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은 여론조사 경선, 도대체 문제가...?
조직적 동원 응답도 조작 현역에게 절대 유리
전문가 "응답률 적정수준 돼야 공정성 확보"
최근 한 지자체장이 본선거에 앞서 경선을 치를 당시 여론조사를 일부 조작한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경선을 준비하는 지역구 의원들의 속마음도 타들어 가고 있다.
지난달 말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경남 모 지자체 후보를 뽑기 위한 새누리당 공천 여론조사 과정에서 당시 현직이었던 A 시장의 아들이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로 걸려온 조사 전화를 수차례 대신 받아 응답한 사실이 확인됐다.
또한 조사원은 조사 도중 특정 후보의 지지를 유도하고 후보자들의 최종 득표수를 바꾸는 등 엉터리로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뿐만 아니라 조사 기관에서는 결과 발표 이후 그 세부 내용을 타 후보들에게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의혹을 키웠다.
과정이야 어떻든 A 시장은 새누리당 지자체 후보에 올랐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에 불복한 경선 상대 후보들이 이의를 제기했고 문제가 불거지며 여론조사의 총체적인 허점이 세상에 공개됐다.
A 시장은 "결과에 불복하는 사람들이 갖는 음해일 뿐"이라고 의혹을 일축했지만 여론조사의 공정성과 신뢰도는 이미 크게 추락했다.
전화를 통한 여론조사는 원래 지방선거나 총선, 대선 등 각종 대형 선거에서 각 정당별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주로 이용된다. 이는 국민공천제의 일환으로 당 지지자 가운데 선정된 배심원이 후보를 결정하는 시민배심원제와 달리 일반 유권자들이 직접 공직 후보 선출 과정에 참여하게 해 참여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장점이 있다.
또한 이른바 '체육관 선거'로 지칭되는 유명무실한 밀실정치의 관행을 없앰으로써 국민주권 실현과 민주정치의 발판을 구현할 수 있으며 비당원이 공천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당내 비민주성을 해소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해 당대표에 오른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여론조사 방식을 포함한 국민공천제를 도입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내 특정 계파의 내리찍기식 공천을 지양하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후보를 결정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서 보듯 여론조사에는 일반 유권자들이 조직적으로 동원된다거나 비합리적으로 응답을 받아내는 등 허점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화를 통한 여론조사는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지지층 위주로 전화를 돌리는 등 실제 지역주민의 여론을 반영한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시대정신연구소의 엄경영 대표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여론조사는 응답률이 어느 정도 돼야 공정성과 객관성을 인정 받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면 여론조사 대표성이 훼손된다"며 "이 경우 여론 조작이 가능하다"고 우려했다.
엄 대표는 이어 "조직을 많이 갖고 있는 인사에게 유리한 지형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불공정한 조직 동원을 막기 위해 생긴 제도가 오히려 조직 동원을 부추기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직 사회에 선진적인 정치 풍토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조직 동원으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며 "불행하게도 이에 대한 특별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여론조사 불신 여론에 여론조사 준비하던 지역구 의원 '벌벌'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자 내년 총선을 준비 중인 지역구 의원실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공천제를 대비해 여론조사를 대비하는 총선 전략을 세우고 있는데 여론조사 방식이 무산될까봐 조마조마한 것이다.
영남권 의원의 한 보좌진은 "최근 언론에서 연일 여론조사에 관한 비판 보도를 내고 있는 것이 내심 굉장히 부담스럽다"라고 실토했다.
그는 "대부분의 지역구에서는 국민이 참여해 후보를 선출할 때 비용이 많이 드는 체육관 선거 대신 적은 비용으로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여론조사를 사용해왔다"며 "최근 여론으로 인해 제도가 바뀔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중소도시급 선거구에서는 여론조사 경선을 할 때 암묵적으로 특정 후보에게, 특히 조직 동원이 쉬운 현역 의원에게 유리하게 진행하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정가는 설명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론조사를 하지 않게 되면 현역 의원 입장에서는 승리를 위해 지금보다 두세 배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노심초사 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진급 의원의 한 측근 역시 해당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사실 여론조사 경선을 하지 않게 되면 현역 의원 입장에서는 우려하는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조직 동원이나 인지도 면에서 타 후보에 비해 월등히 앞선다고 볼 수 있는 현역 의원 측의 입장에서는 여론조사만큼이나 자신들에게 유리한 경선 방법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양산시장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경선을 앞둔 후보들은 지지층이 모여 있는 특정 장소에 수차례 전화를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며 "조작에 가까운 행위를 의도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여론조사가 공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 이기는 후보는 뒷 맛이 개운치 못하게 되고 지는 후보는 결과에 불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이 때문에 지역구 의원의 입장은 상당히 우려스러울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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