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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 넘은 치매노모, 북 아들 보고 "이이는 누구야?"


입력 2015.10.25 20:03 수정 2015.10.25 20:59        금강산 공동취재단 데일리안 목용재 기자 /서울 = 하윤아 기자

<이산가족 상봉 현장>치매 증세로 못 알아봐…개별상봉 땐 "왜 여태 날 안 찾았어"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둘째날인 25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공동중식에서 남북 가족들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 고향의 봄 등 노래를 부르며 상봉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박정서 할아버지의 동생 박경림 씨가 춤을 추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5일 강원 고성 금강산에서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2차 개별상봉 행사를 앞두고 숙소인 외금감 호텔에서 구상연 할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북측 가족에게 줄 선물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이는 누구야?”
“어머니, 내가 맞아들”


제20차 남북이산가족 2차 상봉 이틀째인 25일 남측 상봉자 김월순 씨(93)는 북한에 두고 온 아들 주재은 씨(72)가 선물한 연갈색 꽃무늬 스카프를 목에 둘러메고 오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갈색 스카프는 앞서 개별상봉 때 아들 주 씨가 직접 선물한 것이다.

어머니와 점심을 함께 하기 위해 주 씨가 곁으로 다가와 앉자, 김 씨는 대뜸 “이이는 누구야?”라며 함께 온 남측 둘째아들 주재희 씨(71)에게 눈을 돌렸다. 어머니의 물음에 둘째아들은 “어머니 아들이라니까”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어머니 김 씨는 현재 치매를 앓고 있다. 65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 겨우 큰아들 주재은 씨를 만났지만, 알아보지 못했다. 큰아들 주 씨는 이런 어머니에게 연신 “어머니, 내가 맞아들”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김 씨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큰아들 주재은 씨를 친정에 맡겨둔 채 둘째아들 주재희 씨를 등에 업고 피난길에 올랐다. 잠시만 맡겨두고 다시 데리러 갈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6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곧 또 다시 이별을 맞이해야 한다.

상봉 첫째 날 큰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던 김 씨는 둘째 날 오전 개별상봉 때 극적으로 아들을 기억해냈다. 외금강호텔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개별상봉 당시 아주 잠깐이지만 큰아들 주 씨를 알아보고는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어머니와 동행한 남측 아들 주재희 씨는 “개별상봉 때 어머니가 정신이 잠깐 돌아왔었는데 (형님을) 잡으시며 우시더라. ‘왜 여태 나를 안 찾아왔느냐’ 그러면서 우시더라. 그리고선 또 바로 누구냐고 하시는데 진짜 가슴 그렇더라(아프더라)”라며 개별상봉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그는 또 “형님에게 (어머니의 상황을) 설명 드렸고, 형님은 개별상봉하고 가실 때 ‘난 이해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라고 한번 불러보고 싶었다’고 이야기하셨다”며 “(어머니가) 스카프랑 탁자보를 선물로 받으셨는데 ‘내 일생에 가지고 가야겠구나’라고 말하셨다”고 덧붙였다.

이날 남북 이산가족들은 오찬을 함께 하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 ‘고향의 봄’ 등 노래를 불렀다. 흥겨움에 덩실덩실 춤을 추는 가족들도 있었지만, 이날이 지나면 또 다시 이별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얼굴을 두 손에 파묻고 눈물을 훔치는 가족들도 있었다.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둘째날인 25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공동중식중 우리의 소원은 통일, 고향의 봄 등 노래를 부르며 상봉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김현숙 할머니의 손녀 김미영 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둘째날인 25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이금석 씨의 아들 한송일 씨가 엄마의 손을 꼭잡고 얘기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편, 공동중식 이후 오후 4시 30분부터 이어진 단체상봉에서 가족들은 곧 다가올 이별을 아쉬워하면서도 못 다한 혈육의 정을 나눴다.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북측이 미리 준비한 ‘금강산관광기념’이라고 적힌 쇼핑백 속의 음료수와 과자 등을 꺼내 나눠먹으면서 정답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특히 남측 어머니 이금석 씨(93)는 북측 아들 한송일 씨(74)는 캐러멜 과자를 서로의 입에 넣어주면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아들 한 씨는 상봉 내내 어머니 이 씨의 손을 꼭 잡고 쓰다듬으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내비쳤다.

