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 모음집 'Punk Is Crime' 11월 19일 발매
5년에 걸친 'INPUNOPOBL' 시리즈 마무리
2015년 9월 EP ‘Indie Rock&Roll’을 발표하며 데뷔한 블랙 언더그라운드(The Black Underground)는 지난 5년간 데뷔 앨범을 포함해 총 5장의 EP와 5장의 정규 앨범을 내놓았다. 각각 인디, 펑크, 노이즈, 팝, 블루스(Indie, Punk, Noise, Pop. Blues / 이하 ‘INPUNOPOBL’ 시리즈)에 블랙 언더그라운드의 음악 색을 담아낸 것이다.
블랙 언더그라운드는 앨범 외적으로는 별다른 노출이 없었다. 언론과 인터뷰도 지난 2018년 단 한 번뿐이었고, 본지와 인터뷰에 응한 것 역시 ‘인터뷰’의 의미보단, ‘시리즈의 정리’ 개념으로 접근했다.
지난 19일 내놓은 ‘펑크 이즈 크라임’(Punk Is Crime)도 같은 의미다. ‘INPUNOPOBL’ 시리즈에 수록된 73곡들 중 2006년부터 2016년까지 녹음된 데모, 편집, 어쿠스틱 버전, 오리지널 버전 그리고 미공개 대체 버전들을 묶어낸 데모 모음집, 즉 ‘민낯’ 같은 앨범이다. 이 컴필레이션 앨범은 5년에 걸친 시리즈를 정리함과 동시에, 여전히 계속될 그의 음악의 브릿지이기도 하다.
-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이하 비바 오스트(BIBA OST): 중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고전영화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뭔가 오래된 것, 빈티지한 것에 대한 일종의 끌림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당나귀 발타자르’(1966)라는 작품을 어린시기에 접한 후 ‘난 결코 영화감독이 될 수없다’ 혹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자괴감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며 살았었죠. 그러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Black Dog’을 우연히 접한 후 몇 년간 헤비메탈에 빠져 살던 시기를 거쳐 생애 처음으로 시드 배릿(Syd Barrett)을 조우한 뒤 지금의 블랙 언더그라운드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 지난 2015년 EP앨범으로 데뷔했습니다.
음악을 ‘업’으로 삼고자 생각해본 적도 없고, 지금도 전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진정으로 음악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기타만 잡으면 곡이 만들어지는 신기한 일이 아직까지는 가능하기 때문 같네요.
예술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나 취미나 그저 남들에게 있어 보이려는 으스댐이 아닌 이전에도 내 삶의 모든 것이었고, 현재에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삶의 모든 것 또는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블랙 언더그라운드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단어 다섯 가지를 꼽는다면 ‘Black’ ‘Pop’ ‘Underground’ ‘Sweet’ ‘Noise’ 정도입니다. 만약 저를 가장 완벽하게 요약하여 소개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Sweet 한 음악을 하는 Noise Pop 밴드 The Black Underground’라고 소개할 것입니다. 이 소개를 보면 의미를 이해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 지난 19일 발매한 새 앨범 ‘Punk Is Crime’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번 앨범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발매한 10개 앨범의 73개의 곡들의 데모, 비공개 버전들을 묶은 컴필레이션 앨범입니다. 요약하면 블랙 언더그라운드의 첫 번째 시즌을 정리하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이번 앨범을 ‘민낯’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데뷔한지 5년이 된 현 시점에 ‘민낯’ 같은 앨범을 만들고자 한 계기가 있나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 중 한명인 마크 볼란(Marc Bolan)의 ‘20th Century Superstar’라는 민낯을 보여주는 앨범이 있는데, 바로 그 같은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다만, 마크 볼란처럼 사후에 ‘타인의 의도’로 발매 되는 것이 아닌 생전에 나 ‘스스로의 의지’로 민낯들을 꼭 발매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이 앨범을 통해 리스너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무언가를 느끼길 원하지도, 전달할 메시지도 없습니다. 늘 주창하던 공허나 허무주의, 다다이즘에 대한 예찬, 무기력, 무저항의 저항 등 그 마저도 이 앨범엔 없습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10개의 EP와 정규앨범에서 이야기 했거든요.
- 음원 설명 글이 ‘죽느냐 자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시작합니다.
2014년 가을, 그때는 런던 퍼즈(London Fuzz)로 활동하던 시기였습니다. 런던 퍼즈로 공연도 제법하고, 경연에도 참여하고, 잔다리 페스타같은 행사에도 출연하곤 했었죠. 가까운 지인들부터 적당히 친한 사람들까지도 일괄적으로 저에게 ‘참 변덕도 심하고, 성격도 지랄맞다’라는 이야길 많이 했어요. 물론 전 인정하지 않지만요(웃음). 저는 그 당시에 단지 너무 많은 활동을 그만두고 쉬면서 무협소설을 좀 읽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런던 퍼즈의 활동을 중지하고, 잠정적으로 반 해체를 했었죠.
