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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말’은 ‘양날의 검’


입력 2016.10.12 10:12 수정 2016.10.12 10:20        고수정 기자

문재인 '한강'·김진태 '간첩' 발언, 상대 공격에다 지지층 결집 노려

'말'이 '설화'돼 자질 논란 등으로 제 살 베기도

문재인(위부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 ⓒ데일리안

문재인 '한강'·김진태 '간첩' 발언, 상대 공격에다 지지층 결집 노려
'말'이 '설화'돼 자질 논란 등으로 제 살 베기도

“정치인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말’은 '양날의 칼'로 통한다. 지지층을 결집하고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한 긍정적인 수단으로 작용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정치인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히고 지지층 이탈을 야기하는 악재가 될 수도 있다. 정치권에선 미처 파장은 예상치 못하고 강경 발언을 내뱉었다가 ‘막말’로 평가돼 역풍을 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치 9단’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11일 자신의 SNS에 ‘입조심’을 당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대통령선거를 1년여 앞둔 지금, 갖가지 ‘말들의 향연’이 '대권 레이스가 벌써 시작됐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된 정치권의 ‘말’ 사례는 두 가지다. 더불어민주당 전·현직 대표들의 ‘한강 발언’과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 및 박 비대위원장 간의 ‘간첩 발언’이다.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는 10일 ‘2016 세계한인민주회의 대표자 워크숍’에서 “지금 우리 당 대권주자 지지도 합계가 여권 대권주자 지지율 합계보다 월등히 높다”며 “내년 대선에서 못 이기면 제가 제일 먼저 한강에 빠져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추미애 대표의 발언에 대한 맞장구였다. 추 대표는 같은 자리에서 축사를 통해 “국민 여론조사를 하면 60%가 정권을 교체해 달라고 한다”며 “이런 지지를 받는데도 우리가 지면 ‘다 같이 한강에 빠져야지, 낯을 들고 다닐 수 없다’는 각오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문 전 대표는 더민주의 유력한 대권 주자로 꼽히며, 추 대표는 ‘친문재인계’ 인사로 분류된다. 이들의 발언은 ‘정권 교체’에 대한 강한 의지를 통해 지지층 결집을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대세론을 굳히기 위한 ‘선거 전략’ 차원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의 발언 이후 내부에서 “한강 물에 빠지면 안 되잖아”가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두 전·현직 대표를 두고 각각 대권 주자와 당 대표로서의 ‘자질 부족’을 지적하고 있다. 박 비대위원장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인을 말을 조심해야 한다”며 “‘내년 대선 후 한강에 빠져…’ 운운은 승리의 각오 표현이라지만 지키지도 못 할 거고 교육적으로도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천주교에서 자살은 손꼽히는 죄악이다. 문 전 대표는 천주교 신자라고 들었다”며 “‘한강에 빠져 죽겠다’는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말 하면 ‘날라리 신자’되는 것으로, 주일 고해성사부터 보길 바란다”고 비꼬았다. 당 수뇌부의 한강 발언은 더민주의 위상에 득보다 실을 더 많이 안겨준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의 ‘간첩 발언’으로 촉발된 여야 공방도 점입가경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북한 주민 여러분,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라”라고 하자 박 비대위원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압박하는 게 아니라 선전포고 아니냐”고 말한 게 발단이 됐다. 김 의원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박 비대위원장을 ‘간첩’에 빗대어 표현했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왜곡과 선동으로 눈이 비뚤어졌다”고 공격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다음 날 “제가 간첩이라면 정부가 잡아 가야지 그리고 신고해서 포상금 받지 이런 무능한 정부와 신고도 못하는 꼴통보수 졸장부가 있느냐”고 맞받아쳤다.

야 3당은 10일 “녹내장 수술로 의안을 한 박 비대위원장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이라며 김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김 의원도 박 비대위원장을 윤리위에 맞제소할 뜻을 밝혔고, 실제로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단은 11일 박 비대위원장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했다.

정가에서는 김 의원의 강경 발언이 본인의 존재감을 높이는 동시에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차단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해석한다. 정국 곳곳에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의혹 공방,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 개헌 요구 등 레임덕 유발 소지가 있는 만큼 ‘친박계’ 대표주자로서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실제 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김 의원과 박 비대위원장의 공방이 언론의 주목을 받은 날 소폭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10일 발표한 ‘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일간 변화’에 따르면 5일 34.8%로 전날 대비 1.6%p 올랐고, 6일에는 전날과 동률을 기록했다. (5일 일간집계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1015명 대상, 6일 1013명 대상. 응답률은 5일 10.6%, 6일 10.3%. 95%신뢰수준에서 각각 ±3.1%p)

그럼에도 김 의원 역시 자질 논란에 휩싸이는 바람에 ‘말’의 긍정적 효과만 누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11일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과거에는 ‘말’을 지지층 결집, 존재감 부각의 전략으로 활용했고 효과도 발휘됐지만, 현재는 부정적 작용이 큰 게 사실”이라며 “국민의 정치의식이 높아지면서 ‘윤리적인 정치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말을 가려서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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