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확성기 작게 튼 이유 "우리에겐 사이버전사가 있다"
철책선 대남 확성기 성능도 낮고 해봤자 효과도 없고
전문가 "전사 길러내 보안 취약한 사이버 심리전 강화"
북한이 우리 측 대북확성기에 대한 ‘맞불’로 확성기를 통한 심리전을 재개한 가운데, 이 같은 북의 조치가 실제 남한을 향한 심리전 차원에서 큰 의미가 없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특히 북한 스스로가 보유하고 있는 확성기의 기술적인 한계점과 선전 내용이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있어 확성기를 통한 대남심리전을 ‘공격형 전략’으로 활용하는 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발생한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사건과 관련해 우리 군이 지난 10일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도 이에 질세라 확성기를 틀고 대남 심리전에 나섰다.
그러나 북한의 확성기 재개 조치는 우리 측 대응에 대한 ‘맞불’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대남 심리전 효과가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우리 측 확성기에 비해 성능이 크게 뒤처져 방송 내용이 제대로 전달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 총참모부 산하 4군단 출신의 서재평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은 19일 ‘데일리안’에 “현재 북한은 전력 사정도 좋지 않고 확성기 자체도 80년대 설비”라며 “확성기를 이용한 심리전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 스스로도 알고 있다. 다만 남한에서 확성기를 재개하니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대응 차원에서 방송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 국장은 특히 “남한을 따라갈 만한 선전 내용도 안 되고, 기술면에서도 여러 가지로 발목을 잡는 게 많아 북한이 확성기로 대남 선전선동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그 보다는 인민군이나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의 대북방송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1980~9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 측의 확성기 설비가 북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월등해지면서 사실상 북한은 우리 측의 방송을 교란하고 차단하기 위한 ‘방어용 전략’으로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게 됐다는 것이다. 대신 북한은 다른 방식의 심리전을 준비, 보안이 취약하고 위험에 노출된 인터넷 등 사이버 심리전을 강화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과거 합참에서 대북심리전 전문·정책 요원으로 활동했던 심진섭 한국교통대학교 심리학 교수는 “예전에는 북한이 (확성기 방송에) 굉장히 투자를 했고 그 때문에 우리가 많이 유린을 당했었다”며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들어서면서 경제적으로 힘들어 투자를 못하게 됐고, 남한 사람들의 수준도 점차 높아져서 ‘설득력’이 떨어져 점차 확성기를 이용한 심리전에서 수세에 몰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심 교수는 “현재 북한에는 우리에 대응할만한 수준의 확성기가 없다”며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는 우리를 향한 것이 아니라 인민군이 (우리 방송을) 듣지 못하게 방해하려는 일종의 노이즈(잡음) 효과를 의도한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현재 북한이 확보하고 있는 저성능의 확성기로는 실제 우리의 대북 방송을 교란하기 위한 방어용으로 밖에 활용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 다수의 통일·국방 전문가들은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를 두고 우리 군에 대한 ‘공격용’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 인민군이나 주민들이 동요되는 것을 막으려는 ‘방어용’ 목적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도 본보에 “구체적으로 북한이 어떤 식의 심리전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인지는 아직까지 판단 근거가 적어 이야기하기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기본적으로 북한이 인터넷을 통해 교란하는 것 말고는 (심리전) 수단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견해를 밝혔다.
양 위원은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은 실제 윙윙대는 수준에 불과하고 전파가 잘 닿지도 않는다. 또 그들이 방송을 한다고 해도 이미 체제경쟁은 끝났는데 그 방송을 듣고 넘어갈 사람이 있겠는가”라며 “우리 쪽에는 전혀 영향이 없고 북한 내부적으로 남한 방송 내용이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확성기를 재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단 북한이 대남확성기를 재개한 것은 우리 측에 대한 맞불 차원”이라면서도 “우리를 겨냥한 것일 수도 있지만 자체 비무장지대에 있는 인민군을 의식한 것일 수도 있다”며 타 전문가들과 맥을 같이 했다.
이밖에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연구전략실장은 “북한의 대남 확성기 재개는 일차적으로 남측으로부터 들어오는 방송을 북한 병사들이 듣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며 “북한에서 남측까지 방송해서 내용을 전달하려면 아주 강력한 확성기가 필요하겠지만, 북한 병사들이 남한 방송을 못 듣게 하는 데는 지금의 저출력 확성기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대남 확성기를 재개한 의도가 내부 군인과 주민을 단속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성능과 효력이 낮은 확성기를 배치해 방송을 재개했다는 게 정 실장의 견해다.
다만 그는 “김정은 시대들어 그동안 경제가 워낙 좋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에서 (대남심리전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장병을 대상으로 한 대남심리전을 다시 전개하는 쪽으로 단계를 넘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것일 수도 있다”며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대비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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