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잃고 외양간 벌집 만드는 국회, 메르스 졸속법안만 20개
중첩은 물론 실효성과 시의성 없는 법안 수두룩
현행법으로 가능한 내용 또 다시 법안으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메르스 관련 법안들이 속속 발의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법안들이 대부분 보건당국이나 전문가들과 사전 협의 등을 거치지 않은 '졸속 법안'이라는 것이다.
내용이 겹치는 것은 물론 현 상황에서 신속하게 필요하지 않는 내용들을 담고 있는 법안들이 넘쳐나면서 사실상 '실적 쌓기용' 법안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법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국회의원의 법안 발의 실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특히 예산이 필요한 법안 중 대부분이 '페이고'(법안 제출 시 재원 조달 방안 의무화) 원칙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전문가 등과 상의를 거치지 않아 향후 논란이 될 소지가 있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1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메르스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지난달 20일 이후 발의된 메르스 관련 법은 감염병예방관리법, 의료법, 검역법, 영유아보육법, 군보건의료법, 학교보건법 등 20건에 이른다. 약 3일마다 2건씩 발의된 셈이다.
특히 다음 주 전체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법률안이 더 제출될 것으로 보여 이번에 심사할 '메르스법'은 20건을 훌쩍 넘을 전망이다. 국회 보건복지부는 오는 24~25일 이틀간 법률안 심사를 거쳐 '메르스법'을 처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문제는 법안 내용이 중첩되는 것들이 많고 일부 법안을 살펴보면 딱히 지금 당장 긴급을 요하거나 시급하게 필요한 내용이 아닌 단순히 문구를 정확하게 하는 차원의 법안이 많다는 것이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메르스 사태를 맞아 부랴부랴 실적 쌓기용 법안을 내놨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성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8일 대표 발의한 법안에는 '시·도의 감염병관리사업지원기구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12일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에 있는 '감염병 전문병원을 건립'과 중첩된다. 여기에 양승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8일 대표발의한 법안에도 '감염병전문병원을 설립' 내용이 포함돼 있다.
법안이 중첩되는 것 뿐 아니라 현재 메르스가 빠르게 퍼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지금 당장 급하게 필요한 법안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문제다.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11일 대표발의한 법안에는 '중동호흡기증후군을 '제4군 감염병'으로 법령으로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지만 시급한 내용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지적이다. 양승조 위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에는 '감염병환자등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도록 함'이라고 적혀 있는데 구체성이 없어 법안으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현 상황에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법률이 있는데 불필요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도 법안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의동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5일 대표발의한 법안에는 '보건복지부장관은 감염병의 확산으로 인한 재난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감염자를 진료한 의료기관·이동경로·접촉자 등을 공개하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공개는 이미 법적으로 국민이 감염병 발생 상황에 관한 정보와 대응방법을 알 권리가 있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에 불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에는 전염초기에 해당병원의 병동 폐쇄와 진료 중단을 해야된다'는 내용이 들어있는데 이것은 이미 현행법에 포함돼 있고, 부좌현 의원의 감염병관리시설 등에 대한 자료 요청 및 시설 방문점검 사항은 이미 시행규칙에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박광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4일 대표발의한 법안에는 '질병관리본부, 보건환경연구원을 감염병의 병원체를 확인할 수 있는 대상기관으로 법률로 명확히 규정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시급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특히 이런 내용은 현행법 시행규칙에 포함돼 있다.
아울러 법안이 통과되면 향후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들도 포함돼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명수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감염병확산 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질병관리본부장이 감염병환자등의 시신 장사방법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이런 법안은 대부분 '페이고' 원칙을 준수한 비용추계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이 필요한 법안 14개 중 2개 법안만이 비용추계서 미첨부 사유서를 제출한 것으로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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