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 - 남근석 기행>궁예가 결사항전한 명성산 알터바위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명산 중, 전망 좋은 바위꼭대기에는 인공적으로 파놓은 구멍들이 있다. 이들 바위구멍은 타원형으로 대부분 직경 1m 이내의 알터 바위로 부른다. 이 구멍에는 물이 담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음양의 조화 즉 남성과 여성이 함께 있다는 뜻이다.
속리산 문장대, 영암 월출산, 부산의 금정산. 대구 팔공산 등 등 특히 서울 북한산 정상 백운대, 염초봉, 족두리봉에도 알터 바위가 있다.
이 알터 바위는 옛 사람들에게 신앙의 대상이었다. 생산과 생식을 상징하는 여성의 성기형태를 바위 꼭대기에 조성해 놓고, 천신에게 정성으로 기도를 하면 생산과 풍요를 얻어 삶의 질이 높아지고, 더 나아가 종족보존과 나라의 태평세월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러한 원시신앙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알터에는 크고 작은 구멍이 여러 곳에 뚫려있는데, 이것을 학문적으로는 성혈로 부르고 있다. 성혈은 바위정상에 작은 구멍을 여려 개 판 경우가 있고, 큰 구멍 하나만 파 놓은 곳도 있다. 이 구멍에 여인들은 길쭉한 돌로 구멍을 갈며 자식을 낳게 해달라고 빌었다.
알터 바위에는 옛부터 큰 인물이 태어났다는 난생설화(卵生說話)가 자주 등장한다.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이 알에서 나왔고,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도 알에서 나왔다. 우리 선조들은 알은 탄생과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알터의 등장은 대체적으로 신석기시대를 거쳐 삼국시대·고려·조선까지로 보고 있다.
이 신비스러운 알터 바위가 강원도 철원 명성산에도 있다. 명성산은 억새풀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알터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알터 바위는 명성산 정상에서 서북쪽 끝부분 해발 823m의 봉우리 아래 있는데, 전설에는 궁예가 이 바위에 올라 산성을 쌓는 부하들을 독려했다고 해 궁예바위로 부르고 있다.
궁예바위는 산성 남문지 옆에 우뚝 솟아 있다. 높이 15m 정도의 바위정상에는 웅덩이가 둥글게 파여 있다. 직경 1m 정도에, 깊이가 약 20cm의 인공적으로 파놓은 알터다. 한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공간이다.
그런데 알터바위는 다산과 풍요를 위한 장소인데, 민간인 또는 여인들이 접근하기에는 험준한 지형이다. 이곳에 누가 왜 알터를 만들었는지가 미스터리다. 산성은 피신과 혈전의 공간이다. 그렇다면 산성 안에 있는 이 알터는 궁예가 쇠락해가는 국운을 천신에게 빌었던 장소로도 추정이 가능하다.
이 산성은 신라 말 궁예가 철원에 태봉국을 세워 도성을 쌓고 통치하다가 왕건에 밀려 부하들과 함께 명성산에 들어와 쌓은 것으로 전한다. 하지만 원래 있던 산성을 궁예 세력이 개축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성벽은 산 정상에서 좌우능선을 따라 축성한 포곡식 산성이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퇴락한 채 돌무더기만 널브러져 있다.
궁예는 이곳에서 결사 항전하다가 산성이 함락되자 전의를 상실한 채 통곡하며 부하들에게 해산명령을 내렸다. 군사들은 태봉국의 비운을 슬퍼하며 울음을 터뜨렸으며, 그 후에도 가끔 산에서 슬픈 울음소리가 들려 산 아래 마을사람들은 울음산으로 부르고 있다.
궁예바위는 고공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접근하기가 어렵다. 암벽밧줄이나 안전시설이 없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바위 밑에는 옛 군사들이 눈비를 피할 목적으로 뚫은 작은 동굴도 있다. 궁예바위를 지나 허술한 밧줄을 타고 올라가면 시루봉이다. 이곳에서 철원 북쪽으로 DMZ내에 위치한 태봉국 도성이 한눈에 조망된다.
명성산성은 철원 갈말방향에서 볼 때 산 지형이 여성의 음부를 빼 닮았다. 그 중간지점에 알터 바위가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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