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소송법상 구속사유 없는 상황서 ‘무리수’
외신 “합병 사건, 삼성그룹에 어려움 더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애초에 검찰이 무리하게 영장 청구를 밀어붙였다는 비난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마땅한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압박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설명이다.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구속 사유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것은 이 부회장에게 망신을 주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2시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의 구속영장 역시 기각했다.
이날 영장심사에서 이 부회장 측은 “시세조종은 결코 없었다. 중가방어는 모든 회사가 회사 가치를 위해 당연히 진행하는 것이고 불법적인 시도는 전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원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하였다고 보인다”면서도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하여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검찰이 이 부회장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형사소송법 규정상 구속 사유가 없는 상황에서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70조는 구속의 사유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피의자가 일정한 주거지가 없거나 증거인멸 염려가 있는 상황, 또 도주 염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 구속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주거지가 일정하고 그 위치도 일반에 알려져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최대기업의 총수로 도주 우려도 없다. 검찰 측 주장대로 범죄혐의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가 이미 확보돼 있는 상태라면 증거인멸 염려도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를 강행했다.
검찰의 이번 수사는 1년 8개월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50여 차례 압수수색, 110여 명에 대한 430여 회 소환 조사 등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도 높게 진행됐다. 결과적으로 이는 삼성 경영 전반에 불확실성을 초래해 악영향을 미쳤다.
주요 외신들도 이번 사건이 삼성전자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AFP통신은 “합병 사건은 계속되고 있는 (뇌물공여) 재판과 다르지만 세계경제 12위국의 산업을 지배하는 재벌인 삼성그룹에는 어려움을 더한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구속영장 기각이 이 부회장에게는 최소한의 일시적 안도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통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스마트폰,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가 타격을 받는 시점에서 이 부회장이 이번 사건으로 추가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부회장이 추가로 징역형을 받더라도 삼성의 미래에 대한 영향은 이 부회장의 수형 기간이 얼마나 되느냐에 일부 달려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