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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는 아직도 열려있다


입력 2016.06.27 16:20 수정 2016.06.27 16:20        이배운 수습기자

<서평>이창대의 '판도라의 춤'

이창대의'판도라의 춤'표지 ⓒ수서원
그리스 로마신화에 따르면 만물이 창조될 때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에게서 불을 훔친 뒤 인간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에 노한 제우스는 판도라라는 여자인간을 만든 뒤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한 상자를 선물한다. 어느 날 호기심을 참지 못한 판도라는 결국 상자를 열어버렸고 상자 안에 있던 온갖 욕심, 질투, 시기, 각종 질병 등이 제요소들은 세상 곳곳으로 퍼져나가 버렸다. 평화로웠던 세상은 금세 험악해지고 말았다. 놀란 판도라는 급하게 상자를 닫았지만 상자 안의 나쁜 것들은 이미 전부 빠져나온 뒤였다. 그러나 그 안에 있었던 ‘희망’은 빠져나가지 않았다.

소설의 주인공인 박만엽은 산골마을 출신이지만 명석한 두뇌와 탁월한 수완으로 ‘씨저넷’이라는 정보통신 벤처기업을 설립한다. 사업을 성공적으로 확장해 나가며 적지 않은 명성까지 얻은 만엽은 스스로를 자본주의의 승리자라고 여기고 노동자 혁명론을 주장한 마르크스를 비웃기까지에 이른다. 그러나 ‘도스코학원’의 정보과학관 설치공사 건에서 그룹의 온갖 술수와 횡포로 인해 대금을 받지 못한 만엽은 끝내 회사를 잃고 빚에 쪼들리는 신세가 되고 만다.

혹독한 고난의 연속에서 만엽은 인간의 운명을 움직이는 힘이 있고 사람들은 각자 그 힘의 주재자로 여호와, 알라, 브라흐마 등을 믿게 된다고 말한다. 만엽은 자신이 생각하는 운명의 주재자로 제우스를 지목한다. 이어 제우스에게 창조되고 세상의 모든 악이 든 상자를 연 판도라야말로 인간을 행복하게도, 고통스럽게 하는 전지전능한 실질적 선지자라고 여긴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만엽은 도인의 말에 따라 판도라의 현신을 만나게 된다. 인간 세상에 만악을 퍼뜨려버린 판도라는 상자에 아직 남아있는 희망과 행운으로 영약을 조제해 팔고 있었다. 500만원을 내고 약을 산 만엽은 곧 극적으로 파산면책처분을 받고 연인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하여 성공한 중견기업 경영자로서 재기하게 된다.

작가는 만엽의 생을 빌려 판도라의 상자에서 쏟아져 나온 고통들이 ‘자본주의’라는 구조를 통해 실체화 된다고 말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경제적인 동물이다.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고통, 증오, 범죄 등의 요소들은 결국 경제활동에서 파생되는데 인간은 신의 도구인 자본주의의 틀 속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고통의 춤을 춘다는 것이다. 여기서 판도라는 신의 뜻을 실현시키고, 인간의 생과 함께 춤추는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작중에서의 판도라는 아직 상자에 남아있는 희망으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들을 구제하고 있으며, 이 또한 제우스의 뜻을 대행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판도라는 마음이 맑고 간절함을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 현신하여 나타난다. 온갖 나쁜 것들이 판도라의 상자에서 쏟아져 나온 이 세상에서 스스로 정성을 다하면 ‘희망’은 어렵지 않게 찾아올 수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엿보인다.

다만 판도라가 소유하고 있던 ‘희망’이 정확히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는지는 고민에 빠져들게 만든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가 전한 가장 일반적인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에 따르면, 상자 안의 나쁜 것들은 전부 빠져나왔지만 그 안에 있었던 희망은 빠져나가지 않아 사람들은 상자에서 빠져나온 악들이 자신을 괴롭혀도 희망만은 절대 잃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애초에 왜 ‘희망’이 나쁜 것들을 담는 상자에 함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전해지지 않았고 이에 사람들은 희망의 본질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제기해왔다.

헤시오도스는 자신의 또 다른 시집에서 희망에 대해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이 가지는 쓸데없는 것‘ 이라며 희망을 헛된 것으로 표현했으며, 미국의 대문호 나다니엘 호손은 ‘인간들에 어떠한 재앙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도록 재앙들 사이에 희망을 넣어 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또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희망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희망은 처음부터 악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뉴질랜드로 이민해 재기한 만엽은 가족들과 유람선 여행을 하다 난파 사고를 당하고 극적으로 구조된다. 그러나 만엽은 의식만 간신히 되찾을 뿐 반신불수가 된 채로 유언장을 작성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성공과 화평은 찰나의 희망으로 지나가 버리고 또다시 판도라의 상자에서 쏟아져 나온 해악이 만엽의 삶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지루한 고통의 순환에서 간신히 잡아낸 희망과 행복, 그러나 성급하다 싶을 정도로 다시 죽음에 가까워진 만엽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의 생은 근본적으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고민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고통스러운 인간의 생을 만들고, 그 고통의 생 안에서 아직 남아있는 희망을 나누어 주고 있는 판도라. 그녀가 쥐어주는 희망은 진정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희망인지, 혹은 더 큰 그림자를 만드는 공허한 빛에 불과한지는 생을 살아가는 인간 각자의 해석에 맡겨진다. 어쨌든 분명한 점은 세상의 만악을 담았던 판도라의 상자는 아직도 열려있고 '희망'은 여전히 새어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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