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살피는 예산 삭감하고 청년에 돈주기만 '꼼수'
<기고>서울시, 누리과정 예산삭감에 청년 수당 고집
일자리 늘리기 대책은 안하고 생색내기 퍼주기만 혈안
논란이 일었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청년수당 정책이 22일 서울시의회에서 예산이 원안대로 통과돼 결국 내년부터 시행을 앞두게 됐다. 서울시 청년수당은 정기소득이 없는 만 19~29세의 미취업 청년 3000명에게 사회활동계획을 받아 공모와 심사를 거쳐 2~6개월간 월 5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제도다.
주지하다시피 청년실업이 굉장히 심각하다. 하반기 들어 반짝 좋았던 청년실업률은 다시 나빠지고 있다. 일과 소득을 통해 자신과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갈 청년세대에게 일할 기회조차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은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이다.
'2014 임금근로일자리 행정통계'에 따르면 신규 일자리에 대한 세대점유율에서 20대가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근로의욕을 잃고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배제된 청년 '니트족'도 가파르게 증가하여 50만 명에 달한다. 한국의 니트족 비중은 OECD 회원국 중 7번째로 높다.
대졸이상 청년층 니트족 비중이 우리보다 높은 국가는 터키뿐이다. 대학진학률이 80% 육박하는 점을 감안하면 대학을 졸업하고도 니트족으로 방황하는 청년들의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이러한 청년실업 문제의 돌파구를 찾아보자는 데 있다. ‘문제’는 분명하다.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 일할 의욕을 잃고 빈곤을 겪는 청년인구 증가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년에게 돈으로 지급하면 된다는 ‘정책대안’이 과연 문제를 정확히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생각해보자. 청년수당은 니트족과 같은 '사회 밖 청년'이 스스로 공모기간에 사회활동계획서를 제출하는 것이 지원요건이다. 그런데, 청년수당을 자발적으로 신청하고, 사회활동계획서까지 소상히 적을 정도라면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과 ‘일할 의지’가 다분히 있고, 서울시가 어떤 청년정책을 펴고 있는지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의욕적인 청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니트족은 직업도 갖지 못하고 일할 의욕마저 떨어진 노동시장 밖의 사람들이다. 과연 ‘청년수당’ 제도의 혜택을 누릴 사람들이 제도밖 청년들이 될 수 있을까.
또 심사 절차가 공정할지도 의심스럽다. 서울시가 사회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심사를 거쳐 3000명을 선발하겠다면서 “사회참여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청년들에게 활동보조 비용을 지원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과연 사회활동과 참여의 기준은 무엇인가. 청년단체와 같은 청년NGO에 가입해 활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또 사회활동이 청년들의 일자리 애로를 푸는 것과 어떤 연결 관계를 갖는지도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사회활동계획서를 심사해서 뽑는다는 것은 마치 공모전에서 심사해 서울시가 ‘수당’이라는 상금을 주겠다는 행위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더불어 일할 의욕을 상실하고 절망감에 쌓인 청년들에게 설 자리를 주겠다고 했지만, 누군가는 또다시 경쟁에서의 실패자가 되어 패배의 쓰라린 고통을 더해주는 꼴이 될 수 있다.
청년층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정부와 지자체의 많은 청년정책들이 주로 일할 의지가 있는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다. 내가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취업을 좀 더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정보와 정책이 무엇인지를 자발적으로 파악해서 고용센터를 찾아가거나 전화를 하거나, 홈페이지에서 신청을 할 수 있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니트족들은 정책대상에서 여전히 제외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가 사회밖 청년들에게 주목했다는 점은 나름의 의미성은 찾을 수 있겠다. 하지만 청년들의 사회활동, 시민사회적 활동을 지원하는 것과 청년들의 일자리 환경을 만들고 이들의 노동시장으로의 이행을 촉진하는 일자리 정책과는 간극이 너무나 크다.
그래서 이번 청년수당 정책은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박원순 시장이 일부 청년들의 시민단체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의심을 커지고 있다. 서울시의 가이드라인인 ‘사회활동 참여’가 일부 청년활동가들에게 활동수당 지원금으로 흘러 갈 수 있다는 의구심이다. 어쨌거나 명백히 청년수당은 문제와 정책대안의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서울시 청년수당 등을 '서울형 청년보장'이라 명명하듯, 이는 유럽의 청년보장(Youth Gurantee) 정책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유럽의 청년보장은 청년들에 대한 ‘조기개입’이 핵심이다.
핀란드나 노르웨이의 경우 청년구직자에 대한 지원을 '풀서비스'로 진행한다. 우리나라는 취업지원에 한정된 ‘일자리 센터’가 중심이지만, 이들 나라에서는 청년이 일을 갖지 못하는 여러 원인을 고려해 청년구직자들이 가족, 건강, 직업훈련 및 고용지원 서비스 등 일체를 조언 받고 지원받을 수 있는 서비스센터를 운영한다. 노르웨이에서는 인구 6000명의 소도시에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과 동시에, 이들의 노동시장 이행을 돕기 위한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니트족의 노동시장 이행을 촉진하기 위한 사다리를 만드는 실험적 정책이라면 대환영이다.
그리고 소수의 경쟁을 통한 상금지급식 수당지급보다, 그 예산으로 노르웨이 소도시처럼 청년으로서 겪고 있는 모든 애로와 일자리 문제를 원스톱으로 상담하고 방법을 제안하는 ‘청년다산콜센터’를 운영하는 데 쓰는 게 보다 낫다.
다른 연령층에 비해 유독 예산이 적은 청년관련 예산의 확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또한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 위주의 나눠주기식으로 쓰여서는 안 되며, 청년들의 자립과 일과 생활의 영위를 위한 삶에 정부와 지자체가 어떤 역할과 정책을 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방향을 정하고 그에 따라 청년관련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옳다. 돈도 주고, 일도 주고, 집도 주고, 차도 주고 뭐든지 주면 좋다는 게 복지인가. 오히려 개인의 자아와 자존심을 훼손하고, 사회를 병들게 만들 뿐이다.
청년들에겐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다. 청년은 가장 진취적이고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세대이며, 청년들이 일함으로써 발생하는 효과와 잠재적 힘은 어마어마하다. 세계도 청년자원을 위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청년들이 원하고, 공정한 일자리 환경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결부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의 노동시장 질서에서 청년들은 계속 불공정한 출발선에서 다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래의 노동시장 질서’를 만드는 게 시급하다. 이를 해결해가려면 결국 노동시장의 틀을 바꾸는 제도개혁이 동반되어야 한다. 노동개혁 입법이 절실한 이유다.
이번 청년수당 지급 결정은 정파싸움과도 괘를 같이 한다. 서울시는 이번 예산통과 과정에서 2~5세 영유아 보육비를 지원하는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이를 두고 빚어진 보건복지부와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청년수당은 원안 그대로 내년도 예산에 전액 반영했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청년수당이 사회보장법상 정부와 협의해야 하는 사회복지제도에 해당하는데도 협의 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으나 이는 무시된 셈이다. 반면 누리과정에 대해서는 대통령 공약사항이었으니 지자체가 부담할 이유가 없다며 전액을 삭감했다.
예산은 기본적으로 정책기조를 중심으로 편성된다. 영유아 보육이건 청년수당이건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취약한 복지를 지원하겠다는 문제인식이라면 일관된 정책과 예산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파 싸움에 복지의 원칙과 방향마저 잃고 이중행보를 보이는 박원순식 청년복지가 진정성 있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글/신보라 청년이여는미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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