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대구 동을 주민들 "1번 안나온다고? 그럼 안할란다"


입력 2016.04.07 22:16 수정 2016.04.08 17:20        대구 = 데일리안 장수연 기자

<2016 총선 뜨거운 현장을 가다-대구 동을>

"우리도 초등학교 나왔거든. 이름 밑에다가 찍는다고"

20대 총선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지만, 표심은 여전히 부유(浮遊)하고 있다. 선거판을 주도할 이슈의 부재,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 상승으로 부동층만 30%에 이르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역대 어느 선거보다 ‘격전지’가 늘어나고 있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엔 그 누구도 승패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 이에 데일리안의 정치부 기자들이 20대 총선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 지역을 직접 찾아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 편집자 주 >


4.13 국회의원 총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31일 오후 대구시 동구 불로전통시장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대구 동구을 유승민 후보가 시민들의 손을 잡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4.13 국회의원 총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31일 오후 대구시 동구 불로전통시장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대구 동구을 유승민 후보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야 이 사람아, 내가 투표할 바에야 저쪽 거제도에 고기 잡으러 갈끼다"

지난달 31일 대구 동구 불로전통시장을 찾은 기자에게 70대 박모 씨가 한 말이다. 시장 입구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는 선거유세인단으로부터 박 씨는 짧은 눈길을 거둬 들였다. '유승민 무소속 출마' '무공천 결정' 등으로 사실상 선거에서 경쟁이 사라진 동구을의 '노심'(老心)은 요동하고 있었다. 투표율이 높아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율보다 더 큰 비중으로 실제 투표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던 노년층이 대구 동구을에서 만큼은 예외가 될 것이라는 분위기였다.

지역민들은 본인을 '친박근혜계' 또는 '친유승민계'로 분류하는 데 익숙했다. 기자임을 밝히면 "나한테 친박이냐, 친유냐로 질문해보소. 언론에서 후보들을 하도 계파 별로 나눠사서 우리도 익숙하거든"이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공사장에서 일하던 40대 남성은 "난 친박이다. 누가 나오는지 모르니까 일단은 무조건 믿는 1번으로 가는 분위기다"라며 "여기 누가 나오죠?"라고 물었다. 이번에 지역구 선거에 1번은 없다라고 답하자 "그럼 머리 아픈데...누구를 찍노. 2번은 찍으면 안되겠고, 비례만 1번 찍어줘도 되는가?"라며 웃었다.

'친박'은 찍을 사람이 없어 고민하는 모습이었고, '친유'는 재미 없는 선거가 됐다며 아쉬워했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50대 남성은 "아무리 독보적인 무소속으로 나왔다지만 투표는 해야지"라며 "지금 동구을의 경우에는 선거판 자체가 너무 재미없게 이뤄졌고 김이 빠져 버렸다. 어쨌든 유승민은 당선될 거고, 앞으로 무소속으로서 정치적 세를 확보해 나갈 수 있는 가가 가장 관건이 아니겠나"고 말했다. 나름의 고민이 있음에도 이들이 갖는 공통점은 시민으로서 주권행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찍어주면 뭐하노" 투표 거부 운동 도모하는 노년층

동구을 노년층 사이에서는 몇 가지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선거 안 하기' 운동'과 '국회의원 없애기' 등의 운동이다. 운동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삐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소속 유승민은 내가 투표 안 해도 당선된다'는 이유에서다. '공천파동'의 여파로 여권의 텃밭 대구에서 민심 이반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시장 어귀에서 두 사람의 입씨름이 벌어지고 있었다. 유 의원을 지지하는 채소가게 상인은 "대구가 지금 민심이 약간 돌아가고 있잖아. 정치인이 자기 주관대로 살아야지 철새맹크로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면 되겠나"라고 유 의원을 두둔하자, 이를 듣고 있던 횟집 상인은 "유승민이가 와 까부노 그러니까. 다 키워 줬드만 대통령한테 까불어서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나온 거 아니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지 여론은 첨예하게 엇갈렸지만 투표하러 가고 싶지는 않다는 것에 대해선 너나할 것 없이 동의했다. 채소가게 상인이 "대구가 한나라당, 새누리당 찍어줘도 맨날 그게 그기다. 지금 수성구도 보면 김문수라는 사람이 유명한 사람인데 지금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거 아입니까"라며 "대구를 무시해서 그렇다. 민심이 뭐라고 해도 도통 듣질 않으려고 하니까 투표를 하고 싶겠나"라고 말했다.