이어 어머니 이 씨는 자신의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를 벗어 아들 한 씨에 팔에 채워주려했다. 그러나 아들 한 씨는 “괜찮다”고 웃어 보이면서 어머니의 손목에 다시 팔찌를 채웠다.

이 씨와 한 씨 모자는 앞서 오찬 당시에도 줄곧 눈물을 흘리며 서로에 대한 애잔한 감정을 드러낸 바 있다. 65년 전 북에 두고 온 아들을 만난 어머니 이 씨는 식사하는 내내 아들 한 씨에게 밥을 먹여줬고, 아들은 감격에 겨운 듯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아들 역시 어머니가 먹기 편하도록 고기를 잘게 잘라주거나 새우를 먹기 좋게 까드리는 자상한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는 효심 깊은 아들의 모습을 보며 억지로 울음을 삼키다 결국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이에 북측 며느리 리미렬 씨(70)는 “어머니 울지 마시라요”라면서 시어머니를 위로했다.

또한 남측 상봉자 진영 씨(84, 여)는 가까이 다가온 이별의 순간을 아쉬워하면서도 65년 전 헤어진 언니(진보배 씨)의 자식인 조카 한순복 씨(70, 여)와 한순호 씨(68, 남)에게 “꼭 다시 만나자”라고 또 다른 만남을 기약했다.

강원도 통천군 학일면 항평리가 고향인 진영 씨는 1·4 후퇴 당시 오빠, 남동생과 함께 다급하게 피난을 내려왔다. 그러나 시집 간 언니 진보배 씨는 미처 피난을 내려오지 못해 홀로 북에 남게 되면서 65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산의 아픔을 경험해야 했다.

진영 씨는 이날 단체상봉에서 조카 한순복 씨의 손목에 시계를 채워줬다. 그러면서 그는 “더 좋은 것을 많이 해주려고 했는데”라며 조카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진 씨는 함께 온 남동생 진성 씨(83)에게도 차고 온 시계를 풀러 조카에게 채워주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진 씨는 단체상봉 도중 조카 한순복 씨의 눈물을 닦아주거나 옷고름을 매만져 주면서 “언니는 못 만났지만 너희들이라도 만나니 반갑다. 순복이하고 순호가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또 (이산가족을) 신청해서 또 올 거야. 건강하게만 있어라”라고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이밖에 남측 상봉자 김현욱 씨(61, 남)는 단체상봉이 종료되기 전 북측 누나 김영심 씨(71)에게 손수건을 교환할 것을 제의했다. 김현욱 씨는 곧바로 자신의 양복 주머니에서 갈색 체크무늬 손수건을 꺼내 누나가 들고 있던 분홍색 줄무늬 손수건과 맞바꿨다.

남동생은 “누님 냄새라도 맡게 (바꿉시다)”라며 실제 손수건을 코에 갖다 대고 “누님 냄새 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일부 취재진이 다가가자 그는 “갑자기 주고 싶었다. 마지막이니까. 내일은 또 못 볼 수도 있지 않냐”며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랬다.

특히 김현욱 씨는 누나 김영심 씨에게 자신이 타고 갈 버스 내부를 작은 메모장에 그려주기도 했다. 버스 운전석과 조수석, 뒷좌석 등을 네모모양으로 그린 뒤 자신이 앉을 왼쪽 6번째 칸을 까맣게 채웠다. 김현욱 씨는 “내일 사람이 많으면 못 찾을 수 있으니까 우선 그려줬다”며 작별상봉에 앞서 만반의 준비를 하는 모습이었다.

한편, 남북의 이산가족은 이날 오후 단체상봉을 끝으로 2차 상봉 둘째 날을 마무리했다. 2차 상봉 마지막 날인 26일에는 ‘작별상봉’을 끝으로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모두 마무리될 예정이다.

목용재 기자 (morkk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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