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이 중고차 딜러, 전형적인 중산층 출신
로스쿨 나와 변호사…군의원으로 선출직 시작
1973년부터 델라웨어 연방상원의원…7선 중진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에 '집단안보체제' 선호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조 바이든 당선인이 8일 오전 10시 30분(미국 동부시각 7일 오후 8시 30분) '대선 승리 선언'을 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외교통' 7선 중진 상원의원 출신이다. 1973년부터 델라웨어주 연방상원의원으로 재직했으며, 상원 법사위원장과 외교위원장을 지냈다. 외교위원장 시절에는 미국의 대외 정책과 관련해 집단안보를 선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2년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난 바이든 당선인은 11세 때 가족과 함께 델라웨어주 윌밍턴으로 이사했다. 이곳에서 바이든 당선인의 부친은 중고차 딜러로 활동하며, 중산층 가정을 꾸려나갔다.
델라웨어대와 시러큐스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된 바이든 당선인은 1970년 델라웨어주 뉴캐슬 카운티의 군의원으로 출마, 당선되면서 선출직 생활을 시작했다.
2년 뒤에 열린 1972년 상원의원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바이든 당선인은 공화당 현역 재선 의원인 제임스 보그스 상원의원을 상대로 30%가 넘는 열세를 맹렬히 뒤쫓아가 추격하며 마침내 50.5% 대 49.5%의 대역전승을 일궈냈다. 베트남전의 종전과 '생활 정치'를 내세운 게 주효했다는 평이다.
3~4선 때까지 법사위, 중진 때는 외교위 활동
독재자·전범에 단호…응징엔 '집단안보' 선호
밀로셰비치 겨냥 "망할 전범…재판정 세워야"
유고 사태 개입 "공직 경력서 가장 자랑스러"
연방상원의원 당선 당시 29세로 미국 역사상 여섯 번째로 젊은 상원의원이었던 바이든 당선인은 이후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델라웨어주에서 6년 임기의 상원의원으로 7선 고지에 오르는 동안 계속해서 58~65%의 득표율을 얻었다. 2009년 부통령 취임을 위해 상원의원을 사임할 때에는 이미 미국 역사상 18번째로 길게 재직한 상원의원이 돼 있었다.
바이든 당선인은 상원의원 초년 시절에는 변호사로서의 경력을 살려 법사위에서 활동하다가, 중진이 되면서 외교위로 옮겨갔다. 3~4선 때였던 1987년부터 1995년까지는 상원 법사위원장을 지냈다.
이후 5선 중진이 되면서 외교위로 옮겨간 바이든 당선인은 시종일관 적국에 대해서는 단호하면서도, 이를 응징하는 방법으로는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한 '집단안보체제'를 선호하는 입장을 보였다.
바이든 당선인이 "공직 경력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라고 스스로 회고한 대목은 유고슬라비아 사태 개입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세르비아의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겨냥해 "망할 전쟁범죄자"라며 "법정에 세워 재판을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바이든 당선인은 북태평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과 함께 세르비아를 폭격하는 길을 택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향후 대북·대중 압박을 위해 인도·태평양판 나토라 불리는 '쿼드' 강화에 나설 개연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1988년부터 대권에 야망 가져…32년만에 당선
88년 당선됐다면 케네디 이어 '두 번째 최연소'
연설 표절에 이어 논문 표절 의혹 터지며 하차
오바마가 부통령 제안하자 박진에 고충 토로
정치인으로서 바이든 당선인은 일찌감치 1988년부터 대권에 대한 야망을 드러냈다. 당시 46세였던 바이든 당선인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재선 만료로 치러지는 1988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당선된다면 존 F 케네디에 이어 두 번째로 최연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대선 토론 과정에서 닐 키녹 영국 노동당 당수의 연설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한 번 '표절 의혹'이 나오자 미국 언론들은 바이든 당선인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집요하게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시러큐스대 로스쿨 논문 표절 의혹이 터져나왔으며, 바이든 당선인은 대선 가도에서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한동안 상원의원으로서 의정활동에 집중하던 바이든 당선인은 20년 뒤인 2008년에 대권 재도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힐러리 클린턴' 양강 구도 속에서 바이든 당선인이 설 자리는 협소했다. 아이오와 당원경선에서 5위에 그친 바이든 당선인은 또 하차해야만 했다.
이러한 바이든 당선인에게 나이도 어리고 의정활동 경력도 짧은 오바마 후보가 부통령을 제안했다.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이던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으로 찾아온 박진 국민의힘 의원을 만나 "오바마가 내게 부통령을 제안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통령이 빨리 될 것을 그랬다"라고 껄껄 웃으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08년 때 페일린 '막말'에 주목도 밀렸으나 승리
'조용하지만 강하다'…친화력 강한 대중정치인
올해 당선으로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 돼
첫 델라웨어 출신…28년만에 현직 대통령 꺾어
바이든 당선인은 부통령 지명을 한 차례 거절했으나 이후 가족들의 설득에 마음을 돌려 수락했다. 2008년 대선에서 바이든 당선인은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인 세라 페일린의 '막말 기행'에 밀려 유권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으나, 선호도 조사에서는 60% 정도로 44%에 그친 페일린 후보를 항상 압도했다.
올해 미국 대선에서 여론의 주목도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렸으나, 결국 바이든 당선인이 승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를 가리켜 미국의 정치 작가 하워드 파인만은 "바이든은 학자나 이론가, 논객이 아닌 전통적인 대중정치인"이라며, 그의 친화력과 스킨십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2016년 재선 임기까지 부통령으로 재직한 바이든 당선인은 4년간 정치 휴지기를 가진 뒤, 올해 대선에 재도전해 결국 승리했다. 1988년 대선에 도전할 때는 케네디에 이어 두 번째로 젊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지만, 올해 당선으로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 됐다.
바이든 당선인은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과 함께 내년 1월 20일 취임할 예정이다. 취임하게 되면 선거인단 3명으로 가장 적은 델라웨어주 출신으로는 첫 대통령이 된다.
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하던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을 물리친 이래 28년만에 처음으로 재선에 도전하던 현직 대통령을 꺾은 도전자가 되며, 재직 중이 아닌 전직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에 당선된 첫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