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영 올스톱 최악 상황 피해
향후 재판·수사로 경영행보 부담 가능성
검찰이 경영권 부정 승계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하면서 삼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다. 총수의 부재 상황이 다시 초래되면서 글로벌 경영이 올스톱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하게 됐다.
하지만 재판과 수사 등 사법 리스크는 현재 진행형이어서 이 부회장의 경영행보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은 여전하다.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9일 새벽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대해 소명이 부족하다"며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전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시작한 이 부회장의 구속심사는 두 번의 휴정을 거친 끝에 오후 7시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총 8시간 30분이 소요되면서 국정농단 혐의로 구속심사를 받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8시간 40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긴 시간을 기록했다.
영장심사 이후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에서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로 이동해 대기하던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2시40여분경 구치소 밖으로 나왔다. 그는 심경을 묻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수고하십니다”라는 말만 남긴채 차에 탑승해 현장을 떠났다.
◆ 삼성, 2년 4개월만에 총수 부재 상황 피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삼성으로서는 2년4개월만에 다시 총수 부재를 맞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됐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7년 2월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됐다가 1년만인 2018년 2월 국정농단 재판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경영에 복귀한 바 있다. 당시 구속은 삼성그룹 총수로서는 처음이었다.
이번 영장 기각으로 그룹 총수가 다시 구속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한 셈이다. 경영복귀 이후 지난 2년여간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적극적인 경영 행보를 펼쳐 온 글로벌 기업인의 발목이 잡히는 리스크는 사라지게 됐다.
특히 이 부회장이 공식적으로 총수가 된 이후 국내외에서 광폭 경영행보를 펼쳐 온 터라 더욱 활발한 활동이 기대돼 왔다.
지난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삼성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이 부회장은 2018년 5월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집단 동일인 변경(이건희→이재용)으로 공식적으로도 삼성 총수 자리에 올랐다.
집행유예로 석방된 2018년에 주로 해외 출장 등을 통해 신성장 동력 발굴 등 미래에 초점을 맞춘 경영활동을 펼쳐 온 그는 지난해부터는 주력 분야의 국내 사업장 방문 등 현재로도 경영 보폭을 넓혀 왔다.
올해만 해도 거의 한달에 한 번 이상 국내외 사업장 현장 경영 행보에 나섰고 지난달 6일 대국민 사과를 시작으로 해고노동자 문제 해결, 7개 계열사의 노사관계 자문그룹 설치 등 사업 외적인 문제들의 해결에도 적극 나서는 등 전방위적인 행보를 펼쳤다.
◆ 최악 시나리오 피했지만 첩첩산중...가시밭길 여전
이 부회장으로서는 이번 영장 기각으로 글로벌 경영 행보에 발목을 잡히는 것은 피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지난 4년간 지속돼 온 수사와 재판 등 사법리스크가 앞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영장 기각은 인신 구속의 필요성이 없다는 것일뿐 검찰이 제기한 혐의를 완전히 벗은 상황은 아니다. 검찰이 추가 보강 수사를 통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불구속 기소라도 하게 되면 재판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면서도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소명됐다고 언급하면서 재판에서 치열한 법리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아직 국정농단 재판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인 이 부회장으로서는 사법 리스크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지난 2016년 11월부터 국정농단 연루 혐의 관련 수사로 시작해 지금까지 반복되는 수사와 재판으로 사법리스크에 노출되는 기간은 더욱 길어질 수 밖에 없게 됐다.
실질적으로 총수 역할을 해 온 지난 6년 중 첫 2년여를 제외한 이후 약 4년을 사법리스크에 시달려 온 이 부회장으로서는 향후 경영행보에 적잖은 부담을 느낄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정농단 재판이 3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받는 상황은 분명한 악재”라며 “불구속 상태로 받더라도 장기적인 비전과 계획 하에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글로벌 기업인의 경영 행보에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