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PB상품의 비밀 "중소기업 고혈 짜내서..."
중기중앙회 대형마트 거래 중소기업 애로실태 조사
납품업체 49.3%, 불이익 우려로 불공정 말도 못해
# 대형마트 A사는 중소 제조업체 T사가 제조해 자사 마트에서 판매하는 품목 중 매출이 높은 제품들을 PB상품(유통업체 브랜드 상품)으로 전환하면서 T사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T사는 납품단가 인하에 따른 손실을 떠안던가 아니면 제조원가를 낮추기 위해 이전보다 저질 제품을 납품할 수밖에 없었다.
# 대형마트 B사는 자사의 PB상품을 제조하는 중소 제조업체 D사에게 원료를 자사 그룹 계열회사로부터 구입토록 강요했다. D사로서는 계속해서 B사에 납품하려면 B사의 요구를 받아들여 기존 원료 거래선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 대형마트 C사는 중소 제조업체 J사와 분쟁이 발생하자 일방적으로 J사로부터 공급받던 PB상품의 판매가를 인상해 해당 상품의 판매가 저조하게 만들었다. J사로서는 일종의 보복조치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형마트가 제조업체에 제품생산을 위탁한 뒤 대형마트 브랜드로 내놓는, 이른바 BP상품 납품 과정에서 이뤄지는 부조리가 공개됐다.
6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대형마트 거래 중소기업 애로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PB 제품이 제조업체 브랜드 제품보다 품질 대비 높은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형마트의 횡포가 상당 부분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PB상품은 자체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지는 중소 제조업체에게는 대형마트의 브랜드를 빌려 안정적인 판로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PB상품 제도의 취지 자체도 중소기업에게는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해주고, 소비자에게는 질 좋은 제품을 싼 가격에 판매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
실제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312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중기중앙회의 이번 조사에서 PB상품을 대형마트에 납품한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은 47.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71.3%는 PB상품 납품이 중소기업의 판로확대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하지만, PB제품 납품가격의 원가 반영 정도가 적정하지 못해 애로를 겪고 있다는 기업이 열 곳 중 네 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32.2%는 PB제품 납품가격이 적정가격에 다소 못 미친다고 답했으며, 적정가격에 훨씬 못 미친다고 답한 중소기업도 4.2%로 조사되는 등 총 36.4%가 납품가격의 원가 반영 정도가 적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PB 납품 외에도 대형마트의 불공정 거래행위로는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요구, 다양한 형태의 추가비용 부담 요구, 대형마트 사유로 인한 훼손·분실에 대한 부당한 반품 조치, 판촉사원에게 다른 업무 수행 강요 등이 꼽혔다.
벤더를 통해 대형마트에 납품하고 있는 영세 중소기업의 경우 벤더가 납품업체와는 협의 없이 대형마트와 각종 판촉행사를 추진한 후 이로 인해 벤더의 마진이 감소하면 이를 납품업체에 전가하는 등의 부당한 사례로 애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애로사항에도 불구하고 대형마트와 거래하는 중소 제조업의 55.9%는 특별한 대응방법 없이 거래를 감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불공정 거래행위 근절대책으로 ‘신고자에 대한 비밀보장’을 꼽은 응답자가 절반 가까운 49.3%에 달해 중소 제조업체가 대형마트의 불공정거래와 관련한 문제를 제기할 경우 대형마트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보복 우려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얘기다.
김정원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정책실장은 “대규모유통업법등 제도적 기반 마련으로 대형마트의 불공정행위는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도 납품 중소기업은 불공정 행위 등에 문제제기 조차 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으므로 정부의 지속적인 직권조사와 단속강화 등이 필요하다”며, “아울러 대형마트에 실제 납품하는 중소업체까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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