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유해 일부 담긴 항아리 망월동 묘역에 안장 예정
5·18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푸른 눈의 목격자, 독일 언론인 힌츠페터 씨가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5·18 기념재단은 위르겐 힌츠페터(79) 씨가 지난 1월 25일(현지시각) 독일 북부의 라체부르크에서 오랜 질병 끝에 숨을 거뒀다고 2일 알렸다.
‘죽으면 광주에 묻어달라’던 그의 뜻에 따라 망월동 묘역에 고인의 손톱과 머리카락이 담긴 항아리를 상징적으로 안장하는 방안을 5·18 재단과 5월 단체, 광주시 등이 논의할 예정이다.
힌츠페터 씨는 5·18 당시 독일 제1공영방송 ARD-NDR의 일본 특파원으로 광주의 상황을 현장에서 취재해 가장 먼저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그가 목숨을 걸고 기록한 광주 현장의 영상자료는 군부독재의 폭압의 결정적 증거로서 전 세계에 참상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일본 특파원으로 박정희 정권 치하의 사건을 기록하던 힌츠페터는 1980년 5월 19일 광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한국으로 날아왔다. 이후 꾸준히 세계에 전두환 정권의 폭압상을 알렸으며, 1986년 서울 광화문 시위 현장에서는 경찰에 맞아 중상을 입기도 했다.
기자직에서 은퇴한 그는 2003년 제2회 송건호 언론상 수상자로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현장을 지켰던 치열한 기자 정신이 국민의 양심을 깨워 이 땅의 민주화를 앞당겼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듬해 심장 질환으로 갑자기 쓰러지자 가족들에게 광주에 묻히게 해달라는 말을 유언처럼 반복했다고 한다.
건강을 회복하고 2005년 광주를 다시 찾은 힌츠페터는 자신을 가족묘에 함께 묻고 싶어하는 가족들의 요구에 따라 손톱과 머리카락을 담은 편지봉투를 5·18 기념재단에 남기고 독일로 돌아갔다. 떠나기 전 “광주시민과 한국민들은 1980년 5월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기봉 5·18 기념재단 사무처장은 “독일 교민으로 조문단을 꾸려 고인의 가족을 위로할 것”이라며 “광주에서 진행할 추모행사는 시와 협의해서 계획을 세우겠다”고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