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 살린 ‘농구 열기’에 찬물 끼얹은 KBL
아시안게임 우승-전자랜드 돌풍 ‘농구 붐 조짐’
김영기 총재, 팬들 열망에 역행하는 행정 눈살
지난해 10월 한국농구에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남녀농구대표팀이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최초로 동반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프로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의 선전은 최근 몇 년간 거듭된 인기 침체와 국제 경쟁력 하락으로 한국프로농구연맹(KBL) 수준에 의심을 품고 있던 팬들의 여론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국제대회에서의 선전은 농구팬들이 다시 한국농구에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올 3월 또다시 인천이 농구열기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이번에는 인천 연고 프로팀 전자랜드가 주인공이었다. '2014-15 KCC 프로농구' 정규시즌 6위로 플레이오프에 턱걸이했던 전자랜드는 6강에서 3위 SK를 3전 전승으로 제압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일약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4강에서도 2위 원주 동부를 상대로 최종전까지 가는 선전을 펼쳤다.
별다른 스타 없이도 조직력과 희생정신으로 중무장한 언더독의 반란, 3년째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고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 리카르도 포웰과의 끈끈한 스토리가 맞물리며 전자랜드는 플레이오프 내내 뜨거운 화제를 몰고 왔다.
하지만 프로농구는 지난 1년간 농구가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두 번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번 모두 좋은 분위기에서 찬물을 끼얹은 주범은 바로 KBL이었다.
KBL은 김영기 신임 총재가 부임한 지난 1년 내내 현장 및 여론의 목소리와 동떨어진 역주행 행정으로 도마에 올랐다.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외국인 선수제를 기존의 2인 동시출전제와 장단신 합산제로 회귀한다고 전격 선언할 때부터 비극을 예고했다.
김영기 총재는 "득점이 곧 만족도"라는 난해한 논리로 능력 있는 외국인 선수들이 많이 들어와 득점이 살아나야 농구 인기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영기 총재의 발상은 지난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농구가 선전한 원동력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에 가능한 결정이다. 외국인선수 2인제에서라면 서장훈, 김주성과 같은 국보급이 아닌 이상 토종 빅맨과 장신 포워드들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장단신제라고해도 각 팀들이 가드를 뽑는 게 아니라 예전 조니 맥도웰처럼 키 작고 힘 좋은 언더사이즈 빅맨을 선호할 가능성이 더 높다. 외국인선수들 두 명이 득점과 리바운드를 도맡게 되면, 국내 선수들의 창의성과 경쟁력은 하락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대표팀과 국제대회의 경쟁력으로도 이어진다.
기존 외국인 선수들과의 계약관계를 무시하고 강제 새 판짜기에 나선 것도 프로팀 팬들 입장에서는 실망스럽다. 당장 포웰처럼 한 팀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외국인 선수들은 자신과 구단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팀을 떠나야 한다.
외국인 선수들이 프랜차이즈스타가 될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린 셈이다. 올 시즌 전자랜드의 돌풍이 가능했던 것은 포웰처럼 한 팀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며 국내 선수들과 다져온 끈끈한 조직력과 팀에 대한 애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영기 총재와 KBL의 불통은 결국 챔피언결정전에서 불미스러운 사태로 이어지고 말았다. 울산과 원주를 오갔던 챔피언결정전서는 관중석에 KBL을 비판하는 플래카드가 연이어 걸렸다. 시작은 KBL이 지상파 중계를 빌미로 평일 경기시간을 일반 팬들이 관람하기 어려운 오후 5시대로 변경한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스폰서십과 방송사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행태와 달리, 정작 팬들의 목소리에는 최소한의 배려나 존중도 없는 KBL의 오만한 행태가 화를 부채질했다. 김영기 총재는 챔피언결정전 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마지막 경기인 4차전에서야 나타났다. 챔피언결정전은 플레이오프와 상반되기에 기대에 훨씬 못 미친 경기력과 맥 빠진 승부로 역대 최악의 챔피언결정전이라는 오명 속에 불명예스럽게 막을 내렸다.
KBL은 지난 1년을 통해 한국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조직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실망스러운 모습만을 보였다. 팬들에게 한국프로농구를 사랑해 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과연 그들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지 돌아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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