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넷, '조작' 반성보단 유사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 강행
오디션 프로그램, 근본적 혁신 이뤄질까
‘국민 오디션 프로그램’ ‘대국민 오디션’ ‘국민 프로듀서’ 등 국민들의 선택을 내세운 프로그램은 공정성이 절대적으로 성패를 가른다. 무성했던 조작 의혹이 일부 프로그램에서 사실로 드러나면서 이미 대중에게는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 잡게 됐다. 모든 국민이 참여한다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실상은 제작진이 스타를 내정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관계자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근본적인 혁신이 없으면 또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프로듀스x101’ 사태를 시작으로 방송계 전반에 만연한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금의 사태가 만들어진 것은 방송사에 대한 제재가 솜방망이에 그치면서 조작까지 이르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간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숱한 논란에도 마땅히 이를 제지할 만한 실효적인 수단이 부재했다.
고작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징계가 전부였는데 그조차도 큰 타격은 없다. 방심위의 과징금 처분을 받은 사례로 ‘쇼미더머니’ 시즌4에 내려진 처분을 들 수 있다. 수차례 징계를 받았음에도 시즌4에서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총 5000만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심지어 ‘프로듀스 X 101’의 투표 조작이 사실로 판명돼도 방심위에서 내릴 수 있는 과징금은 고작 3000만 원 수준이다. 프로그램에서 배출된 한 그룹이 1000억 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이는데, 고작 몇 천 만원의 과징금이 무서울 리 없다.
방심위도 일부 방송사가 이런 징계 등을 대수롭지 않게 치부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방심위 하남신 위원은 “몇 차례 징계를 내렸고 과징금까지 부과하나, 방송사에서 이를 위중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판결 이후에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과징금을 몇 천만 원을 부과해도 이 매체는 계속 할 것이다. 그런(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이 매체는 설 땅이 없다. 매체 특성과 관계해서 방송문화를 어떻게 끌어갈 수 있을지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정치계에서도 이런 행태를 막을 수 있는 방송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하태경 의원은 당시 Mnet에 시청자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지상파와 종합편성(종편) 채널에만 의무화된 시청자 위원회를 CJ ENM 계열 채널에 둬 프로그램 전반을 감시하자는 취지다.
논란 이후 프로그램 자체적으로 투명한 관리, 공정한 경쟁을 위한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퀸덤’을 연출한 조욱형 PD는 자사의 오디션 프로그램 조작 논란을 의식하고 ‘투표 참관인’ 시스템을 도입했고, 원자료 데이터를 모두 보관한 뒤 시청자들의 요구가 있거나 공개가 필요한 경우에는 공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조 PD는 “내부적으로 어떤 의혹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결과를 공개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의혹이 없게끔 투표 과정을 진행하는 게 첫 번째”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투표 데이터가 공개된다 한들 이미 신뢰를 잃은 방송사에서 대중을 설득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엠넷은 조작이 드러난 이후 지속적인 노력으로 공정한 방송사의 이미지를 확보해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함에도 또 다시 시청자 투표 시스템을 내세운 경연 프로그램 제작을 강행하면서 비난을 받았다.
한 방송 관계자는 “시청자 투표가 흥행한 이유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바람직하고 실력 있는 참가자에게 투표를 함으로써 성공적인 데뷔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 투표의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돈을 벌기 위해 아이돌 산업을 끌어들이고, 자체적으로 매니지먼트를 뒀다. 심지어 특정 기획사와 담합하면서 범죄에까지 이르게 됐다. 결국 시청자들의 믿음을 배반한 것으로 경연 프로그램에 대한 성찰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관계자들은 서열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이상 딜레마에 빠진 시청자 투표 기반의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극단적으로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폐지, 시청자 투표 제도 자체가 없어져야 논란이 그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관계자는 “지금의 사태라면 제도 자체를 폐지시켜도 충분하지만 이미 시청률의 맛, 오디션 프로그램의 맛을 봤기 때문에 사실상 사라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자 투표 제도의 순기능으로 공정하게 우승자를 배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결국엔 내부적으로 각성을 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