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남근석>제천시 송학면의 '기자신앙' 바위
제천 송학면 무도2리에는 음지만실이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 뒤에는 왕박산 줄기가 가로막혀 일조량이 늘 부족하다보니 논밭에 곡식마저 늦게 여물자 마을지명이 음지만실로 붙었다.
마을 앞에는 안산이 입구를 감싸고 있으며, 마을 한가운데로는 작은 산줄기가 흘러내려 웃담과 아랫담으로 구획이 나눠져 있어 옛부터 피난 골로 알려진 곳이다.
안산 끝자락에는 용을 닮았다는 용암(공알바위)이 있는데, 주민들은 이 용암이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고 해마다 정월 초이튿날 자정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동제를 지내고 있다.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 부녀자들의 다산을 바라는 뜻에서 지내는 공동체 의식으로 오랫동안 내려온 마을의 내력이다.
용암으로 부르는 ‘공알바위’ 속에는 길이 1.5m, 폭 1m 남짓한 크기의 달걀모양처럼 생긴 돌덩어리가 들어있다. 마치 그 형상이 적나라하게도 여성의 음핵을 빼닮았다. 옛 사람들은 이 공알을 여자의 생식기관으로 상징하고 숭배의 대상으로 섬기고 있다. 이 ‘공알바위‘는 국내서 기자신앙 처로는 유일한 곳이다.
남아선호사상이 지배적이던 시절, 아들을 낳지 못하는 부녀자들이 용암 앞에서 5m 정도 떨어진 개천 둑에서 공알 속으로 돌을 던져 들어가면 아들을 얻는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실제로 공알바위 안에는 주먹만 한 돌이 여러 개가 포개져 있다. 그리고 공알바위를 막대기로 쑤시면 마을부녀자들이 바람이 난다해 엄하게 금하고 있다고 한다.
남자아이를 선호하는 시대가 아닌 지금도 이곳을 찾아와 촛불을 밝히고 제물을 차려 기원하는 여인들이 가끔 있다고 주민들이 전해준다.
음지만실에서 38번 국도를 따라 영월방향으로 약 5km 정도가면 입석초등학교가 있다. 이 초등학교 앞 들판에 7개의 돌을 3단으로 포개 올린 높이 4m의 선돌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 어귀에 세워진 선돌 때문에 마을지명도 입석리로 부른다. 선돌이 세워진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이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옛날 충주주변을 돌아다니던 마고할미들이 우연히 이곳에서 마주쳤다. 평소 사이가 나빠 으르렁대던 두 할미는 서로 힘자랑을 하게 됐다. 한 할미가 옆에 있던 큰 돌을 던졌다. 그 돌은 논 가운데로 날아가 우뚝 섰다. 이것을 본 다른 할미 역시 커다란 돌을 집어 들고 앞서 할미가 던진 곳을 향해 던졌다. 그 돌은 먼저 돌 위에 겹쳤다. 두 할미의 힘겨루기는 승부를 보지 못하자 각기 헤어졌다.
마을사람들은 옛부터 선돌을 기자신앙의 대상물로 믿어 왔다. 1974년에는 ‘선돌회’를 만들어 관리하다가 1986년부터 매년 10월에 선돌제를 지내고 있다.
입석리선돌제는 2014년 충북민속예술축제에서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 경연에는 입석리 주민 53명이 참가했는데, 이번 경연을 위해 수십차례 정기공연 연습을 해 왔다.
행여 이 축제가 단순한 볼거리 행사로 전락해버리면 풍농과 다산에 온 정성을 다했던 선조들의 지혜와는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다.
선돌은 지닌 생산력에 대한 믿음 때문에 옛 부터 몸이 좋지 않은 사람이나 아들을 얻기 위한 부녀자들의 한맺힘이 이 선돌에 녹아있다. 입석리 선돌은 고고학자들의 고증을 거쳐 2001년 충북도 지정 지방기념물 제117호로 지정됐다.
음지만실의 ‘공알바위’가 여성의 성기를 상징한다면 입석리 ‘선돌’은 남자성기를 상징한다. 하지만 자식번성을 기원했던 토속신앙의 숭배는 우리 곁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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