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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인구조사해보니 ‘평양외 주민 40%가 교화소 출신’


입력 2014.11.16 10:05 수정 2014.11.16 10:09        김소정 기자

<북한 3대세습 해부①>김일성-김정일-김정은 권력 계승하며 벌인 숙청 때문

족벌체제가 지속되는 북한에서 쿠데타가 성공할 수 없는 배경에는 김일성부터 김정일, 김정은까지 권력을 계승하면서 벌인 잔혹한 숙청 때문이다.

이 때문에 2008년 북한 당국이 인구 조사를 벌인 결과 평양을 제외한 전 지역 주민의 40%가 평양에서 추방된 이들과 교화소 출소자들이라는 통계 결과가 있다고 한다.

북한 내부에 정통한 소식통은 “북한의 내각 중앙통계국에서 2008년에 진행한 인구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09년 인민보안부 주민등록국에서 통계를 낸 자료에 평양시 외 전국 지역의 주민 40%가 평양 추방자와 교화소 출소자로 집계됐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으로서도 놀랄 수밖에 없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201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형량을 축소시키는 형법 개정작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북한의 숙청 역사는 김일성 주석 때부터 시작됐다. 김일성을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나라를 광복시킨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 다른 반일단체와 인사들을 첫 숙청 대상자로 삼은 것이다.

김일성은 박헌영과 이승협으로 대표되는 남로당, 허가이 등 소련파, 최창익과 김두봉 등 중국연안파, 박금철과 오기섭 등 국내파 출신들을 때로는 미국의 간첩으로 둔갑시키거나 반당반혁명분자로 내몰아 청산해나갔다.

지금까지 북한 주민에게 김일성은 일제 강점기 20세의 나이에 반일 유격대를 창건하고 중국 동북만 밀림 속에서 15년간의 항일전쟁을 전개해 나라를 해방시킨 절세의 영웅으로 찬양되고 있다. 그러니 다른 반일단체나 인사들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 과제였다.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내세워 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구를 축소하거나 국방위원회를 상설기구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간부들 사이에 갈등을 조장하면서 숙청을 이어갔다.

그 중에서도 “당이 비대해졌다”며 중앙당 조직지도부에 대해 집중 검열을 벌이고 기구를 축소시키는 조치가 단행됐다. 우선 조직지도부 과장급 이상의 50여명 간부들을 해임시키고 그들이 살던 집을 몰수하는 사건을 벌였다. 갑자기 집을 잃게 된 간부들은 집단 민원을 제기했고, 김정일은 간부들과 그 가족들에까지 ‘반당적 종파주의’ 혐의를 씌워 정치범관리소로 보냈다.

또한 김정일은 원래 비상설 기구였던 국방위원회를 상설 기구로 개편하고, 군 총정치국장과 총참모장 직제를 신설했다. 이로 인해 군부 내 고위간부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이 고조됐다.

북한의 수도 평양이 만추(晩秋)의 빛깔로 물들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2일 웹사이트에 평양의 가을 풍경이 담긴 사진들을 공개했다. 노란 단풍이 든 가로수 아래로 가방을 든 여학생들이 한가로이 담소하며 걷고 있다. 휴대전화를 보며 걷는 듯한 학생의 모습도 보인다.ⓒ연합뉴스

특히 이때 인민무력부장이던 김일철이 군 지휘권을 잃게 되면서 군부파의 반발이 대단했다. 작전국, 정찰총국 등 기본 전투부서들과 군단들에 대한 통수권을 갖던 인민무력부장의 권한이 조명록 총정치국장과 김영춘 총참모장으로 나눠진 것이다.

군부의 반발을 누르기 위해 김정일은 우선 김일철을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겸 제2자연과학원 원장으로 좌천시키고 김영춘을 인민무력부장에 앉혔다. 이때 김격식이 총참모장을 맡게 된다.

하지만 군부 내 갈등은 더욱 심해졌고 결국 김일철은 모든 자리에서 해임됐다. 김격식은 상장으로 강등돼 4군단장으로 좌천됐다. 이로써 평양시 방어사령부 사령관으로 있던 리영호가 총참모장으로 등장한다.

김정일은 또 국방위원회를 내세우면서 중앙당이 담당하던 호위사업과 만수무강사업, 기초과학연구소를 그 산하로 이관시켰다.

당의 권력이 축소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갈등이 심화되던 군부가 당에 대한 간섭마저 일삼자 당시 중앙당 조직지도부 1부부장 겸 본부당 책임비서이던 리제강을 중심으로 하는 불만세력이 커져갔다.

리제강은 오랜 기간 조직지도부 1부부장 자리를 지켰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리제강은 ‘김정일의 선군영도에 반발하고, 김정은 후계세습에 불만을 표시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러던 중 리제강은 2010년 6월 평양-원산 간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 주도해 교통사고로 가장해 리제강을 제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은은 사실 권력을 승계받기도 전부터 평범한 평양시 주민들로부터 첫 원성을 받은 일이 있다. 20대 후반의 나이인 젊은 김정은에게 권력세습이 확정 공표되자 평양시민들 사이에 불만 섞인 여론이 형성됐다.

이런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인지 김정은은 2009년 6월 ‘청년장군 김정은 대장의 특별지시’를 보위부, 보안부, 중앙검찰소, 보위사령부에 동시에 하달했다.

김정은의 이름으로 내려진 첫 지시는 뜻밖에도 평양시 공원에서 여가시간에 카드나 장기를 즐기던 사람들을 잡아들이라는 것이었다. 북한 돈 100~500원 정도를 걸고 재미삼아 하던 것을 ‘도박’이라는 구실로 잡아들이면서 그해 8월 한달만에 400여 세대가 모조리 지방 산골로 추방당했다.

특히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고, 그 일가족과 친지까지 모조리 처형하거나 교화소로 보냈다. 집권 2년동안 리영호를 포함해 군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 작전국장 등 군 4대 핵심보직 전원을 교체하면서 군단장급 이상 군 간부 절반을 갈아치웠다. 통일연구원은 “김정은 집권 2년간 북한의 군부, 노동당, 행정부 주요 인사 218명 중 44%인 97명이 교체됐다”고 밝힌 바 있다.

김정은은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기 위해 어쩌면 할아버지나 아버지보다 더욱 심한 공포정치를 펼쳤다. 그동안 군부와 중앙당 간부들에 대한 잔혹 숙청사가 이 정도이니 각 시도군 단위에서 일반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저지른 횡포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런 탓인지 김정은의 최측근으로서 ‘2인자’로 불렸거나 불리고 있는 전현직 총정치국장인 최룡해, 황병서는 북한 매체에 등장할 때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면서 웃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김정은 곁에 선 최고위 간부들의 모습에서 주민들이 받을 영향이 클 것이다.

아울러 집권 초반부터 ‘김정은백두산대국’이니 ‘김정은조선’ 등 용어를 만들어내야 할 만큼 지금 북한 지도부의 ‘김정은 우상화’는 절실해보인다.

김소정 기자 (brigh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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