횟집을 운영하는 상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우리 동구을에는 '선거 안 할란다' 요런 경향이 있어요 지금. 대통령한데 삐졌다 이런 여론이 좀 있다고 봐야지. '찍어 줘봐야 뭐하노' 이게 정답이다"고 했다. 유승민 의원에 대해서도 "누가 된단 말인교. 표를 안 찍어 줄라고 하는데. 지금 선거 안 하기 운동, 국회의원 없애기 운동 벌리고 있는데 안 찍으면 그만이거든"이라며 비관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자전거를 끌고 지나가며 이 광경을 지켜본 70대 남성도 "우리가 안 찍어줘도 안 되겠나"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4.13 국회의원 총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31일 대구 동구 용계동 거리에서 대구 동구을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이승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유승민 무소속 후보의 선거 벽보를 한 시민이 발걸음을 옮기며 바라보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우리도 국민학교는 나왔거든. 번호 말고 이름 밑에다가 찍는다고"

유 의원의 단골집으로 알려진 한 식당을 찾았다. 낮 시간이었음에도 벌써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이 있었다. 이 중 한 남성은 욕설을 섞어가며 "에이, 나 유승민이 찍을라고 새벽같이 나갈라 했는데 이제 안 나가도 되겠다"고 말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식당 주인은 기자에게 "우리는 선거 자체에 대한 의욕이 없어졌어요. 어느 지역이라도 경쟁이 붙으면 투표를 할 의욕이 사는데 이렇게 돼 버렸잖아. 이번에 동구을 투표율이 좀 저조할거라. 투표율이 100이 돼야될 것이 한 60 정도 되지 않겠나"고 말했다.

대화가 길어지자 그는 "자리에 앉아보라"며 합석을 권유했다. 자신을 70대 끝자락이라고 밝힌 가게 주인은 "원래는 우리 세대가 투표를 많이 하는데..."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새누리당이라고 하면 우리 세대는 물불 안가리고 투표를 많이 해왔는데 이번에는 노인네들 좋아하는 1번이 없데. 그러면 자연스럽게 투표장으로 안 가게 되고, 또 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냥 되겠네' 해서 투표를 안 한다니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요즘은 노인네들도 국민학교는 나왔단 말이야. 그러면 자기가 알아서 투표를 하는거야. 우리 나이에 국민학교 못 나온 사람들도 많은데 그래도 기역, 니은은 한다고. 그러면 1번이다, 2번이다 안 따지고 이름을 알기 때문에 이름 밑에다 찍는다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한 70대 여성은 "우리가 나이가 많아지면서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져서 그런다. 그래도 선거철되면 뭐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는데"라고 털어놓았다.

오후 3시께 유승민 의원이 선거유세 차 불로시장에 방문하자 상인들은 유세차량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2년째 지역구를 관리해 온만큼 지역민들과의 대화나 스킨십은 자연스러웠다. 시민들이 장난스럽게 "이제 연예인 다 됐네 다 됐어"라고 하자 유 의원은 고개를 저으며 손사레를 쳤다. 시장 어귀에서, 식당에서 만나 "투표 하지 않겠다"고 말하던 이들도 하나둘 유 의원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선 "고생 많제? 열심히 해라"고 말하며 유 의원의 등어리를 쓰다듬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승천 후보가 대구 동구을 지역구에서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 ⓒ이승천 후보 선거사무소

한편 대구 동구을 국회의원 후보는 2명으로 이승천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무소속 유 의원이 출마했다. 당초 새누리당이 대구 동구을에 공천을 하지 않음으로서 유 후보는 무투표 당선이 예상됐으나, 더불어민주당에서 비례대표에 실패한 이승천 후보가 뛰어들어 2파전이 형성된 상태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유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했기 때문에 새누리당 지지층과 유 의원 지지층이 갈려 지지율이 좀 올라가고 있는 편이다. 박빙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만만치 않은 승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수연 기자 (tellit@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장수연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