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예' 북 해외 노동자, 온종일 일해도 '무일푼'
엔케이워치 인권피해 실태 유엔 청원서 제출 계획
북한 해외파견 근로자 출신 탈북자 임일 씨(47). 1996년 쿠웨이트로 건너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 종일 건설현장에서 단순 노동을 했다. 2주에 한 번 금요일 오후가 되면 유일한 휴식 시간이 주어졌지만 사상 교육을 받느라 그마저도 편히 쉴 수가 없다. 2~3일에 한번 씩은 당 간부의 지시에 자정까지 연장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5개월간 쉴 틈 없이 일했지만 그는 단 한 푼의 임금도 손에 쥐어보지 못했다.
평양 출신 탈북 작가 임일 씨는 1996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북한 해외파견근로자로 쿠웨이트에서 생활했던 시기를 이렇게 회고했다.
임 씨는 12일 엔케이워치가 주최한 ‘북한 해외파견 근로자의 인권피해 실태 UN청원서 제출 기자회견’에 나와 자신이 해외근로자로 파견됐을 당시 직접 겪은 인권피해 실태에 대해 증언했다.
북한 해외건설 모체 기업에 소속돼 일하다 건설노동자로 쿠웨이트에 가게 된 임 씨는 약 5개월 간의 파견 기간 동안 한 달에 한번 꼴로 쉬면서도 월급을 받지 못했다면서 “지금에 와서야 과거 노예사회에나 있었던 풍경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쿠웨이트에 11월 8일에 도착해 다음 날부터 바로 일했다. 새벽 6시에 기상해 세면과 정돈을 마치고 7시부터 12시까지 일하고 1시까지 점심을 먹고 다시 저녁 7시까지 일했다. 또 2~3일에 한번 꼴로 밤 12시까지 연장 작업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특히 12시까지 이어지는 연장 작업의 경우는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간부들의 선동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간부들은 하루 일과가 끝난 뒤 ‘충성의 노동을 통해 수령께 기쁨을 드리자’라며 근로자들을 선동했고, 근로자들은 이에 불만을 표하지도 않고 모두 연장 작업에 나섰다.
그는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자는데 가만히 있거나 (작업하기 위해) 일어나지 않으면 반동”이라며 힘든 작업 일과에도 연장 작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휴식이 허용된 시간은 금요일 오후 뿐. 그러나 이마저도 2주에 한 번으로 정해져있어 엄밀히 따지면 한 달에 하루만 휴식을 취하는 셈이었다. 휴식을 할 때면 김일성, 김정일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봐야했고 1시간씩 생활학습도 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일하면서도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임 씨는 “처음에는 고용회사가 자금사정이 어려워 임금을 줄 수 없다고 하더니 서너달쯤 지나니 이제는 당에서 아직 (임금을) 주라는 지시가 없다고 했다”며 “그런데도 누구 하나 말을 할 수 없었다. 북한에서 당은 곧 수령인데 누가 거기다 말을 할 수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쿠웨이트에서 일하는 5개월동안 노동에 대한 임금은 단 한 차례도 받지 못했고, 2월 16일 김정일 생일에 20KD(쿠웨이트 화폐 단위, 현재 환율 기준 약 7만5000원)를 받은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인권유린과 임금 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결심, 작업장을 빠져나와 쿠웨이트 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아갔고 그렇게 남한에 정착하게 됐다.
2000년대 초반 러시아에 벌목공으로 파견돼 약 2년간 일했던 탈북자 김모 씨 역시 이 자리에 참석해 심각한 노동 및 임금 착취를 경험했다고 전했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해 밤 12시나 오전 1시 혹은 2시까지 일하기도 했다는 김 씨는 당시 임금을 아예 못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일한 만큼의 충분한 대가를 받지 못했고, 돈을 벌기 위해 인력시장에라도 나가려면 당 간부들에게 그날 번 돈의 일정 부분이나 담배 등을 상납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이와 관련, 북한인권단체 엔케이워치는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해외근로자 인권침해 사례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이와 관련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 현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는 유엔 청원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엔케이워치는 북한 해외근로자 출신 탈북자들이 겪은 인권침해 사례들을 묶어, 유엔 현대판 노예제도 특별보고관에게 실태를 고발하고 이 부분과 관련해 현장 방문 조사 등이 이뤄지도록 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엔케이워치는 지난해부터 북한 해외근로자 출신 탈북자 13명과의 인터뷰를 진행했고, 북한 독재자의 비자금 및 통치자금 조성을 위해 해외근로자들에 대한 강제 노동과 임금 착취, 인권유린이 자행된 점을 확인했다.
안명철 엔케이워치 대표는 “작성된 총 13건의 청원서를 유엔 현대판 노예제도 특별보고관을 직접 만나 전달하고 다음 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인권이사회에 직접 보고토록 할 예정”이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례를 조사하고 청원서를 제출해 현대판 노예와 다름없는 북한 해외근로자들이 겪는 인권유린 실태를 전세계적으로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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