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계의 '개싸라기' EXID의 역주행이 우려스럽다
<김헌식의 문화 꼬기>뒤늦게 순위만 높아가면 긍정적인가
도로상의 역주행은 매우 위험천만이지만, 대중문화계의 역주행은 긍정적으로 읽힌다. 왜냐하면, 뒤늦게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극장가에는 ‘개싸라기’라는 은어가 있어 왔고, 이는 SNS 시대가 되면서 더 일반화되었다.‘개싸라기’는 뒤늦게 흥행가도를 달리는 작품인데, 특히 개봉 2주차에 순위가 오를 경우 ‘개싸라기’라는 말을 사용한다.
보통 개봉 1주차에 박스오피스 순위가 높고, 차츰 관객 수가 줄어드는 것이 상업영화 개봉의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싸라기’는 1주차에는 뒤지다가 2주차부터 흥행 속도가 붙는다. 이 원인으로는 바로 입소문이 꼽힌다. 광고 마케팅의 과잉으로 속는 사례와 달리 ‘개싸라기’는 바로 저평가된 작품이 입소문으로 뒤늦게 인정을 받는 사례인 것이다.
이런 버벌 마케팅의 효과는 SNS를 통해 급속하게 전파되는 것이 스마트 모바일 환경이다. 특히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이런 개싸라기 현상에 일조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최근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이다.
음원 차트에서도 이런 역주행은 그동안 충분히 있어 왔다. 계절적인 요인이 작용하거나 오디션 프로그램 여기에 해당 가수의 사고나 사망이 역주행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또 하나가 있는데, 바로 직캠이다. 직캠은 바로 소비자 즉, 팬들이 직접 캠을 들고 영상을 찍어 SNS에 올리는 콘텐츠 형식을 말한다. 비록 콘텐츠의 질은 나쁘지만, 이용자가 좋아하는 포인트에서 촬영을 할 뿐만 아니라 수준에 비해서 리얼리티를 잘 담아낼 수 있다.
역시 SNS의 버벌 때문에 EXID의 ‘위아래’ 직캠도 강제컴백을 가능하게 했고, 뒤늦은 인기와 활발한 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EXID는 지난 8월 이후 별다른 활동을 못했지만, 직캠하나 때문에 지금은 대세 분위기를 만들었다.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도매체들은 이에 대한 호평을 내놓기 바빴다.
하지만 정말 호평할만 노래인지 그리고 그에 걸맞는지는 알 수가 없다. 순위만 높이 올라가면 무조건 평가를 긍정적으로 내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위아래의 직캠은 성행위를 연상하게 만드는 댄싱을 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 이용자들은 크게 열광했다.
역주행의 사례로 크레용팝의 경우를 EXID와 같이 견주는 경우가 많은데, 크레용팝의 ‘빠빠빠’는 은유(隱喩)적이었다면, EXID의 ‘위아래’는 직유(直喩)이다. ‘위아래’와 연동하여 직설 댄싱에 가깝다. 이렇게 직설적인 댄싱을 구사한다면, 결국 걸그룹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에 불과해진다.
많은 기획자들은 의미 있는 정체성을 가진 걸그룹을 고안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경쟁이 격화된 상황에서 걸그룹이 이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것은 ‘섹슈얼리티’도 아니고 ‘섹스’밖에 없는 것이다. 크레용팝의 경우는 지금 보면 이제 고상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고품격 클래식 뮤비를 선보였던 셈이다.
징조는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새로운 걸그룹들이 모두 섹시 경쟁에 나서는 것만이 아니라 기존의 색다른 정체성의 걸그룹들도 모두 섹시컨셉으로 회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순이나 순수의 이미지였던 헬로비너스나 AOA가 모두 섹시 컨셉으로 돌아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마지막 이성의 잣대가 걸러주었던 EXID를 강제 부활시킨 것은 브레이크가 파손된 폭주기관차를 연상하게 만든다. 걸그룹의 붕괴가 막바지에 이른 상황에서 남성이 올린 직캠은 이를 가속화해주는 촉매제로 작용하는 셈이 될 것이다. 영화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같은 역주행을 음원이나 음악프로그램에서 기대한다는 것은 미몽(迷夢)일까.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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