가가 발전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신보라 “우리 사회는 분명 균형이 필요하다”
2011년 반값등록금 이슈가 우리 사회 화두로 떠오를 당시. 신보라 미래를여는청년포럼 대표는 “무조건적 반값등록금은 해답이 아니다”며 홀로 1인 시위에 나섰다. 여성으로서 입에 담기 힘든 모욕적인 말도 수차례 들었지만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우리 사회에 청년들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그는 “반값등록금 1인 시위할 때 주변 사람들이 굉장히 만류했다. 100대 1의 싸움에서 소수로 나가 희생될 수 있다는 시선이 많았지만 만류를 물리치고 나갔다. 근데 그 사건이 미래를여는청년포럼(미청포)을 단시간에 영향력있는 청년단체로 이끄는데 중요한 포인트가 됐다”고 회고했다.
대화 내내 신 대표의 목소리에서는 강인함이 느껴졌다. 뚜렷한 주관과 분명한 목적의식 때문일까.
시민사회 활동가로서, 더구나 청년 단체의 대표로서 그는 “우리 사회는 분명 균형이 필요하다. 좌우 이념도 여야도 모두 균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대표는 “아직 균형의 단계까지 성장하지 못한 우파사회가 아쉽다”며 “청년 파트는 더더욱 그렇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학생운동 세력이 뿌리 깊게 형성돼있는 대학 캠퍼스 안에서는 운동권이 여론형성과 분집을 담당하고 있지만, 분명 그 안에는 다른 시각이 존재하고 이러한 시각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미청포가 그러한 부분에서 일종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신 대표는 미청포를 운영하는데 ‘차별성’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흔히 생각하는 보수의 이미지가 잘못된 이미지화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를 초래한 책임도 분명히 있다는 지적과 함께 그는 “보수 우파라는 지금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청년다운 메시지를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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