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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망치는 노조①] 줄파업에 속수무책…기업 대항권 무시된 노조법


입력 2020.11.30 07:00 수정 2020.11.27 17:20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자동차·조선 등 대규모 사업장 연례 파업행진…산업 경쟁력 악화

대체근로 금지, 사업장 점거 허용으로 사측 대항권 사실상 全無

우리나라 주요 사업장에서는 매년 연례행사처럼 파업이 이뤄지고 기업들은 대항권을 제거당한 채 속수무책으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여기에 ILO 핵심협약 비준까지 이뤄진다면 노조 쪽으로 기운 힘의 불균형은 더욱 심화된다. 위기 상황에 놓인 대기업은 나랏돈을 투입해서라도 살린다는 믿음으로 노조가 회사 형편을 고려치 않고 파업으로 압박하는 사례도 줄을 잇는다. 노동시장 유연성 세계 141개국 중 97위, OECD 36개국 중 34위로 최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현실을 되짚어본다.[편집자 주]


24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회의실에서 민주노총 총파업 총력투쟁 선포 및 대정부, 대국민 제안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한국GM 노조, 14일간 부분파업. 생산차질 2만5000대.

#기아자동차 노조, 3일간 부분파업. 생산차질 8000대. 30일 파업 연장 여부 논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전 산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서 나온 파업 소식들이다.


자동차와 조선 등 다수의 생산직 인력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장에서는 매년 연례행사처럼 파업 소식이 들려온다. 임금·단체협약 교섭 과정에서 사측의 제시안이 나오면 일단 판부터 뒤엎고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쟁의조정을 신청해 쟁의권부터 확보하고 보는 게 관례화 됐다.


코로나19라는 변수 따위가 어떻게 감히 노동계의 전통적인 ‘루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냐는 듯 올해도 파업 행진은 이어졌다.


기아차 노조의 경우 올해까지 9년째 파업에 ‘개근’했다. 한국GM 노조는 군산공장 폐쇄와 함께 한국 철수 위기에 내몰린 2018년을 제외하고는 2016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파업을 벌여왔다.


이런 양상이다 보니 연례파업의 대명사였던 현대자동차 노조가 올해까지 2년 연속 무쟁의 교섭 타결을 이뤄낸 게 오히려 화제가 됐다. 아무 탈 없이 합리적으로 타결하는 게 정상이고, 파업으로 회사에 타격을 입히는 게 비정상일진데 앞뒤가 뒤바뀐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파업은 필연적으로 회사에 타격을 입힌다. 계획된 생산에 차질이 생기니 실적 악화의 원인이 되고, 특히 신제품이 출시돼 초도 물량 공급이 시급한 상황에서의 파업은 제품의 생애주기(출시부터 단종까지)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배부른 대기업 근로자들은 파업을 해도 될지 몰라도 해당 기업에 연계된 협력사 근로자들은 죽을 맛이다. 물량 수요가 감소해 임금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회사가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하면서 실직 위기까지 놓인다.


제도적으로는 파업에 참여한 근로자들도 임금 손실을 입는다. 일을 안 하면 임금도 못 받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조 지도부는 파업을 통해 회사를 압박해 무노동 무임금 원칙마저 무시하고 임금 손실을 보전해 주겠다며 조합원들의 파업 참여를 선동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2017년까지 한국의 임금근로자 근로손실일수는 연평균 43.13일에 달한다. 같은 기간 일본은 1일에도 못 미쳤고(0.23일), 미국도 5.2일에 불과했다. 선진국들 중 노조 파업이 잦은 편인 영국도 18.06일로 한국의 절반 이하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고용노동부, 노동연구원 등 자료 재구성)

우리 기업들은 왜 매년 이런 파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재계에서는 노조 측으로 크게 기울어진 노사간 힘의 균형을 지목한다. 노조가 파업으로 공장을 셧다운 시킬 수 있는 사실상 무한대의 권한을 법·제도적으로 보장하다 보니 기업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조가 임단협 교섭 과정에서 결렬을 선언한 뒤 중노위에 쟁의조정을 신청하면 대부분의 경우 조정중지 결정이 내려진다. 이 절차만으로 노조는 합법적 쟁의권을 확보한다. 이후 내부적으로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50% 이상의 찬성표만 나오면 노조 지도부는 바로 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


반면, 사측의 대항수단은 거의 없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 그 기간 동안 생산라인은 멈춰야 한다. 우리나라는 신규 직원의 채용이나 도급과 하도급, 파견을 금지하는 등 노조법이 대체근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노조의 쟁의권을 인정하면서도 대체근로를 전면적, 또는 부분적으로 허용해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이 지나치지 않도록 하는데 반해, 우리나라만 유독 사측의 대항수단을 막아놓고 있다.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유일한 대항수단으로 ‘직장폐쇄’가 있지만 이는 요건이 엄격해 현실적으로 실행이 불가능하다. 현행 노조법 제46조는 사용자는 노동조합이 쟁의행위를 개시한 이후에만 직장폐쇄를 할 수 있고, 직장폐쇄를 할 경우에는 미리 행정관청 및 노동위원회에 각각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조가 산발적 파업이나 시차를 두고 진행하는 부분파업 등 다양한 쟁의행위 전략을 활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사후적, 방어적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받는 직장폐쇄는 사측의 대항 수단이 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법으로 막아놓고 있는 쟁의행위시 사업장 점거를 허용하고 있어 직장폐쇄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노조법은 ‘생산 기타 주요업무 관련 시설’을 점거 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으나, 법원은 사용자의 시설관리권을 침해하지 않고 비조합원의 노무제공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부분적·병존적 점거를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노조가 쟁의행위 시 사업장을 점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부분적으로 점거할 때도 부품과 제품이 오가는 통로를 점거하거나 과도한 소음을 유발하거나 연속공정 중 일부 공정을 차단하는 방식을 통해 생산 활동을 전면 중단할 수밖에 없다.


재계 한 관계자는 “매년 관례적으로 파업이 이뤄지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사용자의 대항 수단을 묶어놓고 노조의 쟁의권, 단결권만을 지나치게 보장하는 법·제도와 무관치 않다”면서 “기존의 불균형한 노조법을 유지한 채로 ILO(국제노동기구) 핵심 협약 비준으로 노조의 권한이 더욱 강화된다면 지금도 최하위 수준인 우리나라의 노사관계 경쟁력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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