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미래기술육성사업’, 7189억 연구비 집행
‘나노 입자’ 등 세계 최초 연구 사례 투자 결실
기초연구 분야가 정부 주도의 톱다운 방식에서 연구자 주도의 기초연구 강조 기조로 전환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이 기초연구 투자로 다양한 연구 성과를 낸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세계 유수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27일(현지시간) 공개한 ‘네이처 인덱스 2020 한국 특집호’에서 “한국이 연구와 체계적 개혁, 인재 유치에 대한 투자를 통해 혁신의 글로벌 리더로 발돋움했다”고 밝혔다.
네이처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지출 비중은 2000년 2.1%에서 2018년 4.5% 이상으로 성장했다. 이는 1위인 이스라엘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2번째로 높다.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의 응용 연구를 통해 반도체와 무선통신에서 세계적인 국가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10년간은 이런 응용 연구 중심에서 벗어나 기초연구에 투자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한국 정부는 이를 위해 연구자 주도의 창의적 연구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연구자 중심의 기초연구 예산을 2025년까지 2조5000억원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2020년 정부 R&D 투자는 지난해에 비해 18% 늘어난 24조2000억원에 달한다.
한국 전체 R&D 지출의 4분의3을 차지하는 민간 부문에서는 삼성 등 주요 대기업의 기초연구 투자도 급증했다.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포스텍 교수)은 네이처 인덱스와의 인터뷰에서 “산업계가 보다 더 많은 박사급 연구자를 요구하고 있다”며 “투자의 관점에서는 이보다 더 나을 수 없다”고 말했다.
산업계가 대표적으로 기초연구를 지원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삼성 미래기술육성사업이 거론된다. 삼성 미래기술육성사업은 삼성전자가 2013년 1조5000억원을 출연,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과 삼성전자 미래기술육성센터를 통해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과학 기술 분야 연구를 지원하는 사회공헌(CSR) 사업이다.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은 국가 미래 과학기술 연구 지원을 위해 2013년부터 10년간 1조500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최근까지 561개 과제에 7189억원의 연구비를 집행했다.
실제 지원성과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이 지원한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 입자 연구단 박정원 연구위원 연구팀은 최근 세계 최초로 나노 입자의 3차원 구조를 0.02나노미터의 정확도로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 결과는 학계에서 난제로 여겨졌던 나노 입자의 표면 구조와 변화 요인을 규명한 성과를 인정받아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표지 논문으로 선정됐다.
박정원 교수 연구팀은 나노 입자가 액체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회전하는 현상에 주목해 회전하는 나노 입자를 연속으로 촬영할 수 있는 특수 용기인 ‘액체 셀(Liquid Cell)’과 3차원 데이터 구성을 위한 빅데이터 알고리듬(algorithm)을 자체 개발했다.
이를 이용해 액체 셀에 나노 입자를 담아 투과전자현미경으로 초당 400장의 이미지를 촬영해 얻은 서로 다른 2차원 평면 이미지를 빅데이터 알고리듬을 이용해 3차원 데이터로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박정원 교수 연구팀은 나노 입자의 3차원 구조를 0.02나노미터의 정확도로 분석할 수 있는 분석 기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으며, 백금(Pt)을 이용해 나노 입자의 3차원 원자 배열을 확인했다.
박정원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제시한 방법을 활용하면 수많은 종류의 나노 입자 구조를 원자 수준에서 분석할 수 있다”며 “나노 입자의 3차원 구조 분석 기술은 나노 입자뿐 아니라 단백질과 같은 생체 분자에도 적용이 가능해 새로운 융합 연구에도 활용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손준우 교수 연구팀은 500도 이상의 고온에서만 합성할 수 있었던 높은 결정성의 루틸 TiO₂를 낮은 온도(50~150도)에서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연구는 삼성전자 미래기술육성센터의 지원을 받아 2017년 9월부터 수행했다.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됐다.
루틸 TiO₂는 고성능 D램(RAM), 3차원(3D) 모노리식 반도체 등 차세대 디바이스용 소재로 주목받고 있는 고유전 물질이다. 유전률이 높아 작은 전압에서도 많은 양의 전하를 저장할 수 있다.
하지만 루틸 TiO₂를 합성하기 위해서는 매우 높은 온도가 필요해 전자 디바이스 제작에 어려움이 있었다. 저온에서는 결정 내부 반복 구조상 산소가 있어야 할 자리에 산소가 없는 산소 결함이 발생하기 쉬워 우수한 성능의 디바이스를 구현할 만큼 균일한 품질을 얻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미세공정으로 이뤄지는 디바이스 산업에서는 재료의 균일도가 생산수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손 교수팀이 찾아낸 방법은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도 산소 이온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어 산소 결함이 거의 없는 균일한 품질의 루틸 TiO₂를 얻을 수 있다. 손준우 교수팀은 이를 기반으로 차세대 반도체 소자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다.
손준우 교수는 “미래기술육성사업의 지원으로 산화물 이종접합 연구를 진행하던 중 이런 현상을 우연히 발견했다”며 “열 대신 계면에서의 이온 이동을 통해서도 산화물의 결정화가 가능함을 보여준 최초의 연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