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조정래 감독 "14년 만의 개봉, 펑펑 울었죠"
투자자 찾지 못해 표류하다 크라운드 펀딩으로 제작
"박스오피스 1위 기적 같은 일…국민 관심 감사"
"모든 게 기적입니다."
영화 '귀향'을 연출한 조정래 감독(42)은 인터뷰 내내 '기적', '감사'라는 말을 자주 썼다. 개봉까지 14년이란 긴 세월을 견딘, 말로는 표현 못 할 심정이 꾹꾹 담겨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을 조명한 '귀향'은 지난 24일 개봉 날 관객 16만명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실시간 예매율도 1위다.
'귀향'은 애초 목표로 한 스크린 수 300개를 훌쩍 뛰어넘는 500개 상영관을 확보했다. 이 정도 흥행 기세라면 손익분기점(60만명)을 넘기는 건 시간문제다.
개봉 다음 날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조 감독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며 "관객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전국 71곳을 돌아다니면서 시사회를 벌인 조 감독은 개봉 당일 결국 피로 누적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조 감독은 "몸이 아파도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며 "관객분들이 홍보 활동을 하는 듯해서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극장에 관객들이 꽉 찼다는 얘기를 듣고 혼자 꺼이꺼이 울었어요. 믿을 수 없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답니다. 할머니들께 너무 죄송했고 돌아가신 할머니들도 생각났어요."
앞서 서울 대광고 최태성 교사는 서울 강남역 메가박스 4·5·6·7관을 사비로 빌려 사람들에게 무료 관람 기회를 제공한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조 감독은 "일면식도 없는 분인데 감사하다"며 "따로 연락해서 인사하고 싶다"고 했다.
조 감독은 2002년 나눔의집(생존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후원 시설)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처음 만났다. 이후 열여섯 살에 위안부로 끌려간 강일출 할머니가 미술심리치료를 받던 도중 그린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접하고 충격을 받아 시나리오를 썼다. 세상에 알려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앞섰다.
제작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절대 안 된다', '미친 거 아니냐' 등 부정적인 말만 들렸다. 남자 감독이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을 다룰 자격이 없다는 절망적인 얘기도 들었다. "가슴 아팠어요. 저한테 '귀향'은 속죄의 과정이었고 지금도 그래요. 평생 벗어나지 못할 듯해요."
시나리오는 10년 동안 투자자를 차지 못해 표류했다. 누군가는 "돈이 모인다고 해도 안 된다"라며 "300% 확신한다"고도 했다.
"돈이 있으면 찍고 없으면 없는 대로 했어요. 1회차 찍고 모금하러 다니고, 5일 지나서 임성철 PD가 돈 빌리러 다니고... 모든 스태프가 그랬어요.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죠.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인데 절 믿고 따라준 스태프에게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한 영화에 매달린 조 감독은 2014년 중국에서 40억원을 투자한다는 얘기를 듣고 베이징에 갔다. 중국 측이 제안한 조건은 중국인 소녀를 주연으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조 감독은 주인공은 한국 소녀여야만 한다며 거절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만큼 좌절했던 순간이었다.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투자가 안 돼서 주변 사람들도 다 떠났고요. 당시 극단적인 생각도 했는데 아내와 PD가 절 살렸어요. 포기하려고 해도 포기할 수 없었던 영화가 '귀향'이에요."
한복 디자이너인 조 감독의 아내도 영화에 참여했다. 조 감독과 함께 14년이란 모진 세월을 견딘 그녀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영양실조까지 걸렸다. 임 PD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조 감독은 "내가 여러 명을 죽일 뻔했다"며 "'미친놈' 소리를 들었고, '조정래를 죽여야 영화 제작을 멈출 수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젠 영화가 개봉했으니 날 죽여도 소용없다"고 미소 지었다.
영화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후원을 받는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면서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총 7만5270명이 후원해 순 제작비 중 50%가 넘는 약 12억원을 모았다. 배우들도 재능 기부 방식으로 참여했다.
대사 대부분이 일본어로 진행된 만큼 재일교포 배우들이 다수 출연했다. 이들은 본업이 배우가 아닌 일반인이다. 조 감독은 "목숨을 내놓고 출연한 셈이다"라며 "배우들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귀향'은 신내림을 받은 소녀 은경(최리)을 매개체로 피해자들을 어루만져준다. 비슷한 상처를 지닌 여성을 통해 치유의 메시지를 전한다. 피해자들의 넋을 영화에서나마 고향으로 모시고 싶은 설정이라고 조 감독은 말했다.
언론 시사회 당시 일본 NHK기자는 "극 중 일본인이 대규모 학살한 게 얼마나 사실에 입각한 것"이냐고 물었다. 조 감독은 "자료는 정말 많다"며 "증거가 없다고 하니까 기가 막힐 뿐이다"고 착잡한 심경을 전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집을 수차례 읽은 조 감독은 영화에 담은 참혹한 실상은 증언집의 100분의 1도 안 된다고 했다. 극 중 일본군이 소녀들에게 한 '너희는 사람이 아니다. 황군을 위한 암캐다'라는 대사, 소녀들의 몸에 손을 대지 않는 한 군인 얘기도 증언집을 바탕으로 했다.
워낙 끔찍하고 잔혹한 역사를 다룬 탓에 극장에 가길 꺼려하는 관객도 더러 있다. 조 감독은 관객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상처가 있는 분들을 치유하고자 만들었어요. 슬프지만 아름다운 엔딩으로 마무리 했으니까 많은 분이 보셨으면 합니다."
약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정부에 등록된 이는 238명. 최근 피해자 할머니 두 명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 생존자는 44명뿐이다. 조 감독은 목이 메인 목소리로 "마음이 무겁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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