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정이 '애비규환'으로 영화 첫 주연을 맡았다. '애비규환'은 이혼, 재혼, 혼전 임신등을 한 캐릭터들이 불행할 거라는 시선 속에 움츠러있지만, 사실은 보통의 가족처럼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토일(정수정 분)의 가족을 비췄다. '애비규환'은 사람들이 심어놓은 편견을 기분 좋게 배반하는 설정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정수정이 '애비규환'의 주인공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냉미녀, 아이돌 출신 배우란 정수정에게 따라붙는 타이틀을 보기 좋게 뒤집어놨다.
정수정이 '애비규환'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단 하나다. 시나리오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정수정은 토일이의 성장이 담긴 '애비규환' 시나리오를 최하나 감독에게 책으로도 내자고 제안할 정도로 토일이에게 푹 빠져 있었다.
"감독님이 글을 정말 잘 쓰세요. 저는 시나리오를 한 번에 다 읽는 타입이 아닌데 훅훅 넘어가더라고요. 대사도 좋고 쉽게 이해가 가더라고요. 시나리오 읽고 바로 한다고 했어요. 안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정수정은 '애비규환'이 첫 주연인만큼 부담감과 책임감을 묻는 혹은 그 이상을 바라는 시선을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처음이라는 것에 의미 부여를 하지 않고, 원래 하던대로 촬영을 준비해나갔다.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첫 주연이니 이렇게 해야지, 첫 주연작이니 더 잘해야지, 이런 것들은 최대한 배제하고 그냥 열심히 했어요. 제작진에 대한 믿음도 있어서 좋은 영화가 나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
토일이는 극중 5개월 차 임산부다. 정수정은 살을 찌우고 걸음걸이부터 앉은 자세까지 임산부를 표현하기 위해 조언을 구하고 실제 임산부를 관찰했다. 정수정은 배를 의식해 자세가 어색할까 걱정했지만, 특수 분장을 하니 앉을 때마다 다리가 잘 오므려지지 않았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솔직히 임산부 설정에 헉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그랬는데 시나리오가 재밌으니 연기도 즐겁게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바로 들더라고요. 또 임신을 안해봤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봤어요. 그런데 배에 실리콘으로 만든 벨트를 찼더니 자연스럽게 걸음걸이가 나오더라고요. 없던게 생겼으니까 불편하긴 했는데, 그 불편함이 또 임산부의 자연스러움으로 묻어나올 것 같아요. 바닥에 앉으려면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그 때 진짜 임산부가 된 경험을 한 것 같았어요."
긴 생머리가 트레이드마크였지만 이번에는 깔끔하게 하나로 묶어올렸다. 여기에 얼굴은 화장기 없는 민낯으로 촬영했다. 작품을 위한 외적인 변화는 정수정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캐릭터에 맞게 메이크업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스크린에서 봤을 때 이미지가 곧 캐릭터의 성격이니까요. 토일이의 성격처럼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최하나 감독은 1992년생으로 1994년생인 크리스탈과 나이차이가 나지 않아 영화를 하는 동안 그는, 또 한 명의 동료 혹은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고 자랑했다.
"소통을 더 많이 한 것 같아요. 취향도 잘 맞아서 작품 외의 대화도 많이 나눴어요. 그래서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죠. 음악이나 영화, 좋아하는 것들을 정말 많이 공유했어요. 친구 같아서 너무 좋아요."
5개월의 임신 사실을 숨기고 엄마 선명(장혜진)의 속을 썩이는 토일이를 연기한 정수정에게 실제로는 어떤 딸이냐고 묻자 "저는 엄마 말 잘 들었어요. 안 믿기시죠"라고 귀엽게 대답했다.
"저랑 저희 언니(제시카)는 착했어요. 지금은 엄마가 말 잘 안듣는다고 할 때도 있지만 어렸을 때는 순하고 착했다고 했어요. 가족은 항상 소중하다고 느끼지만 마음처럼 표현이 쉽지는 않네요. 영화에서 가족들이 토일이의 서포터가 되어주는 것처럼 우리 가족도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위해 있어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강단있는 성격과 자기 자신을 믿는 행동은 본인과 닮아 연기하면서도 많은 공감을 했다고 털어놨다.
"토일이처럼 임신을 했는데 5개월 동안 숨기고 통보를 하는 성격과는 조금 달라요. 주변 사람들도 제 일부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의견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토일이도 나중에 깨닫지만요. 당차고 자기 자신을 믿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려는 건 비슷해요. 70%는 저와 비슷해요."
그는 '애비규환'을 무사히, 그리고 잘 해낼 수 있었던 이유를 선배 배우들의 배려라고 공을 돌렸다. 남편 호훈으로 출연한 신재휘보다 부모님, 친아빠, 시부모님으로 등장한 장혜진, 최덕문, 남문철, 강말금, 이해영 등과 함께하는 장면이 더 많았다. 대선배와 함께해 긴장을 하기도 했지만 금방 편안한 분위기에서 촬영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현장이 주는 편안함이 많이 도움이 됐어요. 선배님들이 긴장감을 풀어주셨어요. 먼저 다가와주시고, 신에 대해서 조언도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서 같이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 장혜진 선배님은 저랑 성향이 비슷하더라고요. 실제로 고민도 털어놨는데 저를 위해서 아낌없이 조언을 해주시더라고요. 너무 좋았어요."
촬영 중 각장 어려웠던 점은 사자성어의 향연이었다. 더군다나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사자성어들로 구성된 대사는 정수정이 넘어야 할 산이었다.
"사자성어가 너무 어려워서 힘들었어요. 뜻을 공부해가면서 했는데 이해를 하니까 말하는게 조금 쉽더라고요. 최덕문 선배님이 너무 리액션을 잘해주셔서 생각했던 것보다 걱정없이 촬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어요.(웃음)"
정수정은 연기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동력은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삶을 살아보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가수와 배우의 차이는 너무 확연했고, 두 영역의 차이가 클 수록 느끼는 느끼는 쾌감은 선명하다. 하지만 크리스탈과 정수정을 의식적으로 분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와 다른 인생을 살아보는 건 새로워서 좋아요. 또 무대는 한 껏 꾸며서 한겹을 입고 나를 보여주는 건데, 연기는 최대한 저를 다 드러내고 날 것을 보여줘야 하더라고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색하면 안되고요. 무대는 연출된 멋있는 걸 보여줘야하잖아요. 완전 반대라 더 재미있어요. 배우와 가수 두 개의 자아가 너무 다르긴 한데, 데뷔와 동시에 연기를 병행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어요. 그 때의 상황에 맞게 열심히 임하려고 해요."
정수정이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새롭거나 끌리거나 두 가지다. 겹치는 캐릭터는 되도록 지양하고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선보이려고 한다. 마치 대중에게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라 말처럼 각자의 취향에 맞게 좋아하는 정수정의 캐릭터를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작은 목표다.
"저에게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다양하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최하나 감독님은 '하이킥'의 수정이를 좋아하고, 제 지인은 '상속자들'의 보나를 좋아해요. 또 어떤 팬들은 군인이 좋다고 하고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캐릭터와 작품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정수정이 어떤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든, 걸그룹 에프엑스는 떼어놓을 수 없는 단어다. 하지만 부정하지도, 개의치도 않고 배우로서 영역을 개척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제가 에프엑스로 데뷔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배우로 데뷔했다가 나중에 가수를 한다고 하면 반대의 상황이 되겠죠. 연기를 하는 것에 두렵거나 무섭기보단 하나하나 해나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아직 연기적으로 더 보여줄 수 있는 모습들이 많아요. 작품 잘 쌓아서 믿고 볼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