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석 총괄 프로듀서가 이끄는 YG엔터테인먼트는 여느 아이돌 기획사와는 뭔가 다르다는 이미지가 있다. 아이돌 멤버를 선정할 때 보통 노래 외적인 요소도 중요하게 보는데 YG는 가수로서의 실력을 가장 중시한다는 이미지다. YG의 빅뱅이나 투애니원이 차원이 다른 라이브 무대를 선보이면서 ‘YG=실력’ 신화가 공고해졌다.
블랙핑크가 데뷔했을 때 ‘YG가 드디어 외모도 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렇다고 실력에서 타협한 것은 아니었다. 블랙핑크의 실력은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누비는 대형 순회공연을 통해 충분히 확인됐다.
그래서 YG 아티스트는 실력이 출중하다는 믿음이 자리 잡은 것이고, 심지어 YG에서 탈락한 연습생이라도 다른 기획사에서 데뷔할 정도의 수준이라는 소문까지 있다. 누리꾼들이 이런 말을 할 정도로 YG 실력에 대한 믿음이 크기 때문에, 그 YG가 블랙핑크 이후 7년 만에 신인 걸그룹을 선보인다고 하자 아주 큰 관심과 기대가 모였다.
그렇게 데뷔한 걸그룹이 베이비몬스터인데 어느덧 데뷔 1주년을 맞이했다. 전체 활동기간은 1년이 조금 넘지만 데뷔 이전 선공개곡 당시엔 팀의 주축인 아현이 빠진 상태였기 때문에, 아현이 합류해 공식 데뷔곡 '쉬시(SHEESH)'를 발표한 이후부터 정상적인 활동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쉬시(SHEESH)'가 2024년 4월 1일에 발표됐으니 이번 달로 1주년을 맞은 것이다.
베이비몬스터가 처음 데뷔했을 땐 반응이 그렇게 좋진 않았었다. 2023년 연말에 발표된 선공개곡 ‘배터 업(BATTER UP)’이나 공식 데뷔곡 '쉬시(SHEESH)'가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주 저조한 성적까지는 아니었고 어느 정도 히트는 했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는 이야기다.
YG가 7년 만에 선보이는 걸그룹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 컸다. 더군다나 앞선 선배가 세계 최고 걸그룹 블랙핑크여서 대중은 엄청난 신인을 기대했다. 과도하게 부풀려진 기대였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국내에서와 달리 해외에서 베이비몬스터 데뷔 직후부터 뜨거운 반응이 나타났다. 이제 막 등장한 신인에 불과한데 유튜브 조회수가 케이팝 톱스타급으로 나왔다. 그 수치가 매우 충격적인데, 일단 2023년 연말에 발표된 ‘배터 업(BATTER UP)’이 그해 케이팝 걸그룹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수 연간 2위에 올랐다. 2024년엔 케이팝 걸그룹 조회수 연간 톱텐에 베이비몬스터 노래가 5곡이 올랐다. 그리고 ‘쉬시(SHEESH)'는 2024년 연간 1위였다.
조회수만으만 보면 거의 케이팝계를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이런 폭발적인 호응에 힘입어 베이비몬스터는 데뷔 후 팬미팅을 국제 순회로 진행했다. 이제 갓 데뷔한 팀이 팬미팅을 마치 세계 순회공연처럼 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정식 단독공연을 국제 순회공연으로 치르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을 다녀왔고 현재 일본을 순회중이다. 관객들이 몰리면서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공연이 추가돼 올 여름까지 순회공연이 이어질 전망이다. 데뷔 1년 만에 이 정도라면 앞으로 정말 케이팝의 대표적인 스타가 될지도 모르겠다.
국내에서의 존재감도 점점 커지고 있다. 베이비몬스터의 실력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서 위상이 빠르게 우상향하는 것이다. 어떤 아이돌은 처음에 인기를 끌다가 큰 공연무대를 소화하면서 실력이 기대에 못 미쳤을 때 위상이 하락하기도 한다. 반면에 베이비몬스터는 라이브를 하면 할수록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의 인기도 폭발한다.
현재 진행되는 국제 순회공연의 서울 공연을 KSPO돔에서 했을 정도다. KSPO돔은 'K팝의 성지‘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아이돌들이 동경하는 공연장이다. 보통 데뷔 몇 년차 스타급이 돼야 거기에서 단독공연을 하는데 베이비몬스터는 올 1월에, 즉 공식 데뷔 후 1년도 안 된 시점에 KSPO돔 공연을 치렀다.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이런 엄청난 성공의 배경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들의 실력이 있다. YG 신인이며 블랙핑크 후배라는 점에서 과중한 기대를 받았지만 결국 실력으로 왕관의 무게를 버텨낸 것이다. 베이비몬스터의 실력이 확인되면서 ‘역시 YG가 YG했다’는 말과 함께 소속사 후광효과까지 작용해 더 존재감이 커졌다.
베이비몬스터 멤버들의 실력은 데뷔 전 공개된 소개 영상과 마지막 평가 영상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마지막 평가 영상은 최대 1800만 조회수를 돌파한 회차가 있을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주로 해외에서의 반응이었는데, 그때 형성된 팬들이 마지막 평가 출연자의 탈락을 원하지 않았다. 그 결과 모든 출연자들이 합류해 베이비몬스터가 7인조가 되었다.
태국인인 파리타와 치키타는 감성 보컬로 큰 사랑을 받는다. 일본인인 루카와 아사는 강력한 랩 퍼포먼스를 펼친다. 이들의 한국어 발음이 너무 자연스러워, YG의 언어 교육도 화제가 됐다,
한국인인 아현과 라미는 놀라운 탈아이돌급 가창력으로 공연 무대에서 중심을 잡는다. 역시 한국인인 로라도 안정된 보컬과 독특한 음색으로 보컬라인의 일익을 담당한다. 이렇게 이른바 ‘구멍’이 단 한 자리도 없이 전 멤버가 안정된 실력을 자랑하면서 베이비몬스터 무대는 믿고 보는 공연이 됐다.
베이비몬스터의 초고속 성장은 역시 가수의 근본은 실력이라는 걸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YG가 투애니원, 블랙핑크에 이어 또 한번 케이팝 국제스타 걸그룹의 신화를 써내려갈 태세다. 아무래도 YG가 정말 또 YG한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유감스러운 점은 ‘배터 업(BATTER UP)’과 ‘스턱 인 더 미들(Stuck In The Middle)’의 리믹스 버전 영상이 없다는 점이다. 곡을 잘 만들었으니 퍼포먼스 영상 정도만이라도 공개하면 더 큰 호응이 있을 것이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