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청년들이 그려내는 탈북청년들의 사랑이야기
연극 '달콤한 거짓말' 개막…탈북자들, 사투리 전수 등 조력자 역할 톡톡
"다가오는 통일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가장 좋은 교과서는 바로 우리 옆에 이웃하고 있는 탈북자들이 아닐까요?"
탈북남녀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연극 '달콤한 거짓말'이 4일 막을 열었다. 탈북자라는 이유로 결혼까지 생각했던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 리영희와, 긴장하면 헛웃음을 내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연애 숙맥' 박철수가 맞선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탈북자가 주인공인 이 연극은 지난 2014년 북한인권단체 '남북동행'(전 북한인권탈북청년연합)이 선보인 연극 '오작교'를 각색해 약 6개월간의 준비과정을 거친 뒤 세상에 나왔다. 원작인 '오작교'에 희극적인 요소를 가미해 탈북남녀들의 연애를 보다 재미있게 풀어냈다.
통일부 인가 비영리민간단체인 남북동행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4년간 남북 청년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극을 기획·진행했다. 2012년 '정명-어항을 나온 다섯 물고기'를 시작으로 2013년 '이중사연', 2014년 '오작교' 그리고 2015년 '서평택시'까지 남북의 청년들은 함께 어우러져 연극 무대를 꾸몄다.
그리고 올해 연극 '달콤한 거짓말'이 관객들을 찾아왔다. 2012년 남북동행의 첫 연극 때부터 기획·연출, 연기지도 등에 도움을 준 허남성 이음시어터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남북의 청년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연기하던 과거와 달리 올해는 작품 경력이 있는 남한의 전문 배우들만이 배역을 맡아 연기한다. 대신 탈북 청년들은 무대 밖에서 조력자 역할을 수행,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2013년 연극 '이중사연'을 시작으로 매년 연극에 참여하고 있는 배우 김현민 씨는 "처음 이중사연이라는 작품을 했을 때 알게 된 탈북자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북한에서의 삶이나 (남한으로) 넘어온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듣게 됐는데 정말 너무 슬펐다. 그러다 문득 왜 우리 사회는 탈북자들에 대한 나쁜 인식을 갖게 될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그러면서 더욱 탈북자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현민 씨는 이번 연극에서 남자주인공 박철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다.
김현민 씨의 경우처럼 이번 연극에 출연한 배우는 물론 스텝진의 절반가량은 기존 남북동행의 연극에 참여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앞서 연극을 준비하며 만나게 된 탈북 청년들을 통해 북한 주민들과 남한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북한', '탈북자'라는 소재에 매력을 느껴 지속적으로 공연에 참여해오고 있다.
탈북자가 아닌 이들이 탈북자 역할을 맡아 연기하기란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탈북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말투에 남아있는 북한식 억양과 표현을 자연스러운 연기로 내보이기까지는 여러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러나 배우들은 도우미를 자청한 탈북 청년들로부터 조언을 듣고 코치를 받으면서 점점 더 '탈북자스러운' 모습으로 배역에 녹아들었다.
특히 원작인 '오작교'에서 배우로 열연한 남북동행 소속 김필주 청년나눔팀장은 이번 연극의 조연출로 참여해 배우들의 연기에 큰 도움이 됐다는 후문이다. 함경북도 새별군 출신의 김 씨는 북한에서의 생활과 자신의 탈북 과정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며 북한과 탈북자들에 대한 배우들의 이해를 도왔고, 덕분에 배우들은 배역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리영희 역을 맡은 배우 김리하 씨는 "캐릭터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극에서 감정을 끌어내야 하는 부분에서 탈북자 친구들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며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고 남한에 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나와 더욱 몰입해서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번 연극에서 배우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북한 사투리였다. 이따금씩 강원도,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나오는 바람에 웃음이 터져 연습이 늦어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고, 남한처럼 지역별로 각기 다른 북한 사투리를 어떻게 통일해야할지 논의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기도 했다.
배우들이 북한 사투리의 '늪'에 빠지고 있을 때쯤 방송과 영화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탈북자 김진옥 씨가 직접 연습실을 찾아왔다. 그는 직접 배우들의 북한 사투리 억양을 지도하거나 대본을 세세하게 살펴보면서 일부 문장을 북한식 표현으로 다듬어주는 등 극의 현실성을 높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 외 여러 탈북자들의 도움을 거쳐 탄생한 연극 '달콤한 거짓말'은 5월 29일까지 대학로 여우별씨어터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탈북자들의 이야기지만 탈북자들만을 위한 연극은 아니다"라는 게 이번 극의 연출을 맡은 허남성 대표의 말이다.
허남성 대표는 "주변의 탈북자들을 보면 대한민국 국민으로 실제 누구보다 밝고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는데, '탈북'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공연이나 영화는 대부분 인권이나 정치적 문제에 얽매여 무겁고 어둡게 그려진다"며 "그래서 여느 연인들의 평범한 연애 이야기에 탈북이라는 소재를 접목해 관객들로 하여금 '탈북자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가오는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탈북자들은 가장 좋은 교과서"라며 "이번 공연이 탈북자에 대한 보이지 않는 벽과 경계심을 허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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