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내부에서도...'총선때 살고 보자' 유승민 당선
박 대통령-새누리당 지지율 동반하락 위기감 고조
전문가들 "당 목소리 커진다고? 지지율이 최대변수"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차기 원내지도부로 ‘총선 승리’를 선택했다. 원내대표 경선 기간 내내 ‘친박계-비박계’의 계파 갈등이 두드러졌지만 결국 1년 앞으로 다가온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새누리당은 2일 오전 의원총회를 갖고 신임 원내대표에 유승민, 정책위의장에 원유철 의원을 각각 선출했다. 제19대 국회 들어서 이한구-최경환-이완구 전 원내대표 등 연이어 친박계 원내지도부를 구성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원조 친박이지만 비박계로 분류되는 유 의원을 선택한 것이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당내에서는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박근혜’라는 강력한 구심점이 ‘콘크리트 지지율’을 바탕으로 각종 굵직한 선거에서 당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최근 콘크리트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발현됐다는 주장이다.
영남권의 한 의원은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내년 총선을 앞둔 의원들의 흐름이라고 봐야 한다. 총선을 위한 원내지도부가 선출된 것”이라며 “지금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율이 이렇게 낮고, 국민들의 눈초리가 냉혹한 상황에서 ‘친박-비박’ 구도를 만들려는 사람들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면서 당의 지지율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앞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그간 박 대통령의 견고한 지지층이었던 50대 이상, 영남권에서조차 지지율이 빠지면서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는 등 말 그대로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를 기준으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 즉 ‘국정수행을 잘 하고 있다’는 응답은 지난해 12월 다섯째주 조사에서 44.8%를 기록한 이후 이달 들어 신년 기자회견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연말정산 세금폭탄’ 논란 등으로 인해 1월 첫째주 43.2%, 둘째주 39.4%, 셋째주 34.1% 등으로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특히 이날 발표한 1월 넷째주 주간 정례조사에서는 전주대비 1.9%p 하락한 32.2%를 기록하며 취임 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새누리당의 지지율도 동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12월 넷째주 조사에서 지지율 40.6%를 기록한 1월 셋째주 38.6%, 1월 다섯째주 35.9%로 계속해서 지지율이 빠지고 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차기 총선을 고려할 때 청와대와 선을 그을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유 의원은 경선 기간 동안 이 의원 측이 ‘청와대를 향한 옳은 소리’를 내세운 것과 달리 ‘총선 승리를 위한 도구’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그는 지난달 27일 출마선언에서 “당과 정부, 그리고 우리 정치의 변화와 혁신에 앞장서서 당과 의원 여러분에게 총선승리를 바치겠다”고 주장한 데 이어 이날 토론회 모두발언에서도 “국민의 분노를 알아듣지 못하고 이대로 간다면 내년 총선은 정말 어려워진다”고 강조했다.
당내 한 관계자는 “제20대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현역 의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연스레 ‘선거에서 살아남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사실상 ‘청와대와 선 긋기’를 내세운 유 의원의 전략이 표심 공략에 성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미현 알앤서치 소장은 “이 의원과 홍 의원이 당선되면 이완구 총리 후보자에 최경환-황우여 부총리까지 청와대 입장에서는 친박계를 전면에 배치하게 되는 것”이라며 “이는 총선을 앞두고 도움이 되지 않고, 결국 비박계가 주를 이루는 수도권 현역의원들은 위기감을 느낄 것”이라고 분석했다.
‘쓴소리’하는 신임 원내지도부, 청와대와 관계 재설정 불가피?
이와 함께 이날 ‘유승민-원유철’ 조합의 당선으로 새누리당 지도부는 모두 비박계로 채워지게 됐다. 특히 김무성 대표와 유 의원 모두 ‘원조 친박’이었지만 박 대통령과 멀어진 사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향후 당청관계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새누리당의 지도부는 모두 친박계로 구성돼 왔다. 이에 따라 당 안팎에서는 ‘당이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을 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하지만 지난해 7·14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가 ‘친박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을 제치고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데 이어 이날 유 의원이 ‘친박 핵심’으로 꼽히는 홍문종 의원과 조합을 이룬 이 의원을 제치고 원내 사령탑을 맡게 됐다.
박근혜정부를 탄생시킨 주역인 ‘친박계’가 당권을 둘러싼 큰 선거에서 연이어 패배의 쓴맛을 보면서 사실상 정권 출범 2년만에 친박계가 비주류 세력으로 밀려난 것이다.
집권 3년차를 맞아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 중인 청와대로서는 새누리당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수조건이지만 김 대표와 유 의원 모두 ‘강한 집권여당’을 내세우는 만큼 당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유 의원의 당선으로 청와대와의 관계는 상당히 껄끄러워질 것이고, 당내 친박과 비박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며 “다만 대외적으로는 상당히 역동성 있게 가면서 총선 국면에서는 유리하게 전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당청관계는 누가 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포인트는 청와대가 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라면서도 “유 의원이 나름대로 소신이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할 것이고, 어떻든 간에 쓴소리도 좀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에 따라 당청관계도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금처럼 계속 하락세면 ‘거리 두기’로 나설 것이지만, 지지율이 회복세로 돌아서면 박 대통령과 보조를 맞출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김무성-유승민 조합으로 당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면서도 “결국은 뭐든지 박 대통령의 지지율과 연동돼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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