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무대응' 미국 대북정책의 선회 가능성 대비해야"
서강대 김재천 교수 통일연구원 25주년 학술회의서 주장
"미 대북정책에 우리 의지가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 대비"
북한의 평화협정 공세를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미국이 최근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대북 협상에 나설 수 있어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이 현재 한반도의 강대강 국면이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판단하면 북한이 줄곧 주장해온 평화협정을 매개로 상황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대북 대화국면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김재천 서강대학교 교수는 8일 '4차 북핵실험 이후 미중관계와 대북정책 방향'이라는 제하의 통일연구원 개원 25주년 학술회의에서 "비핵화-평화협정 병행론에 대한 한·미 간 협의가 선행됐거나 진행되고 있는지는 명확치 않다"면서 "한국에서 협상이라는 말이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는 상황이지만 미국은 협상국면에 대비하는 듯한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미국이 협상국면에 대비하고 있는 것에 비해 한국은 소위 출구전략이 부재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협상국면이 도래한다면 출구론에서 병행론으로 재포장된 평화 협정안이 테이블에 올라올 텐데 한국도 한국판 평화협정론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지난 2012년 2.29 북미합의가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실험으로 좌초된 이후 이른바 '전략적 인내'를 통해 북한과의 대화를 수용하지 않는 등의 북한 무시 정책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올해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김 교수는 주장했다.
김 교수는 4차 핵실험이 벌어지기 며칠 전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에 평화협정 논의를 제안했다가 북한이 거부했다'는 미국 월스트리트 보도와 해당 보도에 대해 "평화협정논의를 제안한 쪽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었고 제안은 미국이 거부했다"고 밝힌 미국 국무부의 입장을 거론하며 미국의 대북정책에 미묘한 변화가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김 교수는 중국 왕이 장관과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의 회동 당시 나온 "북한이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나온다면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을 수도 있다"는 케리 장관의 발언에 대해 "선제조건으로서의 비핵화는 사라진 듯한 뉘앙스가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미국과 북한이 소위 '뉴욕채널'을 통해 평화협정에 관한 접촉을 계속해왔던 점, 특히 4차 핵실험 바로 전에도 물밑 접촉이 있었다는 점, 강대강 국면이 지속되면서 가중되는 미국의 부담감, 중국의 병행로놔 보조를 맞춰야 할 필요성 등을 고려한다면 미국판 병행론이 동력을 가지고 재부상해 지속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란과의 핵협정,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등 미국과 적대관계의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오바마 행정부가 임기 말, 다음 정부에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초석으로 대북대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했다.
그는 "미국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정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고 하며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선호해온 측면이 있다"면서 "이 같은 미국의 성향은 천안함 격침과 연평도 포격 후 한국의 대북 보복계획을 미국이 만류한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로버트 게이트 전 미 국방장관 회고록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 당시 한국이 군사적 보복을 계획했는데 전쟁 확산을 우려한 오바마 대통령, 클린턴 국무장관,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까지 모두 나서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설득했다"면서 "때문에 미국은 현재 강대강 국면이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판단 되면 평화협정을 매개로 상황을 안정화하는데 주력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북한과 협상에 나설 수 있고, 강대강 국면이 지속되는 상황을 미봉책으로 봉합하려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면서 "한국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우리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한 여지를 늘 남겨놓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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