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돼야한다'던 김현의 '영혼없는 사과'
<기자수첩>경찰 출석 직전 "국민-대리기사에 사죄"
반말도 안했고 수사 영향 안미쳐? 그럼 사과는 왜?
세월호 유가족들의 ‘대리운전 기사 폭행 사건’에 연루된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3일 오후 돌연 경찰에 출석했다. 당초 경찰은 24일 오전 10시에 출석할 것을 통지했지만 김 의원은 사전 통보도 하지 않은 채 말 그대로 ‘기습 출석’을 보여줬다.
김 의원은 이날 출석에 앞서 기자들에게 보낸 ‘참고인 조사에 임하며’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통해 “국민과 유가족 여러분께, 특히 대리기사님께 진심으로 사죄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더 이상 폭행 사건의 피해자인 대리기사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세월호 가족들이 더 상처 받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과 함께 자신은 반말을 하거나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 한 적이 없다는 변명뿐이었다.
마지막 문장도 “국민 여러분과 유가족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였다. 병원비를 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생계가 어렵지만 폭행 사건으로 생업에 나서지도 못하는 피해자는 사과의 대상에서 빠졌다.
김 의원은 지난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이후 주요 현안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왔지만 이번 폭행사건에 연루되면서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오히려 지켜주기 위해 애썼던 세월호 유가족들을 ‘방패’ 삼아 숨어버렸다.
침묵 뒤 나온 김 의원의 사과가 더욱 아쉬운 이유는 사과의 대상이 잘못됐다는 점도 있지만 그간 묵묵히 ‘을 지키기’에 애써왔던 당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우원식 위원장을 중심으로 1년 넘게 땀 흘린 구성원들의 진정성이 한순간에 흔들려버린 것이다.
더구나 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을 중의 을’이라는 ‘대리기사’라는 점은 더욱 아프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이라는 높은 직위에 위치한 분이 ‘대리기사’라는 낮은 직위의 서민에게 말 그대로 ‘최악의 갑질’을 했기 때문이다.
김 의원과 함께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한 의원은 23일 ‘데일리안’과 만나 “인격이 문제다. 평소에도 장관들을 향해 무엇을 비판할까만 생각할 뿐 상대의 말을 들어줄 자세가 돼 있지 않았다”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실제 그간 김 의원의 행적을 살펴보면 ‘갑의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에게 ‘이빨’을 드러낸 게 한두번이 아니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김 의원은 지난 2013년 9월 본회의장 입장을 하는 과정에서 국회 경위가 가방 검색을 요구하자 “감히 국회의원의 가방을 보자고 하는 것이냐”고 큰 소리를 질렀다. 이를 지켜보던 심 의원이 과거 국회 최루탄 사건을 떠올리며 “최루탄이라도 있나 보려고 그러나 보죠”라고 대꾸하자 김 의원은 “어떻게 여자 가방을 보자고 하느냐. 사과하라”고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은 같은 해 10월 실시된 국정감사에서도 이성한 전 경찰청장을 향해 “아는 게 뭡니까. 지금 경찰청장은? 아는 게 뭔데 이 자리에 앉아 계십니까”라고 호통을 치며 무안을 줬다.
그는 지난 5월 안행위에서 진행된 첫 세월호 참사 관련 현안보고에서는 강병규 전 안행부 장관을 상대로 “살릴 수 있는 애들을 국가가 죽였다. 동의하느냐, 아니냐”라고 단답형으로 답할 것을 주문했다. 강 전 장관이 “그렇게 단답식으로 대답을...”이라며 말끝을 흐리자 “‘무조건 우리가, 정부 책임자들이 잘못해서 구할 수 있는 사람을 못 구해 죽을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답변하는 게 장관의 태도 아니냐”며 호통을 쳤다.
김 의원의 공식 블로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가장 상단에 걸려있다.
“사람이 돼야 합니다. 따뜻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나하고 가까운 우리에게만 따뜻한 사람이 아닌 넓은 우리에게 따뜻한 사람이 돼야합니다.”
김 의원에 따르면 해당 글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다. 김 의원이 진정 친노를 자처한다면 자신의 행동이 해당 글 앞에 떳떳한지 돌이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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