그런데 문제는 당시 겹치는 곡들을 포함한 데모곡이 4000곡 가까이 되었는데, 10초짜리 데모나 말도 안 되는 퀄리티의 곡 들을 다 정리하고 3600곡까지 최종 정리가 된 상태였죠. 이걸 한 달에 10곡 씩 발매해도 30년이 걸리는데, 이걸 대체 세상에 언제 다 낸단 말인가. 그 끊임없는 번뇌의 시간이 한없이 숨고 싶은 저의 자아와 세상 가장 위대한 포스트 펑커 로서의 저의 또 다른 자아가 충돌을 일으켜 그 막막함에 그냥 죽어버리고만 싶었던 감정들이 그렇게 표현된 것입니다.
- 3600개의 데모곡을 만들었다니 대단합니다.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좋아하는 것도 많고, 즐기는 것도 많습니다. 정말이지 무지하게 많죠. 하지만 예술적이지 않거나 예술이 아닌 것은 듣지도 보지도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불필요한 시간낭비를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고 저에게 영감을 주지 못하는 요소는 자연스럽게 차단해버립니다. 즉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단하고 반대로 내게 필요한 많은 부분을 쉬지 않고 하기에 그러한 상태에서 기타를 치면 곡이 바로 나옵니다. 문제는 기타를 치고 있는가, 치지 않고 있는가. 단지 이 차이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기타를 치면 나의 음악이 나온다. 기타를 치지 않을 때는 타인의 예술을 즐긴다. 이것이 저의 작업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 자신의 음악을 만들지 않을 땐 타인의 예술을 즐긴다고 하셨는데요. 음악적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가 있나요?
수많은 영화들, 수많은 음악들, 수많은 미술 작품들, 수많은 실존주의 철학들, 수많은 주변 사람들, 수많은 서적들, 수많은 사상들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마음의 빚을 지고 있고, 그 모든 작품들과 인물들을 존경해 마지않고 사랑해 마지않습니다. 그중 가장 강력한 영향을 준 인물을 4명 꼽는다면 로베르 브레송, 빅토르 최, 시드 배릿 그리고 브루스 리입니다.
로베르 브레송은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해주었고, 시드 배릿은 내가 뮤지션의 길을 가야만 하는 명분을 제시해 주었고, 빅토르 최는 내가 해야 할 것을 명확히 주었고, 브루스 리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저에게 맞는 완벽한 해답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랭보, 카뮈, 앤디워홀과 체 게바라와 관련된 서적을 거의 다 가지고 있을 만큼 그들 또한 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그것은 이미 결정되어진 영향에 좀 더 시너지를 준 것이라 생각되네요. 이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인물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 모든 창작물이 소중하겠지만, 수록하기 꺼려지거나 고민이 됐던 곡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민낯’ 같은 곡들이라고 하셨으니.
그런 곡은 이미 다 뺐습니다. 원래는 3CD로 만들 계획이었죠. 그 뺀 곡들은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 한쪽 눈을 질근 감고 눈물을 머금고 다 지워버렸네요. 지워버린 나머지 데모들은 ‘민낯’이 아니라 아예 ‘알몸’이라 그건 담지 않았습니다. 하하.
- 그렇다면 많은 곡들 중에 꼭 들어주길 바라는 트랙이 있다면요?
딱히 그런 곡은 없지만 ‘Pink Muhly(Demo)’는 스트라토캐스터(Stratocaster) 기타가 아닌 유일하게 텔레캐스터(Telecaster) 기타를 사용해 녹음한 데모이니 기타 소리에 관심 있는 분들은 그걸 유념하여 들어봐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근데 그 조차도 별 의미는 없네요(웃음).
- 싱어송라이터로서 블랙언더그라운드의 방향성도 궁금합니다.
펑크는 범죄로다(Punk Is Crime). 이 앨범을 발매함으로써 이제 첫 번째 시리즈 즉, 시즌1이 마무리 된 상태입니다. 길지 않은 시간 내로 다음 시리즈가 나올 것이고, 제가 꼭 지켜야 할 것은 내가 세상에 앨범을 다 발매하기 전에 절대 죽지 말자입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능하면 밖에 잘 안 나갑니다. 위험한 장소 이를테면 해수욕장, 계곡, 높은 산 같은데도 절대 안갈 예정이고요. 대신 영양제는 꼭꼭 챙겨 먹고 있지요. 하하.
- 올해를 마무리하는 상황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혹은 이미 이룬 목표)가 있다면요?
몇 달 전부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이래저래 페이지가 빨리 안 넘어 가는데 올해 안으로 이 책을 꼭 다 읽고 싶네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인터뷰를 한 것이 아닌 5년간의 ‘INPUNOPOBL’의 정리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를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