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미생"…공감의 힘 통했다
윤태호 작가 원작 만화 200만부 판매 기록
이재문 PD "평범한 이야기가 인기 요인"
그야말로 '미생' 열풍이다. '미생'을 본 직장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내 얘기"라며 무릎을 탁 친다. 평범한 이야기로 대중의 공감을 이끈 tvN 금토드라마 '미생'은 지난 22일 평균 시청률 6.3%, 최고 시청률 7.8%(닐슨코리아·유료플랫폼 기준)를 기록, 케이블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썼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윤태호 작가의 원작 만화는 200만부를 팔아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됐다.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창조경제박람회 간담회에 참석한 윤 작가와 드라마를 기획한 이재문 PD는 폭발적인 인기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좋은 결과에 만족하고 또 감사해요. 김원석 감독이 만화를 100번 넘게 봤다고 했을 만큼 제작진이 철저하게 준비했어요. 이런 노력 덕분에 훌륭한 드라마가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윤 작가)
'미생'은 지난 2012년 9월 단행본으로 발간되기 시작해 지난해 10월 9권으로 완간됐다. 기획부터 연재까지 총 4년 7개월이 걸렸다. 출판사에서 처음 제안한 제목은 '미생'이 아니라 '고수'였다.
"바둑 고수가 사람들에게 지혜를 준다는 뜻이었는데, 제가 고수가 아니라서 그런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죠. 그러다 제가 '미생'으로 하자고 했어요. 우리 모두 '미생'으로서 완생을 지향하며 살아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윤 작가)
'미생'의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주연이다. 고졸 출신 계약직 사원 장그래(임시완), 워커홀릭 오과장(이성민), 의리와 뚝심의 2년차 대리 김동식(김대명), 잘난 여자 안영이(강소라) 등은 회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다. 이들은 각자의 캐릭터를 현실감 있게 표현해 공감을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억지로라도 러브라인을 만들려는 지상파 드라마와는 다른 행보다.
이 PD는 "다른 소재의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며 "집단 주인공 드라마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인공 한두 명에게만 쏠리는 이야기가 아닌, 회사원이 삶을 다루고 싶었다"며 "한국 드라마에선 한계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음에도 기획한 건 회사원인 나도 '미생'이라고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PD의 말처럼 웹툰을 드라마로 옮기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한국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러브라인이 없다. 큰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제작진이 무역상사 직원들과 바둑 기사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세계를 체험했어요. 보조작가 두 명은 한 무역상사에 한 달 반 동안 출근해서 회식 자리까지 참석했죠. 직접 겪어보니 전문 용어들도 귀에 들리고 윤 작가가 정말 열심히 취재했다는 걸 느꼈어요.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도 재밌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회사원들의 평범한 이야기가 대중에게 먹힌 것 같아요."
'미생'은 모두가 알고 있는 평범한 직장 이야기를 과장 없이 담담히 그려낸다. '미생'을 보고 운다는 시청자들의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 PD는 "남편들이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부부가 함께 볼 수 있는 드라마"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금토드라마라 시청률이 높게 나올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며 "남편들이 '미생' 핑계로 일찍 퇴근해 가족들과 시청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웹툰을 드라마로 옮기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무엇일까. 윤 작가는 "드라마 제작에 제가 참여한 건 캐릭터의 모호함을 정리한 정도"라며 "제가 이런 저런 얘기를 언급하는 건 개입이라고 생각해 자제했다"고 말했다.
시청자의 입장에 선 윤 작가를 대신한 이 PD는 원작 만화를 최대한 살리는 데 주력했다.
"원작이 에피소드로 돼 있어 드라마로 제작하기 어려웠어요. 자칫하면 캐릭터들이 사라질 수 있거든요. '별순검' 시리즈에서 에피소드 구성을 접해 본 정윤정 작가 덕분에 캐릭터를 살릴 수 있었습니다. 캐릭터를 확장하거나 축소하지 않으려고 조심했죠. 모든 캐릭터가 대기업에 들어온 느낌을 주고자 했고, 중요한 사건들은 원작에 충실했죠."
'미생'을 통해 인기를 실감하고 있는 윤 작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사람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이 PD는 '미생'의 인기와 더불어 한국 드라마의 전반적인 위기를 언급했다.
"웹툰이 주목을 받고 있다는 건 소재가 부족하다는 얘기죠. '미생'이 시청률만을 위해 내달리는 드라마 시스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꾼들은 충분히 많이 있죠. 훌륭한 작가들에게 빨리하라고 채찍질만 가하는 것보단 시간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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