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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근]100미터를 못 가서 쉬어야 하는 김 할머니 사연


입력 2015.05.11 14:16 수정 2015.05.11 14:23        데스크 (desk@dailian.co.kr)

<정택근의 척추건강 이야기>

정택근 척추외과 전문의
김 할머니는 70대 초반의 어르신이다. 젊어서 남편과 사별한 탓에 홀로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며 억척스럽게 살아오다 자식들을 출가시킨 후 이제 좀 편한 노후를 보내나 했던 기대도 잠시. 할머니에게 또 한번 큰 시련이 찾아왔다.

조금 걷다 보면 허리와 엉치 그리고 양 다리가 쑤시고 저려서 100미터를 한번에 잘 걷기 힘들어진 것이다. 심할 때는 양쪽 다리가 내 것이 아닌 듯 생각될 정도였다. 나이 들어서 아프면 서럽다는 말이 있듯이, 김 할머니는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에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넘어 ‘이렇게 살다가 그냥 죽게 되는구나’ 하는 절망에 빠졌다. 할머니의 고통은 그렇게 2~3년간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에 들러 우연히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게 된 박 아주머니의 권유로 김 할머니는 필자의 병원을 찾게 되었다. 박 아주머니 역시 수년 전 허리 디스크로 오랫동안 고통 받다가 필자에게 수술을 받고 지금은 건강하게 지내는 분이다.

진단 결과, 김 할머니는 허리(요추부)의 신경이 지나는 길이 좁아져서 신경이 눌린 요추부 협착증 소견이었다. 요추부를 비롯한 척추관 협착증은 신경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인대나 뼈 같은 조직이 병적으로 비후(크고 두터워짐)되어 신경을 되려 압박함으로써 통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요통, 엉치나 다리의 통증 및 저림, 감각이상, 근력저하가 주된 증상이다.

인체의 대부분은 나이가 듦에 따라 비후 현상을 겪게 된다. 섬섬옥수 같던 아가씨의 가녀린 손가락도 수십 번 강산이 변하면 굵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노화에 따른 비후 현상이 지나치면 이 또한 병이 되는 것이다.

척추관 협착증은 신경관을 확장시켜 눌린 신경을 펴주는 것이 핵심이다. 김 할머니의 경우처럼 걷지 못할 만큼 증상은 심각한데 비해 치료는 의외로 간단하다.

기존에는 주로 전신마취 후 피부를 많이 절개하는 관혈적 감압법이나 인공뼈와 나사못을 이용해뼈를 융합하는 개방적 수술 방법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전신마취 없이 부분마취 후 미세한 내시경만을 삽입해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출처 : 이상호 저 '미니맥스 척추시술'

내시경을 이용한 협착증 치료는 시술시간이 평균 1시간 이내로 짧고 1~2 이내로 퇴원이 가능하며 일상생활로 빨리 복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전신마취나 수혈이 필요 없기 때문에 고령 환자나 심장이나 폐 같은 중요 장기에 문제가 있는 분들도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단 좁은 공간을 통해 내시경을 삽입하고 섬세한 기구들을 이용하여 감압하는 시술이므로 내시경 시술 경험이 풍부한 의사가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 김 할머니는 단 한군데만 협착증 소견을 보였고, 1시간 정도 걸리는 간단한 요추부 신경관 확장수술을 받고 퇴원했다. 수일 후 김 할머니는 지금은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져 잘 걷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퇴원할 때 눈물을 흘리며 연거푸 고맙다는 말을 하던 모습이 수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척추관 협착증은 노화로 인해 생기는 퇴행성 질환인 만큼, 전신마취를 하지 않고 시술 시간과 회복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중요한 화두일 것이다. 수술의 발전이 대한민국 백세시대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를, 또한 한 어머니의 고단했던 반평생 회한을 어루만져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 정택근 척추외과 전문의 jungtg2010@gmail.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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