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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아이들의 직업선택 십계명, 위대한 질문으로 시작


입력 2015.01.31 15:09 수정 2015.02.01 10:34        박소현 기자

<서평>‘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강현정·전성은,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강현정 전성은 저.'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메디치미디어
물수능이 가져온 후폭풍이 거세다. 게다가 교육부는 대입 인성평가 방안을 꺼내들었다가 새로운 방안을 시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을 바꾸는 등 오락가락한다. 인성평가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어느 하나 뚜렷하지 않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는 늦둥이 초등학생 동생 이야기를 꺼내며 전화를 걸어왔다.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 거냐며, 당신의 교육 방식의 문제점을 말해달라고 했다. 그 물음에 멍해졌다. 분명 아이를 낳으면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차 있었는데, 가벼운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어졌다. 엄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싶어졌다. 자녀에게 한없이 강하지만 속으로는 수백 번 무너지는 사람. 그래서 엄마 노릇은 어렵지만 위대하다.

메디치미디어가 펴낸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이라는 책을 보면 그 생각은 확고해진다. 아니, 사실 그래서 불편하다. ‘직업선택의 십계명’이라는 불편한 질문을 좇는 한 엄마를 바라보는 저자들은 불편함에 시달리지만 이내 편안함보다 낫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말도 안 되는 대단한 사람들을 열거하지는 않는다.

거창고등학교 강당에 걸려 있다는 직업선택의 십계는 이렇다.

하나.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처음에 이 책을 접하면 불편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십계명이다. 획기적이긴 하나 그것이 끝이다. 이 직업선택의 십계명을 지키면 성적보다 인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가능해지고 그러니 아이에게 이 십계명을 보여주라는 말을 하겠지 싶다. 하지만 이 책은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 책에 등장하는 거창고 졸업생 중에 이를 지킨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은 철저하게 이 직업선택의 십계명을 따르고 있다.

이 책은 교육 전문 기자인 강현정이 거창고 직업 십계명을 정리한 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과 함께 펴냈다. 강현정은 1971년 출생으로 숙명여자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SBS와 MBC 방송 일을 하다 교육 전문 기자가 돼 휴먼 다큐멘터리를 쓰듯 직업십계명을 3년간 취재했다. 10대 자녀 둘을 둔 엄마로 대한민국의 보통 엄마를 대표하기도 한다.

간간이 보이는 자신의 경험담을 보면 영락없는 ‘그냥’ 엄마다 싶다. 거기에서 오는 편안함이 직업선택의 십계명이 나아갈 방향을 잡아준다. 1부 ‘아이가 어떻게 자라길 바라세요?’부터 2부 ‘직업선택의 십계, 그 안으로 들어간 제자들’, 3부 ‘내 삶에 들어온 직업선택의 십계’까지 저자가 풀어내고 있는 메시지는 직업선택의 십계명 표면에서 절대 바라볼 수 없는 ‘숨겨진 메시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을 읽는다고 자녀 교육의 해답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해답을 찾을 구멍은 생긴다. 왜냐하면 직업선택의 십계명이 숨기고 있는 메시지는 바로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직업선택의 십계명이 숨긴 핵심은 그것이다. 명령문으로 적혀 있지만 모든 것은 질문이 된다. 그 질문을 곱씹을 때 비로소 독자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명령문이 질문이 되는 그 순간 말이다.

질문에서 시작하는 책 “아이가 어떻게 자라길 바라세요?”

이 대답에 나올 대답은 뻔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첫 번째 질문으로 이 질문을 택했다. 독자의 위선을 꼬집는 것이다. 독자들은 스스로 내린 답이 직업선택의 십계명과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후 다시 직업선택의 십계를 접한다. 비로소 직업선택의 십계명이 말하고 있는 바가 단순한 명령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자신도 모르게 인정한다.

아이가 어떻게 자라길 바라느냐는 질문은 사실 지금의 교육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냐는 물음과 같다.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한 이 사회에 아이를 내보냈을 때의 불안함을 직시해보라는 것이다. 그런 불안함에 의해 궁지에 몰린 독자들은 대답을 찾고 싶어 안간힘을 써본다. 불행한 일은 암만 그래봐야 이 책에는 해답이 없다. 이 책이 1부에서 말하는 거창고등학교의 교육은 ‘다른’ 교육일 뿐이지 정답인 교육은 아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내 아이가 받지 못한 교육을 받은 아이는 엄청난 변화를 겪는지 궁금해진다.

결과는 이상했다. 아니, 특별했다

굳이 시골 학교를 지망해서 가난한 아이들의 뒤를 봐주는 교사, 멸종위기 호랑이의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노숙을 감수하는 PD, 안정된 직장인 은행을 버리고 마음의 소리를 좇아 직업을 바꾼 문화재 복원가, 남들 다 꺼려하는 영농인의 삶을 사는 농부의 아들, 일본에서 ‘종군위안부’ 영화를 상영한 시민운동가이자 교수.

저자가 쫓아간 거창고 졸업생들의 거취다. 굳이 공통점을 발견해보자면 ‘이상한’ 행동들을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은 직업선택의 십계를 지키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모두 직업선택의 십계를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흥미롭다. 직업선택의 십계가 만들어낸 것인지도 불투명한 대단한 사람들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자연스레 직업선택의 십계의 힘이 느껴진다.

이들 모두는 직업선택의 십계가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어디가 잘나서 이런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특별한 교육을 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브레이크’처럼 작용했다는 직업선택의 십계 안에서 신기한 인생을 살아냈다. 누구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것이 직업선택의 십계는 부정하면서도 첫 질문에 대답했던 독자들이 바라는 내 아이의 삶이다.

강현정은 거창고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거창고 졸업생들을 찾아 인터뷰했고, 일본까지 건너가기도 했다. 그녀는 이 책을 마무리한 뒤 “거창고를 명예졸업한 기분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가치관이 변했고 이를 통해 “사춘기 아이의 인성과 성적이 향상되었다”고 고백한다.

어려운 말을 쉽게 하는 책, 하지만 반신반의가 좋은 태도란다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냐 하면 그 때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믿으라 한다. 하지만 곧 반신반의(Half-believing) 이야기를 꺼낸다. 이 책은 독자에게 결론을 내주기 싫은 것이라는 ‘믿음’이 다가오며 지금까지 무슨 책을 읽은 것인가 싶다. 하지만 곧 다가오는 메시지는 그렇다. 반신반의하는 사람에 의해 역사가 이어졌다. 독자 역시 반만 믿어도 된다. 여기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부모는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부모는 그저 고민할 뿐이다. 내가 자식 교육을 잘했나 못했나, 죽는 날까지 참 사람이 뭔지, 남의 아픔이 뭔지, 역사와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씨름하고 고민하는 사람. 그런 부모의 모습이 자식에게도 이어지는 것이다. 부모가 살아온 흔적이 자식에게도 이어진다. (p218)

궁극적으로 직업선택의 십계명이 이렇다는 말인 것 같다. 직업선택의 십계명은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그것을 접하고 그것에 의해 살아왔던 사람들의 흔적이 이어질 뿐이다. 어려운 말은 너무나 쉽게 던지는 이 책은 아무래도 불친절하다. 하지만 그 불친절마저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계속해서 구멍을 열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믿으라는 어려운 말을 던져놓고 반신반의라는 구멍을 열어주고, 직업선택의 십계명이라는 어려운 명령을 내려놓고 어차피 답 없는 질문이라고 위로해주는 그런 구멍 말이다.

임소현 기자 (shl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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