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문턱' 낮아지는 '촛불집회'…"편하게 나와 깃발 아래로"
'금속노조'에서 '독거총각결혼추진회'까지 함께 외쳐
남녀노소 누구나 자유발언…구호 선창에 후창 척척
남녀노소 누구나 자유발언…차별 없는 성숙한 시민의식
지난 10월 29일 첫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집회가 낯설었다. 많은 시민들이 ‘하야가’ ‘헌법제1조’ 등을 어색하게 따라 불렀다. 구호를 외칠 때도 ‘하야하라’ ‘구속하라’ 등 선창에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제6차 집회에서는 달랐다. 선창이 ‘박근혜는’ ‘새누리도’ ‘세월호를’ ‘군사협정’ 등 어떤 것을 말해도 짝 맞는 구호를 후창했다.
3일 오후 청와대 100m 앞에 촛불을 들고 모인 시민들의 목소리는 무거웠지만, 분위기는 밝았다. 주말마다 이어지는 집회가 6주째에 접어들자 시민들은 집회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재미있는 깃발을 들고 나오거나 부모님의 손을 잡고 나온 어린 아이들도 ‘하야가’를 따라 부르고 “박근혜는 퇴진하라”고 외쳤다.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제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자하문로를 거쳐 효자치안센터, 삼청동길을 지나 3개 방향으로 청와대를 에워쌌다. 이들은 “박근혜는 퇴진하라 더 이상은 못참겠다 새누리당 해체하라 재벌총수 구속하라”고 외쳤다.
또 곳곳에서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고, 주변 시민들이 이야기를 듣고 호응했다. 자유발언을 하면서도 장애인, 여성 등을 비하하지 않는 단어를 선정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집회에서 붙인 꽃 스티커가 여전히 남아있는 경찰버스에는 ‘주차위반’ ‘불복종’ ‘위헌적인 집시법에 불복종하자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등의 스티커가 덧붙었다. 경찰버스에 붙은 스티커를 보는 시민들은 “운전병들 어떡하나”하는 반응과 “주차위반 잘 붙였다”는 반응이 엇갈렸다.
수능이 끝나 집회에 나왔다는 김혜린 양은 커다란 종량제 봉투를 친구와 나눠들고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김 양은 “이런 일은 결국 사람들이 제 자리를 못 지켜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능 전에는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했고, 지금은 여유가 있으니 뜻을 표출할 때가 됐다고 생각해 나왔다”며 “처음에는 촛불시위 참가를 위해 나왔는데, 스티커 때문인지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아서 편의점에 들어가 종량제 봉투를 샀다”고 말했다.
특이한 깃발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녹색당, 민중연합당, 금속노조 등의 깃발 사이에는 귀여운 고양이 발자국이 찍힌 ‘앞발연대’의 깃발이 자리했고, 이화민주동우회, 서울과학기술대학 조형대학 등의 깃발 사이에는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시절 볼펜 세우던 것을 풍자한 ‘전국세우기연맹’의 깃발이 등장했다.
이렇게 색다른 깃발이 등장한 것은 노동조합 깃발 아래 다가가는 것을 어려워하는 국민들 사이에서 조금 더 편안하게 집회에 참여해보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이외에도 ‘놀라자빠질헐’ ‘정치는 대국적으로 전국발터연합회’ ‘집가싶(집에가고싶다)’ ‘대한민국아재연합’ ‘야소가미 고등학교 리볼버부’ ‘범깡총연대’ ‘인왕산 해발시팔메다 거주주민연대’ ‘슬퍼할 겨를 없는 바쁜 벌꿀 모임’등 웃음을 자아내는 깃발들이 함께 했다.
‘독거총각결혼추진회’라는 깃발을 든 한승민 씨는 특이한 깃발을 보고 말을 걸자 굳은 목소리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독거청년들에게 따뜻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정의롭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곧 “이제 집회가 예전에 알던 집회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나오지 못하거나 나오는걸 두려워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며 “SNS를 통해서 주변분들에게 집회가 어려운 게 아니다. 편하게 나와 이 깃발 아래 모여보자는 취지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집회에는 촛불이 아니라 횃불도 등장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에 대한 항의로 보였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4월 16일을 상징하는 416개의 횃불은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로 향했다.
직접 횃불을 들 수 없어 횃불 모형을 만들어 온 시민도 있었다. ‘박근혜 퇴진’과 ‘새누리 해체’라고 쓴 횃불모형을 든 최혜경 씨는 “너무 성질이 나는데 진짜 횃불을 들 수는 없어서 만들어봤다”며 “박근혜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지금까지 의혹이 진짜일 줄은 몰랐다.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서 시위라는 것을 처음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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