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앞둔 문근영 "두려울 것도 없다"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서 한소윤 역 맡아
"시청률 신경 안 써…다작하는 배우 되고파"
앳된 외모 탓일까. 문근영(28)에게 '국민 여동생'은 여전히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식어다.
2000년 KBS2 '가을동화' 속 순수한 소녀 캐릭터로 대중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 문근영은 이후 '장화, 홍련'(2003), '어린 신부'(2004), '댄서의 순정'(2005) '바람의 화원'(2008), '신데렐라 언니'(2010)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탄탄대로일 것 같았던 그는 '청담동 앨리스'(2012), '불의 여신 정이'(2013)가 연이어 실패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국민 여동생'이라는 이미지가 그의 발목을 잡은 탓이다. 대중은 문근영을 마냥 귀여운 여동생으로 봤고, 문근영은 이를 깨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약 2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그가 올해 영화 '사도'와 최근 종영한 SBS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하 '마을')을 통해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사도'에서 600만 흥행 기록을 얻은 그는 '마을'을 통해 웰메이드 작품을 필모그래피에 채웠다. 지난 8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문근영은 이전보다 훨씬 밝아진 모습이었다. '국민 여동생'의 껍데기를 조금은 깬 듯했다.
문근영은 인터뷰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했다. 얘기를 술술 풀어내기도 어렵고 의도와 다른 기사가 나올까 봐 조심스러웠다고.
인터뷰를 피하려고 애를 쓴 그가 취재진과 만난 이유는 '마을' 때문이다.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결과물은 만족해요. 작품을 마무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이 자리에 나왔어요. 제가 막상 하면 또 잘 하거든요!"
'마을'은 아치아라라는 마을에서 암매장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공중파에선 유례없는 멜로가 없는 장르물이라는 점에서 호평을 얻었다.
성폭행이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그 상처가 어디까지 미치는지 보여줘 씁쓸함을 남겼다. 가해자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법적 처벌을 피하고 남은 피해자들만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돈과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죄에서 빠져나가는 모습은 잔인한 현실을 반영했다.
문근영은 극 중 언니 혜진(장희진)의 죽음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소윤 역을 맡았다. '마을'의 인물들은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다. 모든 등장인물이 주인공이었던 터라 문근영은 돋보이지 않았다. 팬들은 '우리 문근영이 주인공이 아닌 것 같아 서운하다'며 볼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문근영은 "사건 중심인 드라마라서 내가 돋보이면 안 된다. 내 역할만 잘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여주인공으로 튀어야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욕심이다"고 당차게 말했다.
그간 드라마의 한가운데서 극을 이끌었던 모습에서 벗어난 문근영은 '마을'을 통해 시야가 넓어졌다고 했다. 여주인공이 보는 한정된 시야를 넘어 드라마 전체를 봤다는 것.
"다른 배우들 연기와 작품 전체가 보였어요. 소윤이로 살면서 '마을' 사람들을 다 만났거든요. 하하.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캐릭터들을 만나다 보니 다양한 호흡을 경험할 수 있었죠. 개성 넘치는 배우들을 통해 많은 걸 얻었습니다."
장르물인 탓에 '마을'의 시청률은 저조했다. 여배우로서 아쉬울 법도 한데 자신감 넘치는 이 여배우는 "저 원래 시청률 신경 쓰지 않아요"라고 웃었다. 문근영이 원래 생각했던 시청률은 2%였다고. 미소가 이어졌다.
"전 시청률이 잘 나왔다고 생각하는데요?(웃음). 시청률은 운이에요. 시대적 분위기 트렌드에 따라서 시청률이 갈리는 듯해요. 저만 떳떳하다면 시청률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시청률이 아무리 잘 나와도 작품이 엉망이면 다시 보고 싶지 않아요. 저는 시청률보다 작품성에 중점을 둬요.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을 찍는 게 제 원칙이랍니다."
이번 '마을'도 문근영의 연기 소신이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사회적인 메시지도 있고 공중파에선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장르. 문근영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제 필모에 이런 작품이 있으면 뿌듯할 것 같았어요. 소윤이는 극의 긴장감을 놓지 않으면서 조용히 이끌어가는 역할이에요. 큰 역할을 보여주기보다 사건을 과장 없이 전달해주는 게 목표였죠. 사실 쉬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마을'은 친절하지 않은 드라마였다. 문근영조차 머리가 아팠다고 호소했을 정도. 문근영은 "사건을 시간순으로 요약 정리하면서 시청자들이 극을 따라가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며 "장르물 애청자들이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고 미소 지었다.
아역 때부터 줄곧 일한 그는 '사도', '마을' 출연 이전에 성장통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배우로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난 부족해', '나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라는 고민과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런 문근영을 잡은 사람은 '사도'의 이준익 감독이다. '사도' 이전에 모든 걸 두려워하며 쉽게 선택하지 못했던 그는 '사도' 혜경궁홍씨 역만은 고집을 피웠다. 주변 사람들이 반대해도 '에라 모르겠다'라는 생각으로 밀어붙였다.
이 감독은 '누가 뭐래도 넌 문근영이야. 의심하지 마.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면 돼'라는 말을 던졌다. 이후 자신감이 생겼고 구원의 빛이 보였다.
"연기를 처음 할 때 가진 '순수한 마음'을 다 잡게 됐어요.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보단 단지 '연기가 재밌다'는 마음을 느꼈죠. 연기는 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모두의 힘을 합쳐야 이뤄진다는 것도 다시 깨달았고요."
내년이면 서른이 되는 문근영은 동안 외모를 자랑한다. '국민 여동생'이라는 수식어도 맑은 얼굴 덕분에 생겨났다. 소녀와 여자 사이 그 어딘가쯤 있는 듯한 문근영에게 '국민 여동생'은 굴레였단다.
그는 "이젠 여동생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다"라며 "누가 봐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웃었다. "'국민 여동생'이라고 한창 불릴 당시 좀 답답했어요. 전 배우이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자꾸 한정된 틀 안에만 가둬두는 것 같았죠. 사실 지금도 '국민 여동생'으로 보는 분들이 있는데 고정된 이미지는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벗겨지지 않을까요?"
문근영은 대표작으로 '신데렐라 언니'를 꼽았다. 스물 네 살 때 찍은 이 작품에 자신의 20대가 녹아 있다는 이유에서다. 방황하고 불안정한 모습, 열정을 쏟은 20대 청춘이 담겨 있다고 문근영은 얘기했다.
'마을'은 문근영이 서른을 시작하는 작품이란다. 서른에 대한 기대나 환상 같은 건 없다. "서른이 된다고 반드시 성숙해져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한 살 더 먹는 것뿐이에요. 다만 노화가 시작되겠죠. 하하."
문근영은 "이제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다. 이제부터 쉬지 않고 일 할 계획이다. 다작이 목표다"고 동그란 눈을 반짝였다.
그는 내년 서른을 맞아 가족과 떨어져 독립한다. 스무 살 때부터 꿈꿔온 일이란다.
신나 보이는 그에게 연애는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반듯한 모범생 답변을 들려줬다. "결혼할 남자도 없고요. 일에만 열중하다 보니 연애는 관심없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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