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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산사태로 매몰직전 북한산성 행궁 최초 공개


입력 2014.10.30 09:52 수정 2014.10.30 09:57        최진연 유적전문기자

영국성공회 신부가 촬영한 사진, 북한산성문화사업팀이 발견

조선의 몰락과 함께 사진라진 북한산성 행궁 내정전의 원형사진이 29일 최초로 공개됐다.
경기도가 제공한 이 사진은 100년 전 여름휴양소로 북한산성 행궁을 빌려 쓰던 영국성공회 신부가 찍은 것을 북한산성문화사업팀이 찾아낸 것이다.

사진 속에는 산사태로 매몰되기 직전 행궁 내정전 툇마루에 한가롭게 앉아 책을 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영국성공회 소속의 신부와 수녀의 모습이 흥미롭게만 보인다.

매몰직전 영국성공회가 찍은 북한산성 행궁에 신부와 수녀의 한가로운 모습이 보인다ⓒ북한산성문화사업팀 제공

당시 영국성공회는 (1915년 Morning Calm 146호. 86P)을 통해 수만리 떨어진 영국의 독자들에게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엄청난 폭우로 인해 양쪽계곡은 마치 물 폭탄을 맞은 것처럼 보였고 식물과 바위, 흙 등이 모두 쓸려 내려가 언덕위에는 암반만 남았습니다. 쓸려 내려간 것들은 중앙계곡에 모두 쌓여 있었고, 폭우로 인해 그 곳 광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래 작은 마을의 집과 나무는 모두 휩쓸려 내려갔으며, 남아있는 것은 급류 바닥에 떨어진 바위뿐이었습니다.”

그들은 1915년 7월 23일과 24일 이틀 동안 쉼 없이 쏟아진 집중호우로 북한산자락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했던 행궁은 이렇게 허무하게 조선의 멸망과 함께 우리의 기억 속에 사라져갔다며 파괴된 행궁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했다.

웅장한 모습으로 드러난 행궁지ⓒ북한산성문화사업팀 제공

한편 북한산성문화사업팀은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3년동안 북한산성 행궁터를 발굴한 결과를 31일 오전 전문가들을 초빙해 현장설명회를 개최한다. 행궁은 내전·외전지 등 130여칸에 이르는 웅장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북한산성 행궁은 ‘북한지’ 및 ‘만기요람’ ‘동국여지비고’ 등 사료에만 전했을 뿐 이번 발굴로 전체적인 모습을 알 수 있게 됐다.

세부적 모습은 내전지 28칸과 외전지 28칸의 가운데 마루와 좌우온돌방, 월대, 계단, 어도, 대문지의 모습이 또렷이 남아 있으며, 이들 중심건물들은 재료와 축조방법에 있어 당시 건축기술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다양한 초석과 기단석 그리고 황토 및 구들시설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조선시대 왕궁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북한산 행궁 전경ⓒ북한산성문화사업팀 제공

그동안 북한산성 행궁지는 북한산 내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어 등산객들에게 훼손 되지 않아 산사태 붕괴당시 모습으로 잘 보조돼 있었다. 이번 발굴성과는 조선시대 행궁 건물지 복원의 기준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은 물론, 조선후기 건물지의 난방과 배수시설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실증자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경기도는 이번 성과를 토대로 올해 12월, 북한산성 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며, 북한산성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준비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최진연 기자 (cnnpho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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