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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100세 시대②] 강신호 회장 뚝심 빛난 '지구촌 피로회복제'


입력 2017.01.09 14:31 수정 2017.01.09 15:58        박지수 기자

술과 추수의 신 '바커스(Bacchus)' 석고상 보고 박카스 이름 떠올려

제품 기획력, 생산능력에 뛰어난 위기관리 더해져 박카스 신화 일궈

기업들이 '장기불황-소비절벽' 악순환 고리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삭막한 비즈니스 환경은 상품의 생명주기 단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꾸준한 사랑을 받는 장수제품이 요즘 더 빛나는 이유다. 긴 시간 스테디셀러 가치를 유지하는 비결은 품질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제품 이름이 보통명사처럼 회자될 수 있는데는 기업의 다양한 노력들이 더해졌음은 물론이다. '브랜드 100세 시대'를 열어젖히고 있는 대표적인 제품들의 면면과 노하우를 짚어본다.

동아제약 박카스D와 박카스F.ⓒ동아제약

올해로 출시 56돌을 맞은 박카스는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의 피로회복제'로 우뚝 섰다. 지난 2014년 국내 제약회사 단일제품 판매 기준으로는 최초로 매출 2000억 원을 시대를 열었다.

동아제약은 박카스 신화를 만든 비결로 제품 기획력과 생산 능력, 그리고 뛰어난 위기관리와 마케팅력을 꼽았다.

올해로 창립 85돌을 맞은 '동아쏘시오그룹'은 1932년 12월 1일 창업자 고 강중희 회장이 서울 종로구 중학동에 자신의 이름을 따 세운 의약품 위생재료 도매업체 '강중희 상점'이 전신이다. 1949년 8월 '동아제약'으로 이름을 바꾸며 제약회사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은 1950년대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유학했던 때 함부르크 시청 지하홀 입구에 있던 술과 추수의 신 '바커스(Bacchus)'의 석고상을 떠올렸다. 주당들을 지켜주고 풍년이 들도록 도와주는 능력이 있던 박카스 신이 국내에서 자양강장제 브랜드로 탈바꿈된 순간이다. 마침내 1961년 9월, 정제(알약) 형태로 박카스가 탄생했다.

1960년대 당시 많은 사람들이 전쟁 폐허 속에서 고된 육체노동을 통해 돈을 벌면서 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쓰러져 나갔고, 이때 미국의 원조로 비타민이 알려지게 됐다. 그 유행을 타고 첫 선보인 게 알약 형태인 '박카스 정'이다. 동아제약은 '종합강간영양제(綜合强肝營養劑)'란 표지를 내걸고, 간장보호에 중점을 둔 샘플 공세를 벌였다. 박카스 정의 월 매출은 100정 포장단위로 1만 개까지 늘어나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하지만 위기가 곧 찾아왔다. 제조 기술이 부족한 탓에 이듬해 봄부터 박카스 외피를 형성하는 당의정이 녹는 문제가 나타났고, 대량 반품 사태가 일어났다. 약국에서 보관하고 있던 박카스가 시간이 지나면서 녹아버린 것.

동아제약은 1962년 8월, 당시 소비자들에게 호응도가 높았던 20cc 앰플에 담은 '박카스 내복액'을 선보였다. 뛰어난 청량감으로 출발은 순조로웠지만 이 또한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소비자들이 용기사용에 익숙하지 못해 안전사고가 일어났고 운반과정에서 파손문제도 생겨났다.

동아제약은 두 번의 개선 끝에 1963년 8월, 마침내 현재와 같은 드링크 형태의 ‘박카스D'를 내놓았다.

동아제약은 박카스D의 성공을 위해 출시 직후부터 '3M 전략'인 대량생산·광고·판매(Mass Production·Communication·Sale) 전략을 내세워 시장공략에 나섰다.

전문지를 통한 의·약사 대상 광고에서 벗어나 TV·라디오·신문·잡지·옥외광고 등을 총동원했다. 특히 열풍이 불었던 TV 광고에 중점을 뒀다. 뿐만 아니라 톱니바퀴 상징 패키지를 도입하고, ‘활력을 마시자’라는 문구로 차별화한 광고를 선보였다.

동아제약은 1964년 '소매직거래'가 뼈대인 특약점을 도입해 약국에 박카스를 직접 공급했다. 이 전략은 현재 '박카스 루트세일즈' 유통의 기반이 됐다. 루트세일즈는 일정한 노선을 찾아다니며 제품을 파는 방법으로, 현재 '박카스 루트카'는 전국 2만여 약국을 직접 찾아 박카스D를 공급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을 토대로 박카스는 빠르게 성장했다. 1965년 980만 병이었던 박카스D 판매량은 1966년 3000만 병, 1967년 4700만 병으로 기록적 성장세를 보였고, 동아제약은 1967년 매출액 기준 국내 제약업계 1위에 올라섰다.

시련도 있었다. 1976년 7월 카페인 중독으로 인해 사회적 폐해가 잇따르자 정부는 오남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자양강장 드링크의 대중광고를 금지시켰다.

1989년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단맛을 내기 위해 사용되는 '사카린'이 발암물질이라고 발표하며 위기를 맞았다. 동아제약은 단 맛을 내는 사카린을 대신해 천연감미료인 스테비오사이드(설탕)를 찾아내 위기를 이겨냈다.

동아제약은 차별화한 휴머니티 광고 전략과 새로운 유통 판로 개척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1994년 박카스F 매출액이 최초로 1000억원을 넘어섰고, 1997년에는 IMF 한파에도 10% 이상 성장했다.

동아제약은 2005년 3월 박카스F에 견줘 타우린 성분을 두 배 늘린 박카스D를 출시하고, 같은 해 8월에는 여성과 젊은 소비자들을 겨냥해 카페인 성분을 뺀 '박카스 디카페'도 선보였다.

글로벌시장 공략도 어느덧 30년을 훌쩍 넘었다. 지난 1981년 아랍에미리트를 시작으로 현재는 캄보디아·필리핀·타이완·과테말라 등에 수출하고 있다.

박지수 기자 (pjs06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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