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김정은 고모부 장성택 처형 진짜 이유 알고 보니...
파벌 형성위해 뇌물 상납해온 장수길 발탁이 화근
외화벌이 ‘54부’ 총정치국 산하였다가 군부로 이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집권 2년만에 고모부 장성택을 전격 처형한 배경에 외화벌이 기관인 54부가 깊숙이 관여돼 있다.
실제로 장성택 처형 이후 54부 소속 간부들이 대거 숙청되거나 좌천됐으며, 이와 관련해 미국 ‘자유아시아방송’도 지난 3월10일자 기사로 “장성택 처형 이후 54부가 공중분해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북한 내부에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54부가 알려진 것처럼 노동당 조직지도부 행정부 산하가 아니라 군 총정치국 산하 유일 외화벌이 기관이었다”고 밝혔다. 장성택이 처형되기 전 측근으로 먼저 처형됐던 장수길 당 행정부 부부장의 이전 직함이 총정치국 산하 54부장이었던 것이다고 한다.
과거 54부장으로서 외화벌이 사업을 주도하다가 현행법 위반 내지는 지도부의 눈 밖에 나서 교화소를 다녀온 이력이 있는 장수길을 다시 행정부 부부장으로 발탁한 것이 장성택의 잘못 끼워진 첫 단추였다. 당시 장성택은 행정부장을 맡고 있었다.
장수길은 북한에서 중국에서도 ‘외화벌이의 대가’로 불릴 만큼 거래처가 많았고, 장사에 일가견이 있었다고 한다. 처형되기 직전에도 중국 은행에서 그것도 중국인 거래업체 관계자 명의로 1억 위안(약 182억원)이라는 거액을 대출받을 정도였다.
이런 장수길을 장성택이 발탁한 이유는 물론 장수길로부터 받아챙겨온 거액의 뇌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성택에게는 이미 북한에서 말하는 간부사업 즉, 인사권이 없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4번이나 자리에서 해임되는 사건을 겪었다가 2006년 당 행정부장으로 복귀될 당시 장성택에게 김정일의 엄명으로 인사권이 금지됐다.
하지만 결국 장성택이 이를 어기고 장수길을 발탁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장성택은 금지된 인사권을 남용해 장수길 외 리용하 당 행정부 1부부장 등을 등용했다.
장성택은 외화벌이를 내세웠겠지만 이를 통해 뒤로는 뇌물을 챙겨온 사실이 일종의 파벌을 형성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가장 뚜렷한 특징은 총정치국 산하 유일한 무역회사였던 ‘승리무역종합회사’가 폐쇄되고, 산하의 모든 사업소는 현재 인민무력부 산하 강성무역총회사 관할로 넘어간 것이다.
북한에서 무역회사는 산하에 사업소를 두고 평양 내부에서도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으며, 승리무역종합회사는 평양 각 구역에 식당, 상점, 사우나 등 달러만 받는 외화 업소를 운영해왔다.
이렇게 장성택과 함께 처형되거나 숙청된 간부들은 실은 행정부보다 54부 소속이 많았지만 장성택이 부장으로 있던 당 행정부가 폐쇄된 점에서 일각에서 행정부 간부들 대거 숙청설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당 행정부 폐쇄는 해당 업무가 당 생활지도부와 중첩되는 까닭에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온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도 북한에서 같은 이유로 행정부가 폐쇄됐다가 부활한 사례도 있다.
본보는 장성택의 실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된 것으로 실은 그가 간부들 사이에서 ‘곁가지’로 불려온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6일자 ‘북 간부들 사이에 장성택은 오래전부터 곁가지’라는 제목의 기사이다.
기사에서 인용한 대북소식통의 주장처럼 “그가 이미 권력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장성택 형제와 친인척들의 신변을 둘러싼 의혹 때문이다. 장성택이 처형되기 몇해 전부터 형과 동생, 매부가 각각 원인 모르게 사망하거나 실각한 뒤 거취가 불분명하다.
먼저 장성택의 형인 장성길 북한군 중장이 2006년 사망한 일이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그의 부고를 냈지만 사망 원인은 밝히지 않았다.
또 장성택의 둘째 형인 장성우 당 군사부장은 2009년 사망했다. 그의 부고는 8월26일자 노동신문에 나왔고, 사인을 ‘심장마비’로 밝혔다. 하지만 당시 77세의 고령이던 장성우였지만 그의 사망 소식에 당 내부에서는 “원인 모를 사망”이라는 풍문이 돌았다고 한다.
장성택의 매부인 리태남 내각 부총리는 2011년 초 해임된 이후 사실상 실종 상태이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신병 관계’를 사유로 내세웠다. 2012년 7월 리영호 총참모장이 해임된 이후 거취가 알려지지 않은 것과 같다.
장성택 처형 이후 조카 장용철 전 말레이시아 대사와 매제 전영진 전 쿠바 대사마저 북한으로 소환됐다. 이들에 대해서는 처형됐다는 전언도 있지만,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올해 1월31일 보도한 것에 따르면, 북한이 재외공관에 공개한 ‘장성택 등 16명의 처형 리스트’에 장용철, 전영진은 포함되지 않았다.
요미우리 신문은 이런 사실을 보도하면서 “외화벌이 세력이 장성택에서 군부로 이관된 것을 알리려는 의미가 큰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더했다. 즉 54부가 인민무력부 산하로 이관된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장성택은 2010년 6월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김정일의 사망과 김정은의 권력승계에 ‘백두혈통’ 가문의 일원으로 일정 기간 권력을 행사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김정은 집권 초기 제거된 점에서 그에 대한 숙청작업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뤄져왔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현재 조연준 조직지도부 1부부장이 과거 장성택의 숙청을 주도했다가 의문사로 숨진 리제강 조직지도부 1부부장의 수하인 점에서 정치적인 보복으로 보는 분석도 당연하다. 동시에 이미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와 부부 사이로 볼 수 없는 허울뿐인 김정은의 고모부였던 점에서 그가 권력 이양 기간에 잠시 ‘2인자’ 노릇을 한 것에 불과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북한 당국은 지난해 12월12일 장성택을 처형하면서 ‘천하의 만고역적’이라고 밝혔다.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그를 숙청할 때 내세운 혐의는 ‘반당 반혁명적 종파’였다. 장성택은 특별군사재판에 넘겨져 판결이 나오면서 즉결 처형됐으며, 이때 ‘국가전복 음모’도 더해졌다.
북한 매체들이 장성택 처형 다음날 보도한 소식에는 “장성택이 1980년대부터 비밀기관을 통해 귀금속을 사들이고 돈을 뿌리며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장성택이 2009년 한해에만 제 놈의 비밀 돈창고에서 460여만 유로(약 66억원)를 꺼내 탕진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면서 지도부 내에서는 권력기반을 공고히 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북한 매체에 등장하는 간부들 중 장성택처럼 뒷짐을 지고, 짝다리를 짚은 채 서 있거나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사람은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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