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규환'은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참상이라는 말'의 뜻을 가진 아비규환의 재기발랄한 말장난으로 시작된 제목이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제목만으로 예상가능한 '애비규환'은 정수정을 둘러싼 세 명의 '애비'들의 이야기다. 이혼, 혼전임신, 재혼 등을 편견없이 그려낸 최하나 감독의 연출이 보는 즐거움을 안긴다. 무엇보다 아이돌 배우란 편견을 뒤집는 정수정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애비규환'은 토일이 임신을 하자 낙태할 수 없는 시기가 지난 5개월에 부모님에게 사실을 고하자 "누구 닮아 이 모양"이냐는 엄마 선명(장혜진)의 말에 "누구 닮았는지 직접 확인해보겠다"고 친아빠를 찾아나서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구에 내려간 토일은 외갓댁에서 머물며 아빠의 흔적을 찾는다. 가족 사진첩에는 모두 토일의 모습 뿐이다. 이혼한 아빠의 사진이 외갓댁에 없을 수 있지만 엄마와 사진 마저도 없다. 이에 외할머니는 "다 너 찍어주느라 그랬지"라고 눈을 흘긴다.
토일은 대구에서 자라온 기억을 더듬어 아빠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항상 따라오는 건 엄마와의 추억이다. 아빠가 없던 토일의 유년시절이 불행했나 싶지만, 오히려 엄마와 유대관계를 쌓은 좋은 기억들로 가득하다. 잊고 있었던 감정이 토일은 자꾸만 낯설다.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진 건 엄마 선명이 재혼하면서부터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토일에게 "쟤네 엄마아빠 이혼했대, 난 엄마아빠 이혼하면 죽어버릴거야"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만큼 이혼과 재혼을 인생의 실패 혹은 수치라고 여기는 시선이 만연했음을 보여준다. 차곡차곡 상처가 쌓인 토일은 겉으로 내색하진 않지만 언제나 화목한 남자친구 호훈(신재휘)의 가족들을 보며 부러워할 뿐이다.
최하나 감독은 이혼가정은 불행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어 이 영화를 기획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애비규환'은 삶의 오류를 인정하고 새 인생을 다시 출발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의 용기를 이혼, 재혼이라는 말로 가둬버리는 세상을 향한 목소리다. 영화는 계속해서 편견을 뒤집는 설정을 곳곳에 배치했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안내방송에 할아버지가 아이폰을 들고 있는 장면을 비추는가 하면, 토일의 결혼식장에서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리는 건 호훈의 아버지다. 중년 부부인 호훈의 부모님은 집에서 항상 파스타를 먹는다. 그리고 친아빠 새아빠 중 누구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갈지 고민하는 토일 옆에는 턱시도를 입은 엄마 선명이 있다.
두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엔 엄마 선명과 딸 토일의 모성으로 결말을 맺는다. 인식된 성 역할에 재치있게 반기를 드는 최하나 감독의 연출이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살을 찌우고 임산부의 모습을 한 정수정의 도전이 눈길을 끈다. 임신 후 5년후 인생까지 계획하는 토일의 야무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정수정과 다르지 않지만, 자꾸만 예상 밖의 일이 생기자 당황하는 모습은 정수정의 또 다른 구석을 본 것 같아 신선하다.
최덕문, 장혜진, 강말금, 남문철, 이해영 등 탄탄한 조연배우들의 연기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애비규환'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받쳐준다. 12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