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따로 있는 국가재난 교육 훈련>최초 여성 민방위대
"여성이라서, 엄마라서 안전문제에 더 집중할 수 있어요"
크고 작은 각종 재난·지해 사고가 일어나면서 안전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다. 하지만 정작 재난과 재해, 사고를 접했을 때 우리의 대처 능력을 얼마나될까.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19세 이상 성인들을 대상으로 '재난안전 역량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대응 방법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는 응답은 절반을 채 넘기지 못했다. 특히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응답비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들은 군 입대-예비군-민방위 등을 거치면서 형식적으로라도 재난·재해 등에 대한 대처 교육 및 훈련을 받지만 여성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에 데일리안은 재난과 재해에 대한 여성들의 교육 및 훈련 기회가 전무한 실태를 점검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국민 안전과 국가 안보에는 남녀구분이 없는 만큼 여성들도 이를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안보위협, 재난, 각종 사건사고 뉴스가 터지는데 내 가족, 이웃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죠."
누가 ‘강남아줌마’ 하면 ‘치맛바람’이라고 했던가. 각종 사건사고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는 흉흉한 세상에서 ‘내 자식’과 이웃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행주치마를 두른 ‘강남아줌마’가 있다. 가족과 이웃, 지역안전의 파수꾼을 자처한 이 ‘강남아줌마’는 녹색과 노란색이 섞인 민방위복을 '현대판 행주치마'라고 자랑해보였다.
서울 서초구 여성 민방위대 방배지역대장인 임보미 씨(40)는 지난 16일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데일리안’과 만나 여느 주부들과 같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늘어놨다. 임 씨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학교 앞·공중화장실 CCTV 유무, 심폐소생술 자격증, 치매노인 안전귀가. 여성 민방위대원으로서 매 순간 지역 안전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임 씨가 속한 서초구 여성 민방위대는 서초구에 거주하는 50세 미만의 여성 50명으로 구성된 서울시 최초 여성 민방위대로 지난 6월 1일 창설됐다. 전 대원들은 민방위대 창설을 앞두고 방독면 착용을 비롯한 응급처치·심폐소생술 등 기초안전교육을 이수했다. 이후 여성안전을 위한 안심귀가 도우미 활동, 어린이 안전을 위한 학교 앞 안전순찰, 이밖에도 여성의 입장에서 본 안전위협 요소를 적극 발굴해 조치하고 각종 재난·재해 예방 활동에도 적극 나설 예정이다.
이처럼 지역 안전을 수호하는 여성 민방위대는 서초구뿐 아닌 경기도, 경남, 충남 등 총 16개 시·도에서 운영 중이다. 여성 민방위대는 전국 각 시·도가 지역안전 수호를 위해 별도로 창설한 민간조직으로 사회단체 성격에 가깝다. 남성 민방위대와 달리 자원제로 이루어지며 정규 교육시간인 연 4시간 외에도 지역 사회 안전 이슈가 있을 때마다 활동을 벌인다.
서울 최초 여성 민방위대원이 된 임 씨는 아이와 시부모님, 가족 같은 이웃의 안전을 지키고 싶어 여성 민방위대에 자원하게 됐다.
그간 지역의 교회와 복지관, 자녀 학교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온 그는 최근 여성과 노인, 아이 등 안전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자 직접 나서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도울 방법을 모르던 차에 ‘여성 민방위대’ 라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전했다.
각종 봉사활동을 해온 임 씨에게도 민방위대 교육은 생소하고 어렵게 다가왔다. 방독면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불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쓰러진 사람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학창시절 이후로 전문적으로 배워본 기억이 없었다.
임 씨는 “우리 여성 민방위대원 대부분이 처음에는 기본적인 응급처치도 몰랐다”면서 “지역 주민 안전에 관심이 있어 모인 사람들도 기본적인 구호 지식이 없는데 대부분 성인 여성들은 각종 위험으로부터 즉각적으로 대비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임 씨는 “각종 재난이나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여성들은 기본적인 안전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다”면서 “남성들처럼 총 들고 전쟁터에 나가지는 않더라도 각종 재난이나 범죄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고 이웃, 지역사회를 지킬 수 있으려면 기본적인 안전교육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체적 조건 등 남녀 간 차이가 분명한 만큼 서로의 역할도 확실히 다르다. 과거 행주대첩 당시 아낙네들이 행주치마에 돌을 날라 국난 극복에 큰 힘이 된 것처럼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이 많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이 있기도 하고 각종 재난·재해, 사건·사고 위험에 휩싸여있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무섭다고 피하고, 무조건 보호받을 게 아니라 남성들이 전쟁터에 나갔을 때 가족과 이웃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범죄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해서는 여성이라서, 엄마라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언론에 노출되지 않거나 평소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묻히거나 놓칠 수 있는 가정폭력, 왕따, 노인·여성 폭력 문제 등을 실제 한 아이의 엄마로서, 또 여성으로서 보다 쉽게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의 모성애와 섬세하고 부드러운 힘이 피해자들의 상처를 공감하고 위로하는데 강점이 된다는 설명이다.
실제 서초구 여성 민방위대는 최근 발생한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과 관련 여성의 관점에서 남녀 화장실 분리문제, 폐쇄회로(CC)TV 설치 여부, 비상벨·블랙박스 설치 문제 등에 대한 근본적 안전대책을 주장했다. 이밖에도 여성 민방위 대원들이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겪었던 사회적 차별 등을 서로 공유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는 것이다.
임 씨는 “과거 직장생활을 할 때 퇴근길 어두운 골목을 지나는데 낯선 남자 두 명이 쫓아와 밝은 곳으로 피하려했으나 골목길에 가로등 불빛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모르는 집에 가족인 척 들어간 적이 있다”면서 “이런 문제는 모든 여성들이 겪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 당시 주민센터에 전화한 적이 있는데, 여성 민방위대원이 되면서 이런 문제들을 함께 공유하며 정식으로 건의할 수 있고, 직접 실현돼가는 과정을 볼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전했다.
그는 “여성 민방위대원들이 꼭 심폐소생술이나 기본응급처치 같은 실제적 조치를 할 수 있어 존재하는 것뿐만이 아닌 ‘엄마’의 진심어린 마음으로 안전 취약계층들을 자식처럼 따뜻하게 보살필 수 있고 상담할 수 있는 역할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면서 “국민 안전, 국가 안보에는 남녀구분이 없는 것처럼 여성들의 활동을 국가에서 적극 지원해 생활 속 안전의식을 높이고 범죄 사각지대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살면서 건강과 안전이 가장 중요한 만큼 아이들도 국영수보다 안전교육을 더 철저히 받아 기본적인 위험에는 대비할 수 있게 해야 하고, 노인들도 이론교육 위주로 기본적인 안전의식을 고취해야 한다”며 “1~2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 받는 것처럼 전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재난·안전검진도 필요하다. 내 가족, 이웃이 위험할 때 책임감을 가지고 생명을 구할 수 있으려면 정기적 건강검진만큼 안전검진